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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어머니와 별일 없이 산다
 
 
나는 시어머니와 산다. 큰아이가 태어나기 전이니 벌써 11년째다. 시어머니와 한집에서 산다고 하면 반응이 셋으로 나뉜다. 면구스럽게도, “참 착한 며느리네”가 단연 으뜸이다. 말씀하시는 분들 대부분 연세 지긋한 남성들이다. 고부지간 사는 풍경이 전쟁터처럼 시끄럽든 말든, 시어머니와 한 울타리에서 산다는 그 자체만으로 단박에 ‘효부’ 반열에 오른다. 두 번째는 “진짜? 너 참 용감하다” 식의 까칠 반응이다. 대부분 내 또래 여성들이다. 이들은 내게서 측은한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가능하면 빨리 독립하라”라는 조언을 잊지 않는다.

세 번째 반응이 나는 가장 재미있고 뜨끔하다. “복받았네, 복받았어!” 여기서 복이란 ‘애 키워주는 복’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시어머니 모시고 살겠다는 며느리 없듯, 손자 키워주겠다는 시부모도 찾아보기 힘들다. 오죽하면 ‘신(新)손자병법’이란 말이 생겼을까. 시부모 상견례 때 손주를 키워주겠노라 약조해야 손주를 낳아드리겠다는 ‘빅딜’을 한다는 며느리들 말이다. 시어머니보다 베이비시터가 낫다며 한사코 말리겠지만 나처럼 소심한 맞벌이 여성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 손길을 택한다. 당장은 힘들고 일면 굴욕적이지만, 길게 보면 그게 현명하고 약삭빠른 선택이었음을 11년 시집살이가 뜨겁고 생생하게 일깨워준다.

지난 1년 두 아이를 데리고 스웨덴으로 해외 연수를 다녀오면서 우리 고부 사이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남편에게는 미안한 고백이지만, 스웨덴 연수 결정이 나고 서울을 떠나게 되었을 때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나무꾼과 결혼한 선녀가 아이 둘을 겨드랑이에 끼고 하늘로 훨훨 날아오르는 기분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다. 어쩌면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일이 끔찍이도 고통스러운 한국의 현실에서 벗어나 보육과 교육에 관한 한 세계 최고라는 복지 선진국에서 살게 된 것에 대한 기쁨이 컸던 탓이기도 했다.

그런데 ‘천국’이라고 확신했고 그래야만 한다고 믿었던 스웨덴에서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그리움’에 빠져들었다. 지독한 ‘그리움’은 스웨덴 정착 6개월 만에 급습했다. 추운 북구 겨울, 그 한가운데에서 아이 둘을 뒷바라지하며 내 학업 생활을 병행하던 중 완전히 녹다운되고 만 것이다. 천장이 뱅뱅 돌고, 먹는 것마다 토해냈다. 일어나 서 있지 못할 정도로 몸이 상하더니 몸무게가 순식간에 7킬로그램이나 빠져나갔다. 매 끼니 밥하기 싫으니 아이들 먹이고 남은 음식 부스러기를 긁어먹거나 건너뛰다가 스웨덴 독감에 속절없이 쓰러진 셈이다.

그리움은 이 절박했던 상황에서 내 가슴을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시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따뜻한 밥 한 끼, 바글바글 끓인 강된장에 밥 한 공기 비벼 먹으면 금세 일어나 앉을 것만 같은 거다. 꿈을 꾸기도 했다. 스톡홀름 아파트 문 밖에 어머니가 찾아와 서 계시는 꿈. 전화로 사정을 전해 들은 시어머니는 “내가 지금 날아가랴? 우짜꼬. 우리 새끼들, 내 메느니를” 하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리실 태세이니, 전화를 끊고 “어머니, 어머니, 아이구 아파라” 하면서 통곡을 했다.

유난히 깔끔하신 성미라 살림에 젬병인 며느리에게 허구한 날 잔소리를 늘어놓으시니 언제고 벗어나고 싶었던 시어머니 품이었다. 한데 그 지긋지긋하던 품이 이렇듯 그리워질 줄 누가 알았던가. 그것은 시어머니의 몫이었던 ‘살림’, 말 그대로 ‘사람을 살리는 일’의 소중함, 그 비할 데 없는 숭고한 가치를 낯선 타국에서 새삼스럽고도 간절하게 깨달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어리석게도 나는 그제야, 10년이 넘도록 우리 집안 살림을 도맡아주셨던 어머니의 손길이 얼마나 고단하고 큰 희생을 요구했던 것인지 깨달았다.

물론 그 약발은 영원하지 않았다. 귀국해 다시 시작된 시어머니와의 한지붕 살이는 여전히 약간의 긴장과 눈치, 비굴함이 공존한다. 그렇다고 완전 도로아미타불은 아니다. 명쾌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무엇인가가 변했다. 벽이 한 겹, 아니 세 겹 정도 사라진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며칠 전엔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신 핑계를 대고 밤늦게 퇴근해서는 덥석 시어머니의 다리를 주물러 드리면서 취중진담을 늘어놓았다. “어머니, 저희 내외가 어머니 엄청 존경하고 감사해하는 거 아시죠? 그렇지만 손주를 둘이나 안겨드렸으니 이 며느리도 최고 아닙니까? 주절주절……” 남편은 기겁한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했지만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시며 매우 흡족해하셨다는 것을 나는 취중에도 확신할 수 있었다.

미우나 고우나 남편의 어머니이고, 손주들이라면 한걸음에 달려오는 할머니인데 자존심을 앞세우면 얼마나 앞세울 것이고, 각을 세우면 또 얼마나 세울 것인가. 문제가 생기면 피하거나 멀리하려고 하지 말고 정면돌파 하면서 미운 정 고운 정을 쌓는 것도 한 방법. 재미난 것은 굳건한 자존심도 ‘버리고 낮추기’ 연습을 몇 번씩 하다 보면 몸에 곧 익숙해진다는 사실이다. 한번 배우면 평생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자전거 타기처럼, 헤엄치기처럼. 죽어도 연민이 안 생긴다고? 목욕탕 가서 시어머니 등 한번 밀어드리면 그 쭈글쭈글 시든 몸매에서 연민이 왈칵 솟구치리니. 처음 한 번이 힘들다. 자주 부대끼고 옥신각신하고 그리고 화해하면서 진정한 소통은 이뤄진다.

- 『우리는 모두 사랑을 모르는 남자와 산다』 중에서
(김윤덕 지음 / 푸른숲 / 255쪽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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