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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꽃도 한 번은 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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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제2막을 열다
50대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명예퇴직. 퇴직 후 가장 큰 아픔은 사람들로부터의 소홀한 취급이었다. 대감 집 송아지 백정 무서운 줄 몰랐던 걸까. 나는 내 직책이 나인 줄 알고 덤벙대며 살아왔고, 그 직책이 벗겨지자 벌거벗은 것보다 더 싸늘한 세상과 마주해야 했다. 하지만 명퇴(Retire)를 새 바퀴로 갈아 끼우는(Re-tire) 또 다른 기회로 생각하기로 했다. 2년 반 동안 열여덟 번에 걸쳐 우리나라를 한 바퀴 돌았다. 국토순례의 시작점 강원도 고성에서 출발하여 강릉, 완도, 부산 등 210만여 보, 6000km, 76일간의 여정 끝에 마침내 국토순례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바다, 삼척
“삼척으로 들어서서, 동굴을 설명하는 아치가 끝나면 무조건 왼쪽으로 가세요. 얼마 안 가 기막힌 곳이 나올 테니까요.” 길을 가르쳐주던 그분의 말처럼 삼척의 바다를 낀 절벽길이 숨이 멎을 만큼 절경이다. 까마득한 절벽, 바위 위 소나무, 부서지는 파도, 구불구불한 해안도로……. 그러다가 다시금 지나온 길을 뒤돌아 봤을 때의 그 아스라함, 혹독함이 밀려온다. 혼자 이 길을 걷는다. 황혼이 다가오고, 차도 사람도 뜸한 이 길에서 눈부신 자연만이 도도하게 내 가슴에 안겨온다.
남도답사 일번지
해남읍에서 진도가 마주 보이는 울돌목까지 9시간 30분 정도 걸은 것 같은데 만보기의 숫자는 의외로 인색하다. 3만 보를 넘지 못했다니! 해남은 군으로 두기엔 정말 크고, 볼거리도 꽤 많다. 대흥사란 거대한 사찰, 한국 지도상 육지의 끝이라는 땅끝, 한국 문학사에 우뚝 솟은 고산 윤선도의 유적들. 오늘은 종일 숙제를 하듯, 해남 땅이 어두워질 때까지 걷고 또 걸었다. 땅끝 마을을 걸으며 바닷바람 쐬느라 얼굴이 짭짤해진 것 같다.
‘내 안의 무엇을 찾기 위해’ 시작한 순례였지만 과연 그것을 찾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 순례가 끝나도 나를 찾는 내 마음속의 여행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래,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지금부터 나의 꽃은 활짝 피리라.
- 『내 꽃도 한 번은 피리라』 중에서
(이임자 지음 / 동아일보사 / 366쪽 / 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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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