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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모든 것을 가져가시고 희망이라는 단 하나를 남겨 주셨다
 
 
2003년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로 임용된 나는 기초과학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학문에 대한 열정과 도전의식을 심어 주는 것이 가장 큰 가르침이라는 생각으로 교육에 임했다. 그리고 2006년, 학생들에게 과학자의 자세를 가르치기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칼텍)과 공동으로 미국 야외지질조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06년 7월 2일, 우리는 이 탐사여행의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정단층 지대를 보기 위해 데스밸리로 향했다. 가장 험난한 코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생들은 두 대의 밴에 나누어 타고 있었는데, 그중 한 대는 내가 몰았고 나머지 한 대는 칼텍의 유학생으로 있던 최은서 군이 몰았다. 그런데 바로 그 마지막 코스에서 내가 운전하던 밴이 전복사고를 일으켰다. 나는 사고 이후 그날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그런데 그날 아침 내가 최은서 군에게 차를 바꿔서 운전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일정의 막바지에서 그쪽 밴에 탄 학생들이 긴장의 끈을 놓고 해이해지지 않을까 해서였을 것이다. 그동안 쭉 몰던 밴을 운명의 그날 아침 바꾼 것이다. 나는 나중에 그 이야기를 듣고 일이 그렇게 되려고 그랬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사고로 인해 나의 척추 C4는 완전히 손상되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스스로 호흡하고 말을 하며 음식을 삼키고 목과 얼굴을 움직일 수 있는 정도다. 목과 어깨 아래의 몸은 이제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마취를 하지 않고 수술을 해도 고통을 느낄 수 없다. 오대양을 누비며 연구 활동을 진두지휘해 온 정력적이고 열정적인 과학자의 삶이 어느 날 갑자기 전동 휠체어 안에 갇히고 말았다. 그러나 아무리 잔인해도 현실은 현실이었다. 나는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느니 이 상태에서 보람있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전념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를 살린 것은 줄기세포가 아니라 IT 기술이었다. 컴퓨터를 이용해 인터넷에 접속하는 순간, 나 같은 장애인과 정상인의 격차는 현격하게 줄어든다. 재활의 성공 여부는 네트워크에 얼마나 성공적으로 접근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러한 ‘접근성’을 갖는다는 것은 장애인이 직업 활동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하며, 그것은 곧 자립을 의미한다. 장애인이 자립할 수 있다는 것은 비장애인에게도 축복이다. 나는 손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컴퓨터의 키보드나 마우스를 쓸 수가 없어서 다른 방식으로 컴퓨터에 명령을 입력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것은 인테그라 마우스다. 입김으로 작동을 한다. 그리고 글을 쓸 때는 음성인식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내가 학교로 돌아온 것은 사고를 당한 지 정확히 6개월 만이었다. 1월의 서울대는 몹시 추웠다. 사고 때 같은 밴을 탔던 학생 혜정이의 죽음을 뒤늦게 알고 절망과 슬픔, 무력함에 빠져 있던 나를 흔들어 깨워 준 것은 동료 과학자들이었다. 특별히 공대의 이건우 교수님은 학술상 상금으로 받은 1억 원 전액을 나의 회복과 연구 활동 지원을 위해 기부해 주셨다. 나는 그 돈으로 ‘이혜정 장학금’을 조성했고, 그로 인해 자연대에서는 “공대 교수도 저렇게 하는데 우리도 나서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다. 그리고 학교로 돌아오는 데 걸림돌이 되었던 여러 가지 문제가 순식간에 해결되었다.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예전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삶의 보석들이 자주 눈에 띈다. 매순간 매순간이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다. 생애 최고의 순간은 아직 살아보지 못한 날들 속에 숨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늘은 모든 것을 가져가고 희망이라는 단 한 가지를 남겨 두었다. 그리고 희망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의 긍정에 대해 배웠다. 고통 속에 눈물 흘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이보다 더 장엄하고 숭고한 삶의 순간이 어디 있을까.

얼마 전 나는 새로 나온 보조기기에 관한 정보를 찾아 웹서핑을 하다가 마리 프랑스 브루를 만났다. 나는 넋을 잃고 브루가 컴퓨터를 사용하는 동영상을 지켜보았다. 브루는 대학 강사로 평탄한 인생을 살아왔다. 그러나 13년 전, 52세에 루게릭 병이 찾아왔다. 그녀의 증세는 심했다. 홀로 숨을 쉴 수도, 말을 할 수도 없다. 호흡은 기계에 의존하고 있다. 그녀의 목에 연결된 호스들을 제거하면 그녀는 15분도 생존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컴퓨터를 이용해 마음껏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나는 그녀에게서 놀라운 에너지를 느꼈다. 곧바로 나는 그녀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웹사이트를 통해 당신의 이야기와 당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나하나가 감동적이었습니다. 나는 1년 6개월 전 교통사고로 목 아래 전신을 쓸 수 없는 사지마비 장애인이 됐습니다. 그때가 44살이었지요. 그러나 나는 얼마나 행운아인가요. 비록 정상인 폐활량의 40% 정도밖에 안 되지만 스스로 호흡을 하는 데 무리가 없습니다. 말도 유창하게 잘하죠. 밥도 마음껏 먹습니다. 더 긍정적인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그러자 며칠 후 브루로부터 답장이 왔다. “나를 보고 미스터 리는 ‘그래도 나는 행운아다’라고 느꼈다죠? 나를 보고 용기를 얻었다고요? 무슨 말씀을! 나야말로 당신을 보고 ‘나는 그래도 복 받은 사람이야’라고 느낍니다. 나는 13년 전에 루게릭 진단을 받았지요. 그때가 52세입니다. 난 당신 나이에는 날아다녔어요.”

나는 그녀의 답장을 읽는 순간 소리 내어 웃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고, 말조차 할 수 없는 그녀가 나를 웃기고 세상을 감동시키고 있었다. 그 위대한 에너지 앞에 나는 한없이 겸손해졌다.

- 『0.1그램의 희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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