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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모든 핸디캡을 뛰어넘는다
 
 
아름다운 음악은 장애나 어려운 환경을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내가 확신하게 된 것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교향악단의 객원 지휘자로 초대를 받아 지휘를 할 때였습니다. 옛날에는 거의 모든 명판들이 이 오케스트라를 통해 나올 만큼 그 음악적 깊이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교향악단이었기에 내 마음은 설렘과 함께 걱정도 컸습니다.

그런데 첫 연습을 위해 연주홀을 찾은 나는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그 유명한 교향악단의 연습실이라고 하기에는 스튜디오의 입구부터가 엉성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깨진 슬레이트 지붕에 금이 간 벽돌……. 붕괴 직전처럼 보이는 건물에다 출입구는 또 어찌나 불편하던지 휠체어를 타고 들어갈 수조차 없을 정도였습니다. 간신히 들어온 먼지 날리는 스튜디오에서 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단원들을 기다렸습니다.

잠시 후, 악기를 들고 들어오는 단원들을 보자 나는 또 한 번 놀랐습니다. 그들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밖에서 어슬렁거리던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동네 일꾼들이라고만 생각했지, 그들이 바로 그렇게도 유명한 오케스트라 단원들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첫 대면부터 심상치 않은 인상을 받은 나는 알렉산더 슈스틴이라는 유명한 악장과 먼저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이틀 동안 리허설을 하고 녹음을 한 후 마지막 토요일에 연주회를 하려던 나의 예정을 깨고, 그는 첫날부터 아무런 사전연습 없이 음만 맞춘 후에 바로 녹음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속으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곡의 첫 음이 ‘뻥’ 하고 나는 순간, 나는 ‘그게 가능하겠구나’라고 확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무나 웅장하고 아름다운 소리가 터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나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 속에서 그들이 왜 그토록 깊이 있는 음악가로 정평이 나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를 마치 상임지휘자처럼 바라보고 존중했습니다. 에어컨도 없는 공간에서 몇 시간이나 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연습하는데도 누구 하나 짜증을 낸다거나 빨리 끝내자고 성화를 부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내가 예정보다 5-10분 정도 일찍 끝내려 하자 “한 번만 더 해보자”며 정해진 연습 시간을 훌쩍 넘길 정도였습니다.

놀랄 만한 일은 또 있었습니다. 동네 녹음실보다 더 보잘것없어 보이는 녹음실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유럽의 엄청난 연주자들이 녹음 작업을 한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더 놀란 것은 20대밖에 안 된 엔지니어에 대한 단원들의 순종이었습니다. 연주 도중 그가 마이크로 ‘스톱’을 외치면 단원들은 일제히 연주를 멈추곤 했습니다. 그러면 그가 “어떤 악기의 어느 부분의 소리가 이상하다”는 등의 지적을 했고, 단원들은 곧바로 교정을 해서 연주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엔지니어보다 두세 배는 나이가 많은 단원들도 100퍼센트 순종을 하며 따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나는 그곳에서 편집된 연주실황을 듣고 몇 군데를 지적했고, 그는 곧바로 수정을 해서 내게 마스터 테이프를 건네주었습니다. 내가 소니 음반회사에 부탁해서 음반을 내려고 한다고 하자, 그는 말했습니다. “혹시 누가 이 테이프를 리마스터링(고도의 기술 전문가가 밸런스나 음질 등의 완벽을 기하기 위해 기술적인 작업을 다시 하는 것)한다면 음반에서 제 이름을 빼주십시오.” 나는 ‘이 친구가 왜 그런 얘기까지 할까?’ 싶었습니다. 고가의 비용이 드는 일이었지만, 당연히 리마스터링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 후 나는 연주회까지 잘 마치고 서울에 돌아가 소니 관계자와 함께 음반 일을 추진했습니다. 마스터 테이프를 들은 소니 측 전문가에게 내가 물었습니다. “리마스터링은 어떻게 하기로 했나요?” 그러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안 해도 되겠습니다.” 아, 그 대답을 듣고 얼마나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지……. 그 정교하고 화려한 녹음 장비를 갖춘 소니에서도 더 이상 손볼 게 없을 정도의 기술을 젊디젊은 러시아 엔지니어가 갖고 있었다는 게 새삼 놀라웠습니다. 허름한 스튜디오에서 가장 웅장한 소리를 내는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초라한 녹음장비로 가장 섬세한 녹음을 해낸 엔지니어, 이들을 생각하니 감동이 물밀듯 밀려왔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러시아에서 나는 또 한 사람에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제5번 <황제>를 연주한 피아니스트 이재혁이란 친구였습니다. 시각장애인인 그는 피아노 건반뿐 아니라 악보 전체를 외워서 피아노를 쳤는데, 내가 볼 때 그의 음악은 앞이 안 보이는 장애에 전혀 갇혀 있지 않았습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고, 이 사실을 그곳의 천재 엔지니어도 알아보았던 것 같습니다. 단원들의 미세한 실수 하나까지 짚어내며 연주를 자주 중단시켰던 그도 이재혁의 연주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멈추게 하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음악은 결코 어려운 환경에 갇히거나 신체적 장애에 굴복되는 법이 없다는 사실을 나는 그곳에서 깨달았습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과의 연주회 이후, 나는 휠체어에 앉아서 지휘하는 나의 한계에 대해 자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앉아서 지휘하기 때문에 내 마음의 노래는 이미 다른 사람들보다 더 넓고 푸른 창공으로 날아다니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 『휠체어는 나의 날개』 중에서
(차인홍 지음 / 마음과생각 / 248쪽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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