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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람은 바로 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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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어머니가 새벽기도에 다녀오시면서 어떤 장님 할아버지를 모시고 오셨다.
1968년 1월의 매우 추운 날이었다. 그 할아버지는 교회 가는 길목에 떨고 앉아 계시던 분이
었는데 어머니가 매일 그 앞을 지나시면서 망설이시다가, 그 날은 너무 추우니까 얼어 죽으
실 것 같어서 지팡이를 잡고 무조건 데려오셨던 것이다. 나는 너무 기가 막혀서 어머니께
처음으로 화를 냈다. "지금 우리 처지에 그 거지 할아버지를 데리고 오시면 어떡합니까."
사실 너무 불만스러웠다. 어머니는 나에게 할아버지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라고 하셨다. 그
추운 겨울 아침 이불 속에서 얼굴만 내밀고 말을 해도 방안 공기가 너무 추워서 입김이 모
락모락 나는 판에, 목욕탕은 물론 없었다. 사람 혼자 앉을 만한 조그만 아랫목마저 할아버지
에게 뺏기게 되었다. 물 데워 줄 테니 할아버지를 씻기라는 어머니의 명령에 정말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순종했다.
어머니의 얼굴은 엄숙해지셨다. 이 할아버지 잘 섬기라고 하셨다. 삼촌께서 내게 물려 주신
한 벌밖에 없는 속옷을 드리고 그 더러운 몸을 씻겨 드리면서 솔직히 내 마음에 기쁨은 하
나도 없었다. 할아버지의 그 더러운 몸에 손 대기 싫어서 나무가지를 가지고 옷을 벗기기도
하고 막 구박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1주일이 지났다.
나는 내 삶 속에서 영원히 그 할아버지의 모습은 잊혀진 줄 알았다.
1986년 어느 날 미시간 대학에서 나를 초청했다. 미국에서 성공한 한국인으로서 한국 유학
생 집회에 설교를 부탁해 왔다. 나는 우측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기도했다. "하나님 저 학생
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그때 문득 몇 가지 스쳐가는 장면들과 함께 이것을 얘기
하라는 말씀을 주셨다. 필름처럼 다섯 장면을 보여 주실 때 거지 할아버지는 그 중에 제일 첫
장면이었다. 내가 할아버지의 더럽고 이가 끓는 옷을 억지로 벗기면서 구박하던 모습이 보이
면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종수야! 그 사람은 바로 나였다."
나뭇가지로 거칠게 옷을 벗길 때 할아버지는 찡그리고 괴로워하셨다. 나는 부끄럽고 창피했다.
그때 또 음성이 들렸다. "종수야, 내가 배고프고 춥고 떨고 있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거룩한
모습으로 성경 찬송을 들고 새벽기도 하러 교회로 내 옆을 지나서 가더구나. 아무도 나를 아는
척 하지 않았고 가끔 어떤 이들은 동전이나 지폐를 던져 주고 갔었지. 그들 마음속에 누구를
모시고 살고 있으며 어떤 기쁨이 있었는지 알 수 없구나. 그들의 손에 성경책이 들려져 있었
으나 내가 춥고 배고플 때 나를 돌아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단다. 그렇지만 네 어미 과부
댁이, 그 전날 저녁도 죽이 모자라서 자식들에게 한 숟가락 더 먹이려고 굶었던 네 어미가 내
지팡이를 잡고 너희들의 방으로 나를 인도하였다. 그때 나는 너의 집이 궁궐 같았고 가나안
같았다. 푸른 초장이고 따뜻한 봄날 같았다."
* * *
1975년 서울대학병원에서 인턴 근무하면서, 영등포 시립병원에 인턴 파견 근무 나가 있을 11월
말경이었다.
응급실에 기차에서 뛰어내리다가 다친 어린 소년이 실려왔는데, 머리속의 뇌들이 보일 정도로
부서져 있었다. 수술을 해야 하는데 환자 가족도 없고 보증금도 없는 형편이었다. 인턴이라는
신분으로 나 혼자 마음대로 할 수도 없어, 다 죽어가는 어린 소년의 눈을 들여다 보면서 영혼
깊이 슬퍼하며 소년의 손을 꼭 쥐고 옆에서 상태만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고민하면서 있는데 바깥에서 시끌시끌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다보니 거기에 또 웬 할아버지가
덜덜 떨고 서 있었다. 가까이 가서 할아버지께 물어보니 허벅지에 큰 종기가 나서 곪아터지고
엉망이었다. 수납원은 돈을 안 가져오면 치료할 수 없다고 하면서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그때
우리 나라 형편에는 돈이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었다. 병원문 앞에서 돈이 없어서 돌아가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을 때였다.
그 당시 나는 월급에서 3만 원 정도를 용돈으로 쓰고 모두 어머니에게 드렸다. 그때 내 수중에
3만 원이 있었다. 바로 전날 탄 월급에서 용돈으로 갖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수납에 가서
여직원에게 내 월급에서 떼도록 하고 그 할아버지를 내가 치료해 드리겠다고 부탁했다.
할아버지를 응급실에 모셔와서 상처를 깨끗이 치료하고 항생제 주사도 놓아 드리고 3만 원 모두
손에 쥐어 드리며 나는 말했다. "할아버지, 이 돈으로 잘 잡수세요. 그리고 예수 믿으세요."
할아버지는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리셨다. 고마움을
말로 다 할 수 없다는 표정이셨다.
"할아버지, 가세요. 모레 한 번 더 오셔서 주사 맞고 치료받으세요. 그리고 잘 잡수세요."
내가 미시간 대학 한인 기독교 학생회 모임에서 단에 섰을 때 필름처럼 지나갔던 장면 중에는
바로 헐벗고 상처입었던 이 할아버지의 모습도 떠올랐다. 그분도 바로 예수님이셨던가...
* * *
미국에서 조그만 오피스를 얻어 개업을 하고 나니 동양인 의사에게 오는 사람이 없었다. 요즘
한국에서처럼 1분에 환자 한 명 보는 것이 아니라 1시간에 환자 한 명을 보았다. 옛날 병명부터
기록하고 신체검사를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그 사람의 마음상태까지.
어느 날 어떤 흑인 환자를 치료해 주고 났는데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자기 차에 자기가 존경하는
목사님 한 분이 계신데 그분을 진찰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분도 흑인 목사님이신데 은퇴
하시고 당뇨병이 심해져서 눈이 머신 분입니다." 그 때는 시간이 많았으니까 그냥 들어오시라고
했다. 물론 무료로 진찰을 해주었다.
나는 할아버지와 인연이 참 많다. 거의 한 시간을 상담하고 약까지 무료로 해서 잘 보살펴 드렸다.
그냥 가시라고 하면서 의자에서 일어나 부축을 해드리려고 했더니 그 흑인 할아버지 목사님께서
너무 감동하셔서 "내가 닥터 원을 위해서 기도해도 될까요? 내가 닥터 원에게 갚아 줄 것이 없으
니 기도해 주고 싶어요."라고 하셨다. 기다리는 환자도 없고 해서, 좋다고 하면서 다시 의자에
앉으시게 하고 장님이시기 때문에 옆에서 부축해 드렸다.
"내가 크리스천인 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당신은 분명 크리스천일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소."
나는 가운을 입은 채 그 할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어 앉았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께서 가정예배
를 드릴 때 무릎 꿇는 습관을 들이셨기 때문에 그것이 차라리 편안했다. 그 목사 할아버지는 성령
의 감동이 되셔서 손을 부들부들 떠시면서 방언기도를 하시더니 갑자기 예언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너는 나의 일을 하라. 너는 나의 복음을 증거하라. 그러면 환자는 내가 책임져 주마. 너에게 많
은 환자가 찾아올 테니 너는 그 환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라."
나는 눈물을 흘리며 "아멘!"했다. 지금 막 개업해 놓고 환자 오지 않는다고 걱정하기 전에 환자
한 사람 한 사람 올 때마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보내 주셨다고 생각하고 내가 그들에게 주님의 사
랑을 증거하리라 다짐했다. 암에 걸려서 그들의 인생의 삶이 가장 마지막 끝에 있을지라도.
* * *
우리가 어머니를 순종하며 따를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남을 위해 희생하셨던
어머니의 모습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성경말씀으로 양육하셨기 때문에 어머니의 말씀은
권위가 있었다. 어머니는 거지 할아버지를 모시고 와서 씻기고 배불리 먹이시고 고아를 데려다
사랑으로, 말씀으로 양육하면서 몸소 실천하시는 분이었다. 실천하는 믿음을 보여 주는 부모
라면 자녀와 하나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머니는 여전히 새벽기도를 드리시면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 내가 미국에서 암 전문의
가 된 후에도 내가 암만을 치료하는 의사가 아닌 영혼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기를 하나님께
간구하신다. 어머니는 지금도 나에게 타이르신다. "누구든지 너를 핍박하거든 감사해라. 네가
쓰임받는 증거니까.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라, 그리고 축복해라.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이다."
- 원종수 저 <너는 내 것이라> 중에서
저자 원종수 씨는 1951년 충남 공주 출생으로
대전고등학교 수석 졸업,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수석 졸업,
전국 의사고시 수석 합격,
현재 미국 디트로이트 암 전문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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