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시도서관
전체도서목록 신간도서목록 광명시도서관 바로가기
도서요약본 오디오북 북세미나 오디오강연 어학클리닉 어린이도서관
인포북 전자도서관 인포북 사랑하는 가족에게
사랑하는 가족에게 책에서 만나는 건강정보 서평칼럼 책속의 여행정보 가슴이 따뜻한 이야기
아름다운 진화
 
 
수심 7,500m에서 살고 있는 심해어의 동영상이 인터넷에 떴다. 이렇게 깊은 바다에서의 촬영은 처음이라고 설명을 달았다. 지금까지의 무섭고 괴상한 모습의 심해어가 아니라 분홍빛의 귀여운 물고기들이 오물오물 헤엄치고 있었다. 송사리처럼 귀엽고 투명해서 손으로 퍼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녁을 준비하는 바쁜 시간에 ‘딩동’ 하는 소리가 누군가의 내방을 알린다. 현관문을 열자 수수한 옷차림의 여인이 작은 바구니에 어린 상추를 소복하게 담아 들고 서 있다. “텃밭에 상추를 심었더니 꽤 예쁘게 자랐네요. 저녁 한 끼 맛있게 잡수세요.” 하고 서둘러 상추를 쏟아놓고 밝은 얼굴로 걸음을 재촉하는 K의 등에다 “잘 먹을게. 고마워” 하면서 소리 질러 인사한다.

K와는 30여 년 전에 작은 아파트 입주 동기로 가끔 만나서 차도 마시는 이웃이 되었지만, 그와의 사귐은 때때로 알 수 없는 좌절감을 느끼게 했다. 재산이 많다거나 학벌이 높다는 등의 사회적 열등감에서가 아니라 그의 사고방식과 일상생활이 교과서처럼 반듯해서 평범한 주부에게는 선망과, 자신의 성숙치 못한 삶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소문도 없이 다른 동네로 이사하고 몇 달이 지나서 찾아왔다. “저 이혼했어요. 남편에게 여자가 생겼어요.” 깜짝 놀라서 그를 바라본다. 현모양처의 모델 같은 그녀의 남편은 정말로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알 수 없는 것이 부부관계다.

“여기 아파트를 팔아서 절반을 남편에게 주었어요. 여자와 함께 미국으로 간다는데, 객지에서 돈 없으면 어떡해요. 친정과 친구들은 한 푼도 주지 말라고 하지만, 그와의 20여 년 삶은 정말로 후회 없는 행복한 시간이었고 내 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어요. 내 삶의 의미인 우리 딸들의 아버지인데 그렇게 할 수는 없지요. 그의 자리는 비어 있지만 우리 모녀들은 매일 깔깔거리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그도 우리처럼 행복하다면 더 바랄 것이 없지만… 그가 돌아오고 싶을 때 언제나 올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 놓았어요.”

그녀가 돌아간 후에 오랫동안 생각에 잠긴다. 밉지 않을까. 낮 시간은 맞벌이하는 친구 동생의 집에서 아이들을 돌봐주며 산다는데, 정말 행복한 것일까. 틈틈이 텃밭을 일구어 상추를 가꾸면서 작고 검은 씨앗의 변화 과정을 아이들과 함께 호들갑을 떨면서 기뻐하고, 나무 그늘에 앉아 부드러운 상추에 밥과 쌈장을 올려 볼이 터지도록 먹는다고 자랑한다. 이쯤 되면, 불행을 느낄 줄 모르는 천성을 타고 났거나 불행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지의 여인이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딸들에게 공부를 다그치는 법도 없고, 특별히 과외를 시키지도 못했지만 아이들은 모두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했다. 맏이가 신랑감을 데리고 왔을 때에도 딸의 결정을 믿고 진심으로 축복하면서 미국에 있는 아버지를 초대해서 결혼식을 아름답게 치렀다. 둘째딸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데모다 뭐다 해서 밤늦게 귀가해도 엄마는 굳건한 믿음과 기도하는 마음으로 돌아오는 시간까지 불 밝히고 기다린다. 어느 날 이제는 학업에만 열중하겠노라고 하더니 자신의 꿈인 의사로서의 길을 충실히 걷는다. 막내딸이 열병 같은 사랑을 하고 훌쩍 집을 떠나 외국으로 가버렸을 때에도 그는 믿고 기다렸다. 가방 하나 달랑 들고 혼자 돌아온 막내를 따뜻하게 안아 주면서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을 거라고 믿어 주었고, 절망하지 않고 돌아와 준 딸을 격려하며 감사한다.

K는 신세 한탄을 하거나 원망하는 일도 없고, 그 얼굴이 슬픔이나 고통으로 일그러진 것을 본적도 없다. 항상 밝고 맑은 표정으로 주어진 여건 속에서 작은 것을 찾아서 즐거워한다. 큰딸이 결혼한 후에는 손녀에게 푹 빠져 하루하루가 즐거움의 연속인 그녀의 삶은 본능적으로 행복을 찾는 긴 더듬이를 가진 것 같다. 세월의 흔적인 흰 머리카락이 조금씩 늘어나도 K가 열어 놓은 문으로 남편은 돌아오지 않지만 여전히 밝은 얼굴로 주변을 환하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고 ‘저렇게 살 수도 있구나’ 하고 감탄한다.

모든 생물은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이 살았던 최선의 경험을 후손에게 남겨주고 후손은 그것을 축적하고 발전시키면서 시간과의 끝없는 조율로 오늘을 살기에 가장 적합한 상태로 변화한다. 우리는 이것을 진화라고 부른다.

인간이 사는 세상을 고해라고 했던가. 누구에게나 힘들고 고통스럽고 버거운 일들이 출렁이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삶의 바다에는 희, 로, 애, 락이 거대한 물고기처럼 덮쳐온다. 거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면서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을 인간의 진화라고 한다면 괴물 같은 모습이 아니라 분홍빛의 아름다운 송사리이고 싶다. 삶의 무게가 아무리 무거워도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자신의 몸에서 엷은 빛을 만들어 자신과 주변을 밝게 비춘다면 인간이 살기에 좋은 밝고 환한 세상으로 바꾸어지지 않을까.

『아름다운 진화』 중에서
(서초수필문학회 지음 / 문학관books / 247쪽 / 12,000원)
번호 | 제목 | 일자
157 아름다운 진화 2011년 12월 23일
156 당신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사랑 2011년 11월 29일
155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2011년 10월 26일
154 사랑할 때 함께해야 할 것과 혼자 해야 할 것 2011년 09월 26일
153 함께 사는 마을 이야기 2011년 08월 30일
152 당신이 전철의 다른 방향을 보았을 때 2011년 07월 25일
151 나는 아무 두려움 없이 다음 다리를 건넌다 2011년 06월 27일
150 풀꽃 한 송이도 거저 피는 법 없다 2011년 05월 27일
149 도움받는 연습도 하세요 2011년 04월 25일
148 제부도 2011년 03월 30일
 
맨 처음으로 이전 10개 1 2 3 4 5 6 7 8 9 10 다음 10개 맨 마지막으로
 
  • 문화도시락
  • 베스트상품권
  • 문화사랑쿠폰
  • 북티켓
  • 한국독서능력검정 신청
  • 시스템 정기 점검시간 매주 금요일 낮 12:00~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