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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발 하나로 쓴 행복한 자서전
 
 
10살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순간적인 즐거움에 안달복달하는 호기심 많은 어린애가 아니었다. 거울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스런 현실을 여실히 말해주고 있었다. 흐느적거리는 머리와 한쪽으로 삐딱하게 쳐진 입. 그 입은 뭘 얘기하려고 할 때마다 침을 질질 흘리며 끙끙거릴 뿐이었다. 뇌성마비 불구자, 그것은 내 운명이었다! 난 이제 막 자신의 불행을 발견한 한 불구자의 시선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바라보게 되었다.

엄마는 나에게 일어난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차렸다. 어느 누구보다도 나를 잘 이해하는 엄마는 나의 외톨이 의식이 깊어지면 자폐증이 오지 않을까 근심이 깊어졌다. 그래서 내가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는 소일거리들을 자꾸 만들어냈다. 내가 오로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왼발에 연필을 쥐고 신문에 실린 얘기들을 종이에 베껴 쓰는 것도 그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도 지쳐버렸다. 엄마의 피눈물 나는 노력에도 아랑곳없이 나는 더욱 내면 깊숙이 침잠했다. 난 피를 철철 흘리는 상처받은 짐승이었다. 예전의 행복한 어린아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내겐 다른 그 무엇이 절실했다. 내 깊은 가슴속에서 용암처럼 분출하는 팽팽한 정신적 에너지를 표현할 방법이 필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형의 물감 상자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 상자에는 색색의 물감들과 그림붓들이 들어 있었다. 나는 신기한 그 물건에 단번에 홀려버렸다. 난 발가락에 단단히 붓을 고정시키고 종이를 펼쳤다. ‘그림은 처음인데… 뭘 그리지?’ 엄마가 나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 왼발이 마침내 종이 위에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종이에는 그림이 하나 그려졌다. 그것은 십자가였다. 비뚤비뚤하고 서툰 솜씨였지만 누가 봐도 십자가가 분명했다. 난 엄마를 보며 의기양양하게 싱긋 웃어 보였다. 엄마는 나를 가만히 안으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크리스티, 정말 대단해! 그림은 처음인데 이렇게 잘 그리는 걸 보니, 앞으로 넌 천재적인 화가가 될 거야!”

내가 밤낮으로 열심히 그림을 그리자 우울했던 엄마도 환해지셨다. 난 확실히 변화하고 있었다. 불행의 골짜기에서 나와 다시 행복해지는 법을 발견한 것이다. 난 그림을 그리는 동안만큼은 순수한 희열감을 느꼈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미지의 세계가 달려와 나를 나 이상의 것으로 승화시켜주는 듯했다. 엄마는 언제나 내 발가락에 붓이 꽂혀 있도록 헌신적으로 배려해주었고, 나는 내 왼발을 형제들이 자기 손을 사용하는 것만큼이나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11살이 되던 어느 날이었다. 임신한 엄마가 몹시 배가 아파 병원으로 실려 갔는데, 아기를 낳고도 계속 아프다가 급속히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벌어졌다. 우리 가족들은 거의 공황상태에 빠졌다. 엄마가 없는 집안은 고장 난 시계처럼 생명을 잃고 적막감이 돌았다. 난 이제 그림조차 그리기 어려워졌다. 엄마가 죽으면 어떡하나 생각하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12월의 추운 겨울 저녁이었다. 거실 소파에 웅크리고 있는데 현관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불안한 표정의 아빠가 일어서 나갔고, 잠시 후 문이 열리더니 한 여자와 거실 쪽으로 들어왔다. “저 애가 크리스티요.” 그녀는 내게 다가와 아름다운 미소를 띠며 인사했다. “안녕, 크리스티. 나는 델라라고 해.” 그녀는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학생이었는데, 거기서 엄마를 만났고, 내가 왼발로 그림을 그린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직접 나를 만나보고 싶었다고 했다. 또 나를 몹시 걱정한 엄마가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간단한 편지라도 받아다주면 고맙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왼쪽 발가락으로 연필을 잡고 낡은 봉투 뒷면에 글을 썼다. “사랑하는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고 좋아요. 음식도 충분해요. 우리 걱정 마시고 빨리 나으세요. 크리스티.” 마지막에 ‘키스’라고 쓰려다가 그만 두자 그녀가 쓰는 게 훨씬 좋을 거라고 말해 봉투에 커다랗게 ‘키스’라고 썼다. 그녀는 다시 오겠다고 약속한 후 떠났고, 며칠 뒤 정말 기쁜 선물을 가지고 왔다. 엄마가 많이 좋아져 조만간 집으로 돌아올 거라는 소식이었다. 더구나 내게 줄 선물로 그림물감과 붓, 스케치북이 든 큼지막한 보따리까지 갖고 왔다. 엄마가 퇴원한 이후로도 델라 누나는 계속 우리 집을 찾아왔고, 보잘것없는 내 그림을 마치 걸작을 보듯 감탄하며 봐 주었다.

어느 일요일 오후, 신문을 뒤적이는데 그림대회 광고가 눈에 띄었다. 나는 엄마와 델라 누나의 격려에 힘입어 자신은 없었지만 도전해보기로 했고, 혼신을 다해 그림을 그려 신문사로 보냈다. 그리고 아무 일 없이 한 주가 지나고 그 다음 주 금요일이 되었다. 거실에서 물감과 붓을 잔뜩 늘어놓은 채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현관에서 노크 소리가 났다. 엄마가 문을 열자 밖에 신문기자가 서 있었다. 델라 누나가 신문사에다 그 그림은 한 소년이 발로 그린 그림이라고 제보했고, 반신반의한 신문기자는 직접 확인하기 위해 우리 집을 방문한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아빠가 방문을 박차고 들어와 내 얼굴 앞에 신문을 흔들어 보이며 소리쳤다. “크리스티, 이것 봐! 당선됐어, 당선!” 사실이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커다란 내 사진이 신문의 중앙에 실려 있었다. 식구들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날 낮에는 델라 누나도 찾아왔다. “크리스티, 정말 너무너무 자랑스러워!” 내 ‘꿈의 여인’ 델라 누나는 내 이마에 기쁨의 뽀뽀를 해주었다. 나의 왼발로, 난, 해낸 것이다! 다시 일어난 것이다!

- 『나의 왼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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