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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삶, 삶의 역사를 마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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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식 지음/예담/288쪽/15,000원)
보르도(Bordeaux)에서 전해지는 이야기 가운데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한 가지 있다. "보르도에서 가난한 와인 생산자와 부유한 와인 생산자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가난한 업자는 롤스로이스 자동차를 손수 닦는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이름 높은 와인의 대명사 보르도 와인. 10∼20년 정도 묵은 와인은 한 병에 20만 원 정도 하는데 보르도에서 생산하는 와인의 상당 부분은 영국으로 수출된다. 보르도가 속한 아키텐 지역이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이다.
생 당트레 성당 동쪽에 있는 페 베를랑 탑에 오르면 보르도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보르도를 와인 산지로만 생각했던 선입견은 231개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 눈앞에 펼쳐지는 우아하고 기품 있는 건물들 앞에서 말끔히 사라진다. 중심가인 생트 카트린 거리는 코메디 광장에서부터 아키텐 문에 이르는 보행자들의 천국이다.
거리 입구에는 대극장이 자리하고 있다. 최근 개조한 이 건물은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극장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데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의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이 극장은 1773∼1780년 사이 건축가 빅토르 루이가 극적이고 서정적인 건축 양식과 품위 있는 장식 등 고대 영감을 살려 완성한 것이다. 벽과 테라스 앞에 늘어선 기둥의 위엄이 인상적이며, 대규로 회랑으로 이루어진 전면은 12개의 뮤즈와 여신상으로 장식되어 있다.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도 볼 수 있는 계단의 그림은 건물 내부의 세련미를 한층 더해준다.
보르도의 와인 산지는 대략 20여 곳이며 그중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진 지역으로는 메독, 그라브, 소테른, 포므롤, 페삭 레오냥 등이 있으며, 모두 보르도를 중심으로 근교에 자리하고 있다. 보르도 와인의 명성은 A.O.C(Apellation d"Origine Controlee)라는 "원산지 품질 통제"의 엄격한 품질 관리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생산 지역을 밝힘으로써 와인 산지를 정확히 표시하고 소비자들에게 와인을 품질을 보장하는 제도이다.
프랑스에서는 와인의 제조와 판매뿐 아니라 와인 관광이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녹색 관광, 문화 관광의 일환으로 높은 부가가치를 올리는 와인 관광은 대규모 포도원 답사 일정으로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다. 보르도의 경우에는 시내 관광안내소에서 출발해 반나절 혹은 하루 코스로 샤토(포도 재배, 와인 제조, 저장, 포장 등의 업무를 일괄적으로 담당하는 공장), 와인 저장고, 포도밭, 오솔길 산책 등으로 이어진다. 가이드가 동반하는 투어에서는 평소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는 곳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와인을 시음해 볼 수도 있다.
1855년 만국박람회에 즈음해 나폴레옹 3세가 와인 등급을 매기도록 지시했는데, 이때부터 보르도의 엄격한 와인 분류가 처음 시작되었다. 와인 병에 붙은 라벨로도 와인의 수준을 판별할 수 있으며, 보르도의 경우 대부분의 와인에는 "샤토(chateau)"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이것은 단순한 상표의 의미로 통용되기도 한다.
예술적으로 가치 있는 건축물과 뛰어난 품질의 와인, 이 두 가지로 보르도를 모두 설명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하다. 보르도가 배출한 미셸 드 몽테뉴, 몽테스키외, 프랑수아 모리악 등과 같은 뛰어난 사상가, 철학자, 소설가들의 지혜와 모럴리스트의 면모가 보르도를 세계적인 문화 도시로 만들고 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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