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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에게 쓰는 두 번째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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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를 막 깨쳤을 무렵, 어머니에게 편지를 쓴 적이 있다. 어머니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난 후 어머니는 아버지와 헤어지고 다른 곳으로 재가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랑벽이 있던 아버지도 집을 나가셨고 나는 친할머니에게 맡겨졌다. 할머니 밑에서 성장하며 아버지를 몹시 그리워했지만, 어머니를 보고 싶은 마음은 그리움이라기보다는 안타까움에 더 가까웠다. 늘 애가 탔다. 그렇게 성장해 결혼을 하고 딸을 낳아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은 그리움으로 변했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 본 적이 있지만, 어머니는 전혀 기억 속에조차 없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기 위해 매일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쪼개서 어머니의 얼굴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했다. 그 오랜 세월 그리워하면서 지낸 시간들에 비하면 두 분 모두 너무나도 쉽게 행방을 알 수 있었다.
충주 근처 시골에 있는 2평 정도의 작은 방에서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어머니는 방 안쪽 모서리에 불편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나 역시 방 바깥쪽 문 근처 모서리에 편치 않은 자세로 앉았다. 어색한 시간이 이어졌다. 어머니는 낯설음과 죄스러움 때문에선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나 역시 한동안 어머니를 똑바로 보지 못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키가 작고 무척 왜소한 몸집의 어머니는 양쪽 볼에 보조개가 있는, 소녀처럼 순진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 왔을까. 그것이 가장 궁금했지만, 첫 만남에서 오간 유일한 대화는 내 생일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날 키워 주신 할머니조차 내 생일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셨기에 어머니와의 첫 대화는 내 생일이 언제인가에 관한 것이었고, 어머니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내 생일은 1월 14일이었지만, 이제 2월 29일로 바뀌었다. 우리 두 사람은 그렇게 마주 바라만 보다 헤어졌다. 간혹 텔레비전에서 보던 이산가족처럼 서로 부둥켜안고 울며 얼굴을 만지고 하는 감동적인 만남은 아니었다. 우리 모녀의 이십여 년만의 만남, 거기엔 사랑의 교감 같은 것은 없었다. 그것이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어머니와의 첫 만남이었다.
부모님의 사랑에 목말랐던 나는 늘 주변 사람들에게서 그 갈증을 해소하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해소되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남편을 만나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면서도 왠지 모를 허전함이 내 가슴속을 맴돌았다. 그런데 비록 어색한 만남이긴 했지만, 어머니와의 첫 만남 직후 그동안 내 영혼을 외롭게 만들었던 사랑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었다.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외삼촌으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어머니는 시골 농부에게 재가를 하여 그리 편한 생활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머니에게 내 전화번호를 알려 주고 헤어졌다. 어머니의 생활도 있고 해서 나는 외삼촌을 통해 연락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다음해 생일이 되었는데도 어머니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어머니에게서 두 번 버려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머니에게 원하는 것은 단지, 생일 축하 전화를 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다음 해에도, 십 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머니는 내게 전화 한 통 하지 않는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외삼촌을 찾아가 훗날 어머니가 돌아가시더라도 내게 연락을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그 이후로 어머니를 마음에서 지워 버렸다.
그러나 딸을 키우면서 나는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 역시 딸을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며 아쉽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고, 나 또한 딸에게 부족함 많은 어머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 편지를 쓴 이후 두 번째로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려 한다.
어머니!
속으로 어머니를 많이 불렀어요. 살면서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울 수 없어 많이 울었습니다. 무조건적인 어머니의 사랑이 그리워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보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면 그럴수록 더 외롭고 슬펐습니다. 그러나 이젠 저도 어른이 되었고, 깨닫습니다. 받기 위해, 채우기 위해 하는 사랑은 언제나 절 외롭고 힘들게 한다는 것을.
그동안 저를 위해 어머니를 찾았지만 이제는 어머니를 위해 제가 어머니를 찾아뵈려고 합니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고, 사랑만 하고 살아도 인생은 너무 짧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요즘 들어 자주 어머니 말씀을 하십니다. “네 엄마는 좋은 여자였다!”
- 『가위 이야기』 중에서
(최정아 지음 / 고즈윈 / 280쪽 / 9,5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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