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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이 사랑은 커나갈 수 없다
 
 
(앤도 슈사쿠 지음/시아출판사/191쪽/9,000원)

1982년 10월 10일, 로마의 바티칸 성당에서 콜베 신부의 시성식이 거행되었다. 시성식은 카톨릭교회가 죽은 자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이며, 이로써 콜베 신부는 세상을 떠난 지 41년 만에 '성인' 품위에 오르게 되었다.

콜베 신부는 1930년 폴란드에서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일본으로 왔다. 5, 6년 정도 포교활동을 하다가 조국인 폴란드로 돌아가 수도원장이 되었지만,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되었다.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여 그곳을 점령하자, 콜베 신부는 동료와 함께 지상의 지옥이라 불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그곳에서는 세균부대와 똑같은 인체실험이 자행되었으며, 강제노동을 견뎌내지 못한 노인과 아이들, 그리고 여자들은 가스실로 보내져 독가스로 살해되었다. 살아남은 성인 남자들은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우슈비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늪지대를 메우는 중노동과 시체를 태운 뼈를 모아서 버리는 작업을 했다. 그들에게 주어진 음식이란 고작 하루에 빵 한 덩이와 멀건 수프뿐이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수용자들은 갈수록 쇠약해질 수밖에 없었고, 쇠약해져 도저히 노동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가스실 속으로 내던져졌다.

전에 아우슈비츠에 가서 수용소 안의 고문실과 가스실을 직접 본 적이 있었는데, 그 후 사흘 동안 나는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심한 충격을 받았다. 그런 곳에서 하루에 빵 한 개로 연명해야 한다면 남의 빵을 훔쳐 먹거나 아픈 사람에게 자신의 빵을 나눠주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리라. '내가 저 사람의 빵을 뺏어 먹는 바람에 그 사람이 노동을 하다가 쓰러진다 한들 이런 지옥 같은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지 않은가'라고 자기변호를 하면서 스스로를 납득시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터 프랭클의 『밤과 안개』를 읽어보면, 수용소 안에 환자가 발생하면 아침에 노동하러 나갈 때 배급된 빵 한 개를 환자의 머리맡에 놓고 나가는 사람이 극히 소수이긴 해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에도 급급한 극한의 상황 속에서 자신의 생명의 빵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대단한 결심을 한 것이다. 아우슈비츠와 같은 곳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준 것이 이 무명의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하자 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 속에서 콜베 신부는 무슨 일을 한 것일까. 성인으로 시성될 만한 행위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어느 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탈주자가 발생했다. 대부분의 탈주자는 주변의 늪지대에서 체포되었지만, 한 사람의 탈주자가 나올 때마다 열 명을 무작위로 선발해 아사형에 처하는 관행이 있었다. 그날 아침, 나치는 그를 대신해 죽을 사람들을 뽑기 위해 수용자 전원을 세워놓고 열 명을 지명했다. 그때 지명 당한 한 남자가 자신의 아이들과 아내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자신은 죽을 수 없다고 울부짖었다. 그러자 콜베 신부는 자신이 지명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열 속에서 빠져나와 말했다. "내가 이 사람 대신 아사실로 들어가겠으니 이 사람은 살려주십시오. 나는 신부이기 때문에 아내도 자식도 없습니다."

수용소장은 어쩐 일인지 순순히 그의 말을 들어주었고, 콜베 신부는 아사실로 끌려갈 열 명에 합류했다. 콜베 신부 대신 목숨을 건진 이 남자는 지금까지도 살아 있다고 한다. 당시 콜베 신부는 아사실 안에서 2주 동안을 살아남았는데, 그것을 지켜본 독일 병사는 두려운 나머지 그의 죽음을 재촉하기 위해 독약 주사를 놓았고, 콜베 신부는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물론 나는 여기서 콜베 신부처럼 살라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나조차도 그런 식으로 살 자신이 없으며, 대부분의 인간에게는 콜베 신부와 같은 삶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사실만은 기억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벗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라는 성서의 구절을 몸소 실천한 그는 가히 '성인'의 반열에 오를만하다.

우리가 아무리 궁핍하게 살고 있고, 생활이 어렵다 한들 아우슈비츠의 처참함에 견줄 수 있을까. 그런데 그런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하루 양식을 환자의 머리맡에 놓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런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사랑'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극단적으로 말해, 고통이 없는 인생은 별 의미가 없다. 인생에 고통이 있고 슬픔이 있기에 사람들 사이에 사랑이 존재하는 것이리라.

또한 모든 것을 아우슈비츠의 비참한 상황 탓으로 돌리지 않고 자신의 의사와 이성으로 자신의 행동을 결정했다는 것, 그것은 바로 우리가 열망해야 할 '진정한 자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진정한 자유란, 자기 행위의 원인을 다른 것, 즉 사회나 정치에 전가시키지 않고 자신의 의사를 결정하는 것일 테니까.

- 『삶을 사랑하는 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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