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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받아들이는 순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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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우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새로운 학교에서의 첫 수업을 앞두고 나는 선생님께 10분 정도 아이들과 이야기할 시간을 내주실 것을 부탁드렸다. 학부형이 교실 앞에 서자 의아한 눈빛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이미 준우는 자리에 앉아 박수를 치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고, 그런 준우를 아이들은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말을 건넸다.
“나는 강준우 아버지야. 준우는 너희들처럼 신체는 건강하지만 발달장애 자폐아야.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문제가 있어. 준우는 가끔 박수도 치고, 알지 못하는 말을 하기도 하고, 뭘 물어도 전혀 대답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혼자 기억하는 친구야. 그런 것들은 너희 들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가지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너희들의 사랑과 이해가 필요해.”
내 말이 끝나자, 자기와 전혀 다른 친구에 대해 신기하다는 듯이 보는 친구도 있었고, 어떤 친구는 눈가가 촉촉해지고 있었다. 그러다 그중 한 명이 손을 들며 나에게 웃음을 보였다.
“아저씨, 저 준우 친구예요. 초등학교 때 준우와 같은 반이었어요. 저 준우 잘 아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친구들에게 설명하고 모두들 잘 지낼게요.”
우리 학교사회가 병들어 있는 것은 지극히 일부의 교사와 학생들만의 이야기가 아닐까. 내가 아버지가 되어 지금까지 들여다본 학교사회는 너무나 건강했으며 희망적이었다. 준우에게서 아직까지 몸에 멍 자국을 본 적이 없다. 아무도 준우를 때리지 않고 준우 편이 되어 주며 잘 돌봐 준 것이다.
얼마 전 일일 교사로 준우의 반에서 수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40분이라는 수업 시간 동안 준우는 책상과 책상 사이를 여섯 번을 휘젓고 다녔고 네 번의 혼잣말로 수업의 집중을 깨놓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반 학생들이었다. 아이들은 전혀 동요되지 않고 나의 말에만 집중했다. 나는 순간 궁금해졌다.
“준우가 평소 수업 도중에도 이러니?”
“네, 종종 그래요.”
“불편하지 않아?”
“이젠 전혀 그렇지 않아요.”
아이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나는 무척 놀랐다. 전혀 그렇지 않다는 말은 준우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일 텐데… 어른에게도 힘든 일을 아이들이… 정말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를 이해하고 인정하고 존중하는 일이 필요하다. 부부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차이는 절충이 되기가 무척 어렵다. 교육철학이나 양육방식에 대한 생각도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을 위해서는 해결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그런데 어쩌면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쪽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라주면 된다. 둘의 의견을 끝까지 고집하다가는 결국 대화의 단절로 이르게 되고, 끝내 좋은 해법도 나올 수가 없다. 한쪽의 뜻을 따라주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는 슬기로움이 필요하다.
아내도 이해하기가 어려운 의견들을 많이 내는 편이었다. 모든 것들이 집요했고 치열한 방식이었다. 아이들을 위해 밤에는 몇 시가 되면 창문을 닫아야 한다든가, 취침 시에는 바깥공기가 들어와서는 안 된다든가, 그 외에도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이해할 수 없는 규칙들이 있었다. 내가 보기엔 이상한 논리와 강박 같은 것들이 있는 것 같았다. 별것 아닌 일에도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낼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맞불을 놓는 순간 전쟁이 시작되었다.
2004년도는 우리 부부에게 너무나도 힘든 시절이었다. 서로 배려하지 않았으니 사소한 일에도 언쟁이 붙었다. 준우의 장애에 힘을 쏟아부어도 모자랄 판에 극도의 감정소모는 커져만 갔다. 서로가 고통스러웠다. 이렇게 마음이 안 맞을 수가 있나, 하며 속으로 서로를 질타했다.
그러다 깨달은 것이, 그런 고비를 넘기는 유일한 방법은 한쪽이 다른 한쪽의 편을 모두 들어주는 것뿐이라는 사실이었다. 두 사람의 갈등은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름에 있지 않다. 조금의 차이 때문이다. 그런데 그 조금의 차이로 부부의 갈등이 지속되면 가정이 피폐하게 된다. 가족도 사업도 모두 결손으로 내달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갈등을 해소하고 감정을 비워내는 일은 그냥 쌓이지 않는다. 지는 즐거움을 알기 시작할 때 비로소 성큼 성숙하게 된다.
- 『사랑 한 술』 중에서
(강태규 지음 / 푸른봄 / 224쪽 / 13,8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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