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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책에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나는 누구인가가 중요하지 않고 다만 나는 상대에게 누구인가가 더 중요해진다.”

아내와 결혼 전 열차를 타고 눈꽃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런데 그날 내가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그녀의 모습만 모노드라마처럼 떠오른다. 눈꽃열차에서 날 보며 환하게 웃던 얼굴, 얼음조각상 안에 들어가서 신기해하며 좋아하던 모습, 큰 개가 끄는 썰매를 타고 소리치며 좋아하던 모습, 커피를 좋아하는 그녀가 눈 내리는 그곳에서 커피를 호호 불며 마시던 모습. 온통 그녀의 기억뿐이다.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을 텐데, 기억나는 게 그녀뿐이라니, 그녀의 모습만 내 눈에 담느라 아마도 다른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때 그 여행이 무척이나 좋아서였을까, 결혼 전 아내와 약속한 게 있다. “1년에 한 번씩 여행하자.” 발병한 뒤에는 그 약속이 더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함께 여행을 갈 수 있을까. 그래서 아내와의 여행은 늘 생의 마지막 축제처럼 애틋하다.

2004년, 나는 급성맹장으로 수술을 받게 되었고, 그때 내 몸 안에 희귀암인 GIST(위장관기저종양)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 후 1년밖에 살 수 없다는 선고를 받고도 그 약속받은 시간을 지나 10년째 살아 있다. 독한 항암제를 장기간 먹은 탓에 뼈와 가죽밖에 남아 있지 않은 몸 그리고 세 번의 대수술. 포기하고 싶고 좌절해 넘어질 때마다 지친 나를 일으켜 세운 사람은 아내다. 오늘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내일이란 시간을 내게 선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나의 아내. 그녀는 내게 가장 큰 희망이자 동시에 눈물이다.

2013년 3월이 되자 몸은 뼈가 보일 정도로 말라 가고 머리카락도 거의 다 빠졌다. 걷기도 힘들 정도가 되어 병원에 다시 입원했을 때 병원에서는 또 한 번 시한부 선고를 했다. “한 7일 정도 살 수 있을 겁니다.” 아픈 환자인 나 대신 보호자인 아내가 이 말을 들었다. 난 바보처럼 그것도 모르고 붉게 물든 아내의 눈을 바라보며 나 때문에 잠을 잘 못 잔 탓이라고 단순히 생각했다.

배는 임산부처럼 만삭이 되어 갔다. 어느덧 암이 나의 배를 다 채워 갔고 서서히 등 뒤도 암 덩어리가 밀려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7일 정도 살 거라고 했는데, 병원에서 15일을 지냈다. 의사는 아내를 불러 말했다. “지금까지 버틴 건 기적이에요. 하지만 한 달을 넘기기 어려울 겁니다. 이제 그만 퇴원해서 집에서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해 줄 것이 없다는 말이었다. 난 그런 것도 모르고 퇴원이라는 말에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아내는 애써 웃었다.

퇴원했다는 단순한 행복감에 콧노래를 흥얼거릴 때, 아내가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당신에게 멋진 빵 가게 하나 차려 주고 싶어.”
“그런 거 말고, 자기를 위해서 하고 싶은 거 없어?”
“당신을 위한 게 나를 위한 거지.”

아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퇴원하고 한 달이 거의 되었을 때 갑자기 어지러웠다. 다시 구급차를 타고 도착한 서울아산병원 응급실. 어느새 주삿바늘이 나의 팔에 수혈을 해 주고 있었다. 온몸이 한기로 떨렸다. 말을 이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각종 검사를 한 뒤 의사가 아내를 불러냈다. 내 상태를 이야기하는 모양이었다. 몇 분 후 아내는 응급실 커튼 안으로 들어와 아무 말 없이 나에게 입을 맞췄다. 아내의 입술에서 짠 소금 맛이 났다. 창백해진 아내의 얼굴과 붉어진 눈과 눈물을 보면서 ‘아, 이제 마지막이구나. 정말 아내를 두고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침착하려 애쓰며 지금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면…… 나 오늘 죽는 건가?”
“응, 어쩌면 오늘…….”

아내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면서 더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막으려는 듯 다시 내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 순간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아내에 대한 연민과 사랑만이 가득 차올랐다. 그것은 싸늘한 두려움을 덜어 주는 유일한 온기였다.

나는 곧 수술실로 들어갔고, 눈을 떴을 때 아내의 아름답던 얼굴은 불과 몇 시간 사이에 너무나 초췌해져 있었다. 그래도 난 죽을 거라던 그 수술에서 살아났고 병원에서는 나를 ‘기적의 사나이’라고 불렀다. 의사들은 나를 볼 때마다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슈퍼맨인 거 아시죠?” 그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며 나는 생각했다. ‘그래, 진짜 슈퍼맨처럼 아내를 위해 이대로 병을 완전히 이겨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끝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살면서 기억하고 사랑할 것이다.

- 『사람이 사는 집』 중에서
(김성환 지음 / 나무의마음 / 328쪽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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