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시도서관
전체도서목록 신간도서목록 광명시도서관 바로가기
도서요약본 오디오북 북세미나 오디오강연 어학클리닉 어린이도서관
인포북 전자도서관 인포북 사랑하는 가족에게
사랑하는 가족에게 책에서 만나는 건강정보 서평칼럼 책속의 여행정보 가슴이 따뜻한 이야기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왜 그리도 오래 걸렸는지
 
 
Y선생은 일흔을 한참 넘긴 남자 환자였다. 그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정년퇴임을 하고 교토 시내에서 홀로 지내고 있었다. 젊은 시절, K대에 입학하기 위해 고향이었던 아키타 현을 떠난 이후 쉰 해가 넘도록 그곳을 찾지 않았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오직 학문에만 전념한 외골수 인생이었다. 그런 그의 몸에서 대장암 덩어리를 발견했을 때, K대학병원 담당의사는 강력하게 수술을 권했다. 하지만 Y선생은 의사의 제안을 막무가내로 거부했다.

대학병원에서도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를 오래 입원시킬 수는 없었다. 담당의사는 내가 근무하는, 말기 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통증완화 전문병원으로 Y선생을 옮기게 했다. 매일 아침 회진을 돌 때마다 Y선생은 늘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대했다. 매일 씨름하는 동안 조금씩 나를 의사로 인정해주었지만 마치 이를 잡듯 사람을 관찰하는 눈초리는 여전했다. 몇 개월이 흐르면서 그의 몸은 눈에 띄게 앙상해져 갔다.

“선생님은 왜 통증치료까지 거부하시는 거죠?” “난 아프지 않으니까.” 반복되는 입씨름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에 나는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선생님은 아키타가 고향이신가 봐요.” “맞아. 하지만 한 번도 가지 않았어. 여기서만 몇 십 년 동안 살았지.” 나는 문득 Y선생에게 형제가 있다는 사실이 떠올라 물었다. “그럼 가족 분들은 어떻게 지내세요?” 그는 고개를 홱 돌리며 애써 내 시선을 피했다. “보고 싶지 않으세요?” 그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암세포가 서서히 세력을 넓혀가자 그의 배는 복수가 차올라 불룩 튀어나왔다. 음식조차 제대로 삼키지 못했고 폐렴까지 겹쳐 몹시 위독한 상태였다. 그 즈음 가장 난처했던 것은 가족에게 연락하는 문제였는데, 그는 늘 “가족한테 연락하지 마. 연락하면 절대 안 돼!” 하고 소리쳤다. 그래도 하나뿐인 혈연이라 나는 환자사망시 유골 인도 절차를 의논코자 아키타에 있는 그의 형에게 연락을 취했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교토 병원입니다.” 나는 Y선생의 형에게 지금까지의 자초지종을 모두 전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당장 찾아뵙겠습니다.”

온다고는 했지만 아키타는 꽤 먼 지역이었다. 더욱이 그는 다리가 많이 불편하다고 했다. 누군가 대리인을 보낸다는 뜻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형님과 부인인 듯 보이는 노부부가 지팡이를 의지해서 천천히 진료실로 들어서더니 고개 숙여 정중히 인사를 했다. ‘아니, 이 걸음으로 아키타에서?’ 감동할 정도로 놀라운 일이었다. 오랫동안 연락이 두절된 가족들에게 환자의 위급한 상태를 알리면 대체로 “저희는 그런 사람 몰라요. 인연 끊은 지 오래됐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런데 이 가족은 거동하기 불편한 몸을 이끌고 먼 거리를 한걸음에 달려온 것이다. 통화를 끝내기 무섭게 바로 집을 나섰을 것이다.

“동생 놈이 민폐를 끼쳐서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형님의 깍듯한 태도에 당황했다. “저 녀석은 어릴 적부터 뭐든지 제 멋대로였지요. 선생님께서 꽤 힘드셨을 겁니다.” 연령대를 가늠할 수 없는 굵은 목소리와 당당한 기세에 나는 나도 모르게 기가 죽었다. “부디 동생을 살려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이젠 때가 늦어서 통증완화 치료밖에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 치료를 받으면 좀 더 편해질 텐데 동생분께서 완강히 거부하시네요.” 내 말을 들은 형은 동생의 병실로 들어서자마자 고함을 질렀다. “이놈아!” 그 목소리에 놀란 Y선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여든이 넘은 형에게 꾸지람을 듣는 일흔이 넘은 Y선생의 모습은 마치 어린 소년 같았다. 그 모습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환자의 병세는 상당히 심각한 상태였다. 그런데 형이 오면서부터 신기하게도 병세가 호전되는 것 같더니 잠시 소강상태에 머물렀다. 형 부부는 병실에서 동생을 지키면서 며칠 교토에 머물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곧장 날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아키타로 떠났다. 그리고 어느 날 저녁, Y선생의 혈압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의 형에게 전화를 넣을까 말까 망설였다. 형도 다리가 불편할 뿐 아니라, 심장과 다른 장기에도 여러 질병이 있어서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었다.

“여보세요. 교토 병원입니다. 아무래도 며칠을 넘기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네, 선생님. 제가 바로 가겠습니다.” 지난번처럼 노부부는 전화를 끊자마자 아카타에서 교토행 기차를 타고 곧장 병원으로 달려왔다. “동생, 괜찮아?” 형의 목소리를 들은 Y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Y선생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형......” 형도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다음 날 아침까지 그간의 회포를 푸는 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침에 병실을 찾았을 때 형은 창밖을 보며 서 있었다. 많이 지쳐 보이는 그를 부축하려고 하자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동생이 고맙다고 했어요. 이 천하의 악동이 고맙다고......” 까칠하고 괴팍했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졌던 선생은 어쩌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법을 잘 몰랐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마지막 순간 형의 사랑에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숨을 거둔 그의 얼굴은 마지막 숙제를 다 마친 아이처럼 평온하고 만족스러워 보였다.

-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중에서
(오츠 슈이치 지음 / 21세기북스 / 240쪽 / 12,000원)
번호 | 제목 | 일자
147 나는 시어머니와 별일 없이 산다 2011년 02월 23일
146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왜 그리도 오래 걸렸는지 2011년 02월 21일
145 웃기만 하는 아내 2011년 01월 27일
144 닉 부이치치의 허그 2011년 02월 21일
143 말없는 말 - 정호승 2010년 11월 30일
142 마지막 사형수가 보낸 편지 2010년 10월 28일
141 가난한 주부의 향기로운 고백 2010년 09월 29일
140 아빠의 책이 제 인생을 구했어요 2010년 08월 31일
139 아버지의 침묵은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의미였습니다 2010년 07월 29일
138 연극 같은 인생 2010년 06월 30일
 
맨 처음으로 이전 10개 1 2 3 4 5 6 7 8 9 10 다음 10개 맨 마지막으로
 
  • 문화도시락
  • 베스트상품권
  • 문화사랑쿠폰
  • 북티켓
  • 한국독서능력검정 신청
  • 시스템 정기 점검시간 매주 금요일 낮 12:00~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