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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처럼 빛나던 ‘나무와 여인’
 
 
박수근 화백을 알게 된 것은 1951년이 저물어가는 겨울이었다. 그때 나는 스물한 살이었고, 서울대학교 문리대 국문과에 입학한 이듬해였다. 그때만 해도 서울대에 여학생이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희귀했을 때라 내 위에 누가 있으랴 싶게 콧대가 높았었다. 그러나 입학하자마자 6.25가 나고 집안이 몰락해서 어린 조카들과 노모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되고 말았다. 환도 전의 최전방 도시 서울에서 찾을 수 있는 직장은 미군부대가 고작이었던 때였는데, 운좋게도 나는 거짓말처럼 쉽게 PX에 취직이 됐다.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자리에 있던 미 8군 PX는 아래층만 매점이었고, 그것도 삼분의 일가량은 한국인 업자에게 위탁매장으로 내주고 있었다. 나는 그 매장들 중 하나인 초상화부로 배치를 받았는데, 그곳엔 다섯 명 정도의 궁기가 절절 흐르는 중년남자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전쟁 전엔 극장 간판을 그리던 사람들이라고 했다. 업주가 그들을 간판장이라고 얕잡아보니까 나도 그렇게 알고 함부로 대했다. 박수근 화백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내가 초상화부에서 할 일은 미군으로부터 초상화 주문을 맡는 일이었다. 제 발로 걸어와서 초상화를 그리겠다고 주문하는 미군은 거의 없었다. 먼저 말을 걸어 초상화를 그리도록 꼬시는 일이 나의 주된 업무였다. 나에겐 전혀 맞지 않는 일이어서 그림 주문이 거의 끊기다시피 했다. 업주가 무어라고 하기 전에 화가들이 먼저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월급제였지만 그들은 작업량에 따라 일주일에 한 번씩 그림 삯을 타가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화가들이 나에게 불평을 할 때도 박수근은 거기 동조하는 일이 없었다. 남보다 몸집은 크지만 무진 착해 보이고 말수가 적어서 소 같은 인상이었다.

그러나 그 바닥은 결코 착하고 점잖은 사람을 알아볼 만한 곳이 아니었다. 나부터도 그랬다. 말문이 열리고, 또 어느 정도 뻔뻔스러워지기도 해서 돼먹지 않은 영어로 미군에게 수작을 걸 수 있게 되고, 차츰 그림 주문도 늘어날 무렵부터 나는 화가들에게 안하무인으로 굴기 시작했다. 내 덕에 먹고산다는 교만한 마음이 그들을 한껏 무시하고 구박하게 했다. 나에겐 아버지뻘은 되는 사오십대의 어른인데도 나는 그들을 김씨, 이씨 하고, 마치 부리는 아랫사람 대하듯이 마구 불러댔다. 그도 물론 박씨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이제 더는 전락할 수 없을 만큼 밑바닥까지 전락했다 생각했고, 그런 불행감에 거의 도취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박수근이 두툼한 화집을 한 권 옆구리에 끼고 출근을 했다. 나는 속으로 ‘꼴값하고 있네. 옆구리에 화집 낀다고 간판장이가 화가 될 줄 아남’ 하고 비웃었다. 그때 그가 화집을 펴들고 나에게로 왔다. 망설이는 듯 수줍은 미소를 띠고, 마치 선생님에게 칭찬받기를 갈망하는 초등학교 학생처럼 천진무구한 얼굴이었다. 그는 ‘일하는 촌부’ 그림 하나를 가리키더니 일제시대의 관전인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한 자기의 그림이라고 했다.

그것은 사건이요 충격이었다. 그 동안 함부로 대한 간판장이 중에 진짜 화가가 섞여 있었다는 사실은 내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나의 수모를 말없이 감내하던 그의 선량함이 비로소 의연함으로 비치기 시작했다. 나에게 화집을 잠깐 보여준 후에도 그는 여전히 잘난 척이라곤 모르는 간판장이들 중에서 가장 존재 없는 간판장이로 일관했다. 나는 내 불행에만 몰입했던 눈을 들어 남의 불행을 바라볼 수 있게 되고부터 PX 걸 생활이 한결 견디기가 쉬워졌다. 그에 대한 연민이 그 불우한 시대를 함께 어렵게 사는 간판장이와 동료 점원들에게까지 번지면서 메마를 대로 메말라 균열을 일으킨 내 심정을 축여오는 듯했다. 내가 막돼가는 모습을 그가 얼마나 연민에 찬 시선으로 지켜봐 주었는지도 알 것 같았다.

그 후 그와 나는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퇴근길을 같이하면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국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서로 나누며 위로받곤 했다. 나는 휴전이 되기 전에 결혼해서 PX 걸 생활을 청산했고 그는 휴전 후 정부가 환도하면서 PX가 용산으로 옮겨간 후까지도 초상화 그리는 일을 한 걸로 알고 있다. 내가 비교적 평탄한 결혼생활을 하면서 많은 아이를 낳아 기르느라 문화계 소식과는 담을 쌓고 사는 사이에 그는 조금씩 유명해졌지만 여전히 그림만으로는 생활이 안 될 때 백내장으로 고생하다가 타계한 걸 전해 들었다.

신문 문화면에 난 그의 유작전 소식에 마음먹고 찾아간 미술관에서 나는 <나무와 여인>이라는 작은 소품 앞을 오랫동안 떠나지 못했다. 그건 작지만 보석처럼 빛나며 내 눈을 끌어당겼다. 그는 왜 꽃 피거나 잎 무성한 나무를 그리지 못하고 한결같이 잎 떨군 나목만 그렸을까. 하나같이 머리에 뭔가를 이고 있지 않으면 아이라도 업고 있는 여인들이 바쁘게 지나가는 길목마다 나목이 서 있다. 조금만 더 견디렴, 곧 봄이 오리니 하는 위로처럼. 그와 내가 한 직장에서 보낸 그해 겨울, 같이 퇴근하던 폐허의 서울 거리에도 나목이 된 가로수는 서 있었다. 내 황폐한 마음엔 마냥 춥고 살벌하게만 보이던 겨울나무가 그의 눈엔 어찌 그리 늠름하고도 숨 쉬듯이 정겹게 비쳐졌을까.

-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중에서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68쪽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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