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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파리 하나만 달고
 
 
(김하돈 지음 / 호미 / 201쪽 / 11,000원)

2004년 12월 초, 나는 몹시 우울했다. 하루하루 다가오는 나의 ‘쉰 살’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탓이다. 내가 지나온 세월은 세월대로 덧없고, 한걸음 한걸음 다가서는 ‘쉰 살’은 나를 향해, 머지않아 너의 ‘미래’도 바닥날 것이라고 손가락질하는 듯했다. 아직도 내 안엔 무수한 미래가 있고, 밤새워 술 마시고 노래할 수 있는 젊은 열정과 치기가 남았지 싶은데, 벌써 ‘쉰’이라니! 나는 갑자기 노인이 되어 천길 벼랑 끝에 내몰린 듯했다. 2004년 12월은 그렇게 엄청난 무게로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는 분한테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내용인즉슨, 단식하러 가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래! 이거다’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단식은 권술룡 선생이 해마다 연말연시에 판을 벌이는 행사로, 김복관 선생을 방장으로 모시고 김민해 목사가 진행한다고 했다. 장소는 제주도였다. 돈 들여 관광할 필요도 없고, 오랜 술로 찌든 속도 다스릴 수 있고, 또 ‘오십수’의 중압감도 날려 보낼 수 있으니, 나로서는 일석삼조였다. 마음이야 어쩔망정 가벼운 발걸음으로 제주행 연락선에 몸을 실었다.

단식 기간 내가 쥔 화두는 ‘50’이라는 숫자였다. 인도에서는 오십수를 ‘바나플러스’라고 한다. ‘산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나이’라는 뜻인데, 나이 쉰이 되면 서서히 산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산에 들어가 명상을 해야 하는 나이라는 것이다. 나는 오십수를, 세상에서 구하고 쌓아 온 것들을 통해 비로소 삶을 누리는 시기로 여겼다. 사실이 그랬다. 적으나마 꼬박꼬박 모은 돈으로 뭔가를 할 수 있을 것도 같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제 시도 제대로 여무는 듯했고, 세상 물정도 사람들의 속도 어지간히 들여다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것을 다 버리라니. 지난날 애써 일궈 온 것들을 미련 없이 버리라니, 난감한 노릇이었다. 그러한 면에서, 제주에서의 단식은 몸을 비우는 의식이었을 뿐만 아니라, 내 속된 마음을 살피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단식으로 특별한 깨침을 얻거나, 내 삶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다만 특별한 사건이라면 스승 한 분을 만난 것이다. 바로 김복관 선생이다. 그때 선생의 연세가 여든 셋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나의 제주행은 오로지 그분을 만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선생이 단식 기간 중에 특별히 말씀을 하시거나 내가 감동받을 무슨 일을 하신 것은 아니다. 선생은 다만 고요하게 우리 속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무위당 선생은 “산길을 걸었네 / 소리 없이 아름답게 피었다 가는 / 너를 보고 / 나는 부끄러웠네”라는 시에서 삶의 의미와 무의미를 넘어선, 존재로서의 들꽃을 보며 ‘소리 없이 아름다운 존재’로 살지 못한 자신을 부끄럽게 여겼다. 김복관 선생이야말로 무위당이 노래한 그 들꽃 같은 존재였다. 그것은 오랜 수행에서 저절로 이는 존재의 향기였으리라. 존경과 감동이 내 안에서 절로 일던 이 특이한 체험으로 말미암아, 나는 내 마음을 짓누르던 ‘오십수’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이듬해 겨울이 끝날 무렵, ‘생명평화결사’에서 주관하는 ‘겨울생명평화학교’에 참가하게 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도법이라는 또 한 분의 스승을 만났다. 도법 스님은 힘차고 또렷한 목소리로 생명의 진실은 추상이 아니며 삶의 구체적인 현실이라고 강조하셨다. “소유와 힘의 논리, 경쟁과 지배의 논리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생명의 진실을 똑바로 인식하고 치열하게 실천해야 한다. 모든 생명은 그물의 코처럼 연결되어 존재하며 거대한 하나의 생명이다. 그것은 인간의 욕구가 만들어 낸 인위적 질서로는 운영될 수 없다. 생성, 소멸하는 우주 자연의 순환 질서를 배우지 않으면 우리는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없다.”

이 진리를 받아들인다면 내 삶은 혁명에 버금가는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부담스러웠다. 그 진리를 실천하려면, 자신의 불의에는 관대하며 사회의 불의에 대해서만 분노한 것을 반성해야 하고, 나의 적으로 규정한 상대의 개성과 존재 가치의 존귀함을 존중해야 한다. 상대가 누구이든 그에 대한 모심과 배려와 살림의 자세로 대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 안의 평화를 일깨우는 공부와 수행을 꾸준하게 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돈의 노예가 되지 않는 삶의 방식이라든지 적게 가지고 적게 쓰는 단순 소박한 삶이야 내 깜냥만큼 흉내 내며 살 수 있을 테지만, 지금껏 적으로 돌린 대상을 끌어안는, ‘적과의 동침’이라니. 아직은 내가 감당해낼 만한 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랴. 나는 마침 멈추어 선 버스에 올랐고, 종착지를 알 수 없는 그 버스는 지금도 달려가고 있음을. 지금껏 살아온 이승의 일이라는 것이 대략 그러하지 않았던가.

언젠가 나는 반드시
잔가지 다 잘라내고
몸통 하나로만 남겠다.
뿌리도 한 가닥만 땅에 박고
이파리도 달랑 하나만 달고
그렇게 단정한 아침을 맞으리.
가장 가벼운 몸을 이루어
수직으로 홀로 깊어지면
그 어둠 속
맑은 물줄기 소리도 들으리.


- 졸시, ‘이파리 하나만 달고’ 전문, 박두규(시인, 교사)

- 『길에서 꽃을 줍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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