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시도서관
전체도서목록 신간도서목록 광명시도서관 바로가기
도서요약본 오디오북 북세미나 오디오강연 어학클리닉 어린이도서관
인포북 전자도서관 인포북 사랑하는 가족에게
사랑하는 가족에게 책에서 만나는 건강정보 서평칼럼 책속의 여행정보 가슴이 따뜻한 이야기
세월은 힘이 세잖아!
 
 
모임이란 모임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워낙 너울가지가 좋아 잘 어울리며, 노래방이라도 갈라치면 맛깔난 솜씨로 주변을 압도하는 사람, 어쩌면 그는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깜깜한 빈집에 혼자 문을 따고 들어가 외롭게 밤을 지내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몇 해 만에 참석한 동창회에서 경기는 어려워도 자기는 그럭저럭 쏠쏠하다며 애써 부산을 떨던 사람, 어쩌면 그는 하던 사업을 접고 쓸쓸히 공원이나 배회하며 하루를 힘겹게 보내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우린 모두 새색시 속살 감추듯 남에게 숨기고 싶은 사연 하나쯤을 가슴에 품고 사는 것은 아닌지.

내게는 30년 넘게 한 직장에서 가깝게 지내는 친구가 있다. 두 사람 모두 말수가 적어 살갑게 굴진 않아도 오랜 시간을 같이 있다 보니 표정만 봐도 서로의 속뜻을 알 수 있는 둘도 없는 친구다. 유달리 가정적인 그는 슬하에 남매를 두었는데 특히 아들은 그의 자랑이자 자부심이었다. 서울의 유수한 의과대학 졸업반으로 착실한 성품에다 인물마저 출중해 남들의 부러움을 사곤 했다. 하지만 하늘도 시기를 한다고 했던가. 지난해 2월, 친구들과 설악산을 다녀오던 그 아들의 차가 그만 대형트럭과 충돌하는 바람에 타고 있던 사람이 모두 사망한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벌어졌다. 정말 안타깝고 허망한 참극이었다.

소식을 전해 들은 난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친구를 걱정하며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 부부의 정황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 혼절과 오열을 반복하던 그의 아내는 결국 병실로 떠메여 올라갔고, 핏기 잃은 얼굴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영안실 밖 의자에 앉아 있던 친구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넋이 나간 듯 멍하니 그 의자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장례식이 치러지는 삼 일 내내 그곳에 있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의 곁에 있어 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당한 슬픔을 속으로 삭이며 앙버티는 그에게 위로해 줄 어떤 말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장례절차에 따라 그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며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끝내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은 채 석상처럼 앉아 있던 그의 모습이었다.

아들을 잃은 충격에 그가 보인 반응은 남달랐다. 이레 만에 출근한 그는 주변 사람들이 보내는 애달픈 진심에도 결코 눈물을 보이거나 슬픈 표정을 짓지 않았고, 흔히 가질 법한 원망이나 분노의 감정도 전혀 없어 보였다. 다만 그저 자신을 어디에다 냅다 집어 던져 버린 듯 오히려 덤덤했고, 전에 없이 혼자 있으려 애를 쓰고 어금니를 꽉 깨문 굳은 얼굴로 평소보다 훨씬 더 업무에 매달렸다. 나를 비롯한 누구와의 술자리도 수락하지 않았고 어떤 동행 요청도 한마디로 거절했다. 마치 충분하다고 느낄 때까지 가혹하고도 철저히 스스로에게 형벌을 가하는 듯 느껴졌다.

활활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도 시간은 가는가 보다. 그가 아들을 앞세운 지 수개월이 지난 어느 날,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당신 집 앞이야! 얼굴 좀 볼까 싶어 왔는데.” 나는 화급히 집을 나섰고 얼마 후 조용한 술집에 마주 앉았다. 많이 수척해진 그의 얼굴을 모처럼 똑바로 쳐다보자, 그는 슬그머니 내 눈을 피하며 고개를 떨궜다. 그러곤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우는 데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는 줄 몰랐어. 그동안은 울 수조차 없을 만큼 뼈가 녹듯 아팠어! 목을 놓아 울고 싶어도 기가 넘으니 울어지질 않더군.” 그는 점점 더 고개를 숙이며 온몸으로 오열했다. 나는 그대로 두었다. 실컷 울어볼 수 있도록 그의 옆에서 한참을 그냥 앉아 있었다.

“죽을 만큼 슬픈 사람에게 주변의 과장된 공감이 얼마나 큰 고통이던지…… 살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서 잊고 있는데 뜬금없이 던지는 위로의 말이 예리한 비수가 되어 가슴에 박히더군.” 벌겋게 충혈된 그의 눈에선 쉼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멀찍이 서서 ‘네가 거기 있음을 알고 있어. 그리고 옆에서 너를 항상 지켜보고 있을게’라고 말하는 당신의 눈빛이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아무도 모를 걸세.” 코끝이 싸해진 나도 그만 눈물이 번져 흘렀다.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채 그 긴 절망의 터널을 빠져나오기 위해 버둥거렸을 친구의 모습이 한없이 가여워 보였다.

인간은 누구나 저만이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가 있다. 아무리 남에게 하소연을 해본들 절대로 나눠질 수 없는 각자의 짐들이 있는 것이다. 아프고 배고픈 사람 곁에 있다고 그 아픔이나 배고픔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인생은 오롯이 자신만이 견디며 가야 할 외로운 길이라고 하는 것이겠지. 우리가 헤어질 무렵엔 날이 많이 어두웠다. 악수를 하고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세월은 힘이 세잖아!’

문득 올려다본 하늘엔 아무도 봐주는 사람이 없어도 별 몇 개가 스스로 빛을 내며 반짝이고 있었다.

- 『여전히 간절해서 아프다』 중에서
조헌 지음 / 계간문예 / 346쪽 / 12,000원)
번호 | 제목 | 일자
197 이게 사랑이 아닌데…… 2015년 06월 02일
196 초심 2015년 04월 30일
195 어쩜, 가족이 다 못 듣는다니! 2015년 03월 30일
194 세월은 힘이 세잖아! 2015년 03월 02일
193 행복 베이커리 2015년 02월 02일
192 연약하고 부드러운 넝쿨손처럼 2014년 12월 31일
191 꽃보다 예쁜 꽃 2014년 12월 01일
190 무시무시한 시간의 역습, 권태 2014년 10월 31일
189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2014년 09월 30일
188 아버지 2014년 08월 28일
 
맨 처음으로 이전 10개 1 2 3 4 5 6 7 8 9 10 다음 10개 맨 마지막으로
 
  • 문화도시락
  • 베스트상품권
  • 문화사랑쿠폰
  • 북티켓
  • 한국독서능력검정 신청
  • 시스템 정기 점검시간 매주 금요일 낮 12:00~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