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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상처와 위로
 
 
오늘 들은 그 말을 아직도 내 안에 새기고 있다. “똥 같은 소리 하네.”라 내뱉고 시원하게 지워버리고 싶은데, 이놈의 기억력은 꼭 그런 아픈 순간에만 목소리, 말투, 뉘앙스, 표정까지 디테일하게 남겨둔다. 침대에 누워 멀뚱히 천장만 올려보다 눈을 감으면 할퀸 통증이 검은 해일처럼 밀려오는 밤이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자존감 도둑이 있고, 그들은 언제나 말 한마디로 나를 기죽인다. 상사의 얼굴을 하고, 친구나 애인의 얼굴을 하고 때로는 가족의 얼굴을 하고 나에게 말의 상처를 입힌다. 말의 내상은 그 어떤 물리적 상처보다 강하고 지독하다.

“살쪘어?” “왜 그런 옷을 입었어.” “왜 머리가 그래.” 이런 말들을 인사처럼 건네는 이들은 모른다. 당신이 뒤돌아선 순간부터 나는 진창에서 아파하며 뒹굴고 그 밤은 너무도 길고 괴롭다는 것을. 왜 무례한 사람은 그토록 평온하고, 제대로 반응 못 한 나는 예민한 마음과 약함을 자책해야 할까.

언젠가 병원의 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의사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었어요”.라고 말해준 적이 있다. 그 순간 나는 조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누군가 나를 기다려줬다는 말 한마디, 그저 별 뜻 없는 인사치레라는 것쯤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스스로가 세상의 먼지처럼 하찮다 여겨지던 그 무렵의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말이었다.

한 프로그램에 출연한 헤어 디자이너 차홍은 어찌나 예쁘게 말하는지, 그 방송을 본 이후 난 그녀의 팬이 되었다. 한 남성 스태프의 머리를 손질하며 스타일링 시범을 보이는 상황이었다. 평소 느끼하게 생겼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며 스스로에 대해 그다지 자신감이 없어 하는 스태프를 계속 칭찬하던 차홍이 말했다.

“평상시에 귀엽단 말 많이 들으시죠?”

그러자 남성 스태프는 수줍게 “사람들이 말을 잘 안 걸어요.”라고 답했다.

“그저 바라만 봐도 좋은가 보다….”

차홍의 답이었다. 어쩜 그렇게 예쁘게 말하냐는 질문에 차홍은 “저는 항상 아름다운 것을 찾아내는 여자니까요.”라고 답했다. 그 모습이 좋아 보였다.

사실, 나는 진심이 아닌 말은 하지 말자는 주의였다. 고맙지 않은데 고맙다고 말하는 건 위선 아닌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 말 한마디라도 예쁘게 하려고 애를 쓸 필요가 있다고 느끼게 된다. 가짜 웃음에도 엔도르핀은 나온다고 한다. 가끔은 나의 마음이 진짜인가 아닌가에 방점을 찍기보다 아름다운 것을 찾으려는 노력이 더 필요한 순간이 있음을 느낀다.

매 순간 진심을 잔뜩 담을 필요는 없다, 그저 노력하는 것이다. 질투를 억누르고 비꼬기를 멈추고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어른스러운 노력을 담아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이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그 속의 진심이 생겨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여의도의 한 작업실에서 드라마 막내작가 생활을 하던 시절이었다. “너는 해도 안 돼.”, “그것밖에 못 하니?” 같은 말들에 가뜩이나 굽은 등이 더 굽어 있을 때였다.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서 참고 자료를 한참 정리하고 다시 작업실로 돌아가려 나섰는데 뜨거운 날씨에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간절해졌다. 하지만 수중에 돈이 없었다. 열정페이로 일하던 탓에 지갑은 언제나 텅텅 비어 있었다.

그때 갑자기 딩동 핸드폰이 울리더니 200만 원이 입금되었다는 문자가 도착했다. 이게 뭐지 싶어서 잠시 멍하니 서 있는데,

-기죽지 마라.

아버지였다. 그때 난 여의도 대로를 걸으며 한참 울었다. 그 한마디가 전한 어마어마한 지지에 마음이 일렁였다. 그렇게 지금까지 기죽지 않고 글을 쓰고 있다. 결국 나를 멈추게 하는 것도, 계속하게 하는 것도 말 한마디였다. 말 한마디가, 그렇게 끈질기다.

- 『오늘밤은 잠이 오지 않아서』 중에서
(김희진 지음 / 홍익출판사 / 208쪽 / 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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