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시도서관
전체도서목록 신간도서목록 광명시도서관 바로가기
도서요약본 오디오북 북세미나 오디오강연 어학클리닉 어린이도서관
인포북 전자도서관 인포북 사랑하는 가족에게
사랑하는 가족에게 책에서 만나는 건강정보 서평칼럼 책속의 여행정보 가슴이 따뜻한 이야기
아버지의 침묵은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의미였습니다
 
 
1943년, 아버지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열아홉 살 청년이었다. 나라의 부름을 받은 아버지는 비행기 정비병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항공대 배치를 희망했다. 하지만 보병으로 배치를 받았고, 얼마 안 있어 유럽 진격 개시일을 앞두고 전투 채비를 갖춘 수천 명의 다른 젊은이들과 함께 자대로 옮겨갔다. 아버지는 고향에서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있었고, 이야기 상대도 한 명 없었다.

어느 날 밤 소등 후에 어두컴컴한 연병장으로 나가, 넘실거리는 너른 벌판에 무릎을 꿇고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하느님을 향해 쏟아냈다. 아버지는 소원을 하나만 들어달라고 청했다. 기계와 자동차 수리라는 특기를 살려 비행기 정비병으로 복무할 수 있게 항공대로 옮겨달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소원을 들어주면 그 대가로 하느님을 잊지 않겠다는 조건을 걸고 일어나 막사로 돌아갔다.

아버지는 전속 가능성이 얼마나 희박한지 알지 못했고 심지어 신청 방법조차 잘 몰랐지만, 주변에 물어 도움을 청하는 편지를 몇 군데 보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곳은 신체검사와 필기시험을 통과해야 지원할 수 있다고 했다. 필기시험만 해도 기가 꺾이는데, 신체검사를 통과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열두 살 때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 고막을 다친 일로 평생 이명으로 고생해온 이력이 있었던 것이다.

신체검사 때 아버지는 청력검사를 통과하지 못할 게 분명했기 때문에 안 들리는 쪽 귀를 검사할 때 잘 들리는 쪽 귀를 꽉 막지 않고 살짝 열어두었다. 신체검사에 통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안도하는 한편으로 죄책감도 느꼈다. 다음은 필기시험이었다. 고등학교 때 평균 성적이 C였던 아버지는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기대감보다 걱정스러운 마음이 훨씬 컸다. 하지만 아버지는 하느님과 한 약속을 생각하며 열심히 시험을 치렀다.

그런데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당신이 받은 테스트가 공군생도용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단순한 정비병이 되는 게 아니라 비행기 조종법까지 배울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조종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는 감히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나 20일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중위가 아버지를 불렀다. “어이, 켐프, 너 땡잡았다! 전속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나중에 아버지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500명의 대대원 중에서 전속을 신청한 사람은 단 두 명뿐이었고, 성공한 사람은 아버지 혼자였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스물한 살에 아버지는 조종 훈련을 받고 조종사가 되어 B-24 리버레이터 폭격기를 타고 남태평양을 누볐다. 지휘관으로 열다섯 번의 임무를 완수하며 부하를 단 한 명도 잃지 않았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고향으로 돌아가 하느님과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아버지는 종종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하느님과 약속을 할 때는 조심해라. 정말로 하느님이 약속대로 처리할 때가 있거든.”

우리 집안은 독실한 기독교 가정이 되었고, 나도 태어나 열네 살이 되기까지는 열심히 교회에 다녔다. 그러나 모든 것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나는 열여덟 번째 생일 바로 전날, 어머니와 유난히 심하게 싸우고 집을 나왔다. 그해 나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며 대학에 다녔고 친구들과 흥청망청 어울렸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아침, 목이 쉬어라 떠들어대며 토요일 밤을 보내고 숙취에 시달리며 잠을 자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사각팬티 바람으로 터벅터벅 걸어가 문을 열었다. 아버지가 유행이 지난 갈색 양복 차림으로 문 앞에 서 있었다. “어쩐 일이세요?” 나는 방안이 안 보이게 문을 지그시 닫으며 물었다. “들어가도 되겠니?” 나는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어 고개를 저으면서도 문을 열었다.

떠들썩했던 간밤의 흔적이 아버지 앞에 고스란히 펼쳐져 있었다. 터져나갈 것 같은 재떨이, 빈 맥주 깡통 그리고 공기 중에 남아 있는 담배와 마리화나 냄새. 아버지는 집 안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나는 이번만큼은 아버지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생활방식을 공격하고 내 방식을 옹호할 준비가.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아버지의 엄격한 잣대에 어떤 논리로 대응하면 좋을지 궁리하며 앉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쩐 일이시냐고요?” 내 말에 아버지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고, 나를 쳐다보다 고개를 돌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교회에 가려다 너도 갈 생각이 있나 싶어서 들렀다.” 구겨지고 유행에 뒤떨어진 갈색 정장에 투박한 신발을 신고 앉아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는데, 문득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 아버지로서도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일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런 깨달음에 현기증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럴게요.” 그러고는 방으로 향했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 『아버지에게 가는 길』 중에서
(케니 켐프 지음 / 이콘 / 151쪽 / 10,000원)
번호 | 제목 | 일자
147 나는 시어머니와 별일 없이 산다 2011년 02월 23일
146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왜 그리도 오래 걸렸는지 2011년 02월 21일
145 웃기만 하는 아내 2011년 01월 27일
144 닉 부이치치의 허그 2011년 02월 21일
143 말없는 말 - 정호승 2010년 11월 30일
142 마지막 사형수가 보낸 편지 2010년 10월 28일
141 가난한 주부의 향기로운 고백 2010년 09월 29일
140 아빠의 책이 제 인생을 구했어요 2010년 08월 31일
139 아버지의 침묵은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의미였습니다 2010년 07월 29일
138 연극 같은 인생 2010년 06월 30일
 
맨 처음으로 이전 10개 1 2 3 4 5 6 7 8 9 10 다음 10개 맨 마지막으로
 
  • 문화도시락
  • 베스트상품권
  • 문화사랑쿠폰
  • 북티켓
  • 한국독서능력검정 신청
  • 시스템 정기 점검시간 매주 금요일 낮 12:00~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