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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유가 시작되는 곳에서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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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없는 나날을 보내던 중 한 가지 작은 일이 일어났다. 어느 날 밤, 폭발 사고 이후
두 달? 네 달이 되어선가? TV의 최근 수사 상황 보도를 지켜보고 있었다. 화면에 땅딸막한
백발의 남자가 화단에 몸을 숙이고 있는 모습이 잡혔을 때 나는 화면이 지체되서 화가 났다.
“오늘 버팔로의 카메라 맨들이 티모시 맥베이의 아버지 모습을 요행히 포착했습니다...."
기자가 말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 텔레비전 쪽으로 갔다. 그 사람을 보고 싶지도 않았고,
그에 대한 어떤 것도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스위치를 채 끄기도 전에, 그 사람은
고개를 들더니 곧장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나는 단지 그의 얼굴을 흘깃 보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나는 그에게서 깊은 고통의 표정을 보았다. 나의 고통과 똑같은
고통을. ‘오! 하나님, 이 사람도 저처럼 자식을 잃었군요.’ 그것은 정말 순식간에 번쩍
지나가는 깨달음이었다. 하지만 그 얼굴과 그 고통의 표정은 계속 내 마음에 되살아났고,
그렇게 몇 달이 지리하게 지나는 동안 내 자신의 고통도 변함이 없었고 그칠 줄을 몰랐다.
1996년 1월이 되었다. 하지만 달력상으로만 새해였지 나에겐 그렇지 않았다. 지난 9개월 동
안 종종 그래왔듯이, 나는 머라 빌딩의 잔해를 치운 자리 주변의 사이클론 철조망 울타리에
서 있었다. 울타리에는 장난감 곰, 사진, 꽃과 같은 작은 유품들이 걸려 있었다. 나의 시선은
유품들에서 산산조각이 난 느릅나무로 옮겨갔다. 그곳은 줄리가 항상 주차를 했던 곳이다. 1
월이라 나무는 헐벗었지만, 내 마음속에는 폭발 직후 여름날에 보았던 모습 그대로 보였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지만, 그 발가벗겨지고 부러진 나무 가지에 새순
이 돋아나고 있었다. 그때 내 마음에 떠오르던 생각은 새 생명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
같았다. 맥베이가 처형당해도 내 고통 끝나지 않으리라는 갑작스럽고도 분명한 깨달음! 고
통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유일한 문제는 내가 그 고통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것뿐이었다.
‘줄리야, 네가 몰라볼 만큼 나는 많이 달라졌구나!’ 분노와 고뇌와 증오심 때문에 나는
줄리가 베풀던 사랑의 방법과도, 줄리 자신으로부터도 분리되어 멀리 벗어나 있었다. 내 앞
의 그 철조망 울타리 안에는 맹목적인 증오가 빚어 낸 결과가 드러나 있었다.
텍사스 주의 와코에서 있었던 다윗파 사교집단 대원들의 죽음을 기념하는 날에 일어난 폭탄
테러. 강박관념에 빠진 맥베이가 이를 정부 잘못이라 믿고 자신이 응징하겠다며 그 같은 일
을 저질렀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추측했다……. 나는 이제 강박관념이 무엇인지 좀 알게 되
었고, 잘못된 일을 깊이 생각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도 알게 되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증오가 빚어 낸 최악의 결과를 이겨내고 살아 남은 그 끈질긴 느릅나무 고
목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는 매일 매일 악행이 저질러지는 이 세상에서 그 악순환을 막기
위해 한 가지 작은 일, 즉 개인으로서 내릴 수 있는 한 가지 결정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맥베이의 처형을 공개적으로 부추기는 일을 그만뒀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해를 하지
못했다. 폭탄 테러 1주년을 맞아 희생자 가족들을 취재하던 한 기자가 내 심경의 변화에 대
해 듣고 그것을 기사에 실었는데, 그것이 전파를 타게 되었다. 나는 여러 단체에서 연설을
해 달라는 초청을 받기 시작했다. 1998년 가을, 사고가 난 지 3년이 되었을 때였다. 버팔로
에 있는 한 수녀님에게서 초청장이 왔다. 버팔로라고… 내가 버팔로에 대해 들은 이야기가
무엇이었더라? 그 순간 생각이 났다. 팀 맥베이의 아버지. 만나보아라.’ 줄리를 죽인 놈의
아버지를? 아마 줄리라면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나는 아니었다. 그 자에게는 갈 수
없어. 그것은 너무나 지나친 요구가 아닌가. 줄리가 아니고서는 지금 아무도 다가설 수 없겠
지만 말이다. 내가 혹시 맥베이 씨를 만날 방법이 없겠는지를 그 수녀님에게 물어보았을 때,
수녀님은 깜짝 놀란 것 같았다. 그러나 다시 전화를 걸어와서는 맥베이 씨가 다니는 교회와
연락을 해보았다고 말했다. 그가 9월 5일 토요일 아침에 집에서 나를 만나겠다고 했다는 것
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뉴욕 주 북부에 있는 한 작은 노란색 목조 가옥의 초인종을 누르게 되었
다. 문이 열리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았다. 그리고 3년 동안이나 나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괴롭혔던 그 얼굴의 주인공이 고개를 내밀었다. 내가 물었다. “맥베이 씨인가
요? 버드 웰치라고 합니다.” “신발을 좀 신고 오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는 사라졌고,
나는 내가 떨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지금 여기서 무슨 짓을 하는 걸까? 우리가 무엇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신발을 신고 나타났고 우리는 그곳에 어색하게 서 있
었다. 마침내 내가 말했다. “정원을 갖고 계시다면서요. 저도 농장에서 컸죠.” 우리는 집
뒤로 걸어갔다. 토마토와 옥수수가 가지런히 줄지어 있는 모습에서 정성을 많이 기울였음을
알 수 있었다.
30분 정도 우리는 잡초에서부터 뿌리 덮개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는 서
로를 버드와 빌로 부르는 친근한 사이가 되었다. 그제서야 그는 나를 집안으로 데려갔고, 우
리는 식탁에 앉아 진저엘을 마셨다. 가족 사진이 한쪽 벽면을 메우고 있었다. 그는 자기의
큰딸과 사위 그리고 손녀딸의 사진을 가리켰다. 잘생긴 소년이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있는
사진을 내가 뚫어지게 보고 있음을 그가 눈치 챘다. “팀의 고등학교 졸업 사진이지요.” 그
는 간단히 말했다. “어이구” 내가 감탄을 했다. “참 잘생긴 아이군요!” 미처 입을 막을
틈도 없이 그 말이 튀어나왔다. 빌도 그의 눈에 가득 찬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의 둘째
딸인 스물 네 살 된 제니퍼가 샤워를 하고 머리가 축축한 채로 들어왔다. 내 딸 줄리는 스
물 네 살이 되어 보지도 못했지만, 나는 단번에 그 둘이 서로 뜻이 잘 맞았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제니퍼는 이제 막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는데, 그 애 역시 그것이 첫 번째 직장이었다.
제니퍼는 학부형들 중 몇몇이 자기의 성(姓)을 알고는, 아이들을 데려가겠노라고 위협하더라
는 이야기를 했다. 빌은 제너럴 모터스 공장에서 야간 교대조로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나와
동갑인 그는 36년째 그곳에서 근무하는 중이었다. 우리는 둘 다 육체노동자로서,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려고 애써 왔다. 나는 거의 두 시간을 그 집에 머물렀다. 내가 떠나려고 일어서
자, 제니퍼가 나를 껴안았다. 줄리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서로를 꼭 끌어안고 같이 소리
를 내어 울었다. 나는 제니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러나 나는 평생 교회를 다녔지만, 그
순간만큼 하나님이 그렇게 가깝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나는 제니퍼와 그의 아버지에게 말했다. “이제 우리는 남은 인생 동안 같은 배를 타게 되
었군요. 과거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미래에 대해선 선택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빌과 나
우리 두 늙은이는 지금도 전화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서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 최선이
무엇일지는 우리 둘 다 모른다. 하지만 그 부러진 느릅나무가 나에게 힌트를 준다. 사람들은
잔해를 치우는 와중에 그 나무도 불도저로 밀어 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앞장서서 그
나무를 구하는 운동을 벌였고, 이제 그 나무는 폭탄 희생자들을 위한 기념물 중의 일부가
될 것이다. 그 나무는 심하게 손상되었기 때문에, 죽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든
새로운 생명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도록 그 나무로부터 충분한 양의 씨앗과 어린 가지들
을 거두어 놓았다. 줄리가 남기고 간 사랑의 씨앗처럼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다가
서도록. 그 씨앗은 어디에나 뿌려질 수 있으리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세상에서 증오의 악
순환으로 생기는 노출된 상처가 있는 곳 어디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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