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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위에 새겨진 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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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얼어붙을 듯 추운 이월 아침에 일어난 어떤 비극적인 사건과 함께 시작되었다. 나는 스쿨버스 뒤를 따라 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눈 오는 아침이면 나는 늘 그렇게 학교에 출근하곤 했다.
그런데 버스가 갑자기 오른쪽 깜빡이를 켜더니 길가에 있는 호텔 앞에 멈춰 섰다. 내가 보기에 스쿨버스가 호텔에 볼일이 있을 리 없었다. 나는 예기치 않은 정지를 하게 된 것에 약간 짜증이 났다. 그때 한 소년이 비틀거리며 버스에서 내리더니 무너지듯 눈길 위에 쓰러졌다. 버스 운전사와 내가 거의 같은 순간에 소년에게로 달려갔다. 소년의 창백한 얼굴은 주위에 쌓인 눈보다도 더 하얗게 보였다. 운전사가 속삭였다. "죽었어요."
한 순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버스 안에서는 겁먹은 표정의 학생들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신을 수습하고 나는 소리쳤다. "의사를 불러야겠어요! 빨리! 내가 호텔에 가서 전화를 하겠소." 그러나 운전사가 나를 저지했다. "소용없습니다. 이미 죽었습니다." 운전사는 소년의 정지된 모습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 애는 자기가 아프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어요. 그냥 내 어깨를 건드리더니 아주 작게 말하는 것이었어요. '저, 미안하지만 전 호텔 앞에서 내려야겠어요.' 그것이 전부였어요. 공손하고 미안해하는 표정이었지요."
우리가 학교에 도착하자 소문이 복도를 타고 물결처럼 전해졌다. 와글거리던 아침의 소음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여학생들 한 떼가 웅성거리는 옆을 지나는데, 그들 중 한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속삭이며 물었다. "누가 죽었다구? 학교 오는 길에 버스에서 내려서 죽은 애가 누구야?" "나도 잘 몰라. 밀포드 코너스 쪽에서 버스를 탔던 애래."
교무실과 교장실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교장이 내게 와 말했다. "선생께서 그 학생의 부모에게 소식을 전해 주시면 더없이 고맙겠소. 그 아이네 집에는 전화가 없어요. 어쨌든 학교 측에서 누군가 아이의 집을 방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동안 내가 선생님의 수업을 대신 맡겠소." "왜 제가 가야만 하죠? 교장 선생님께서 직접 가시는 게 더 낫지 않을 까요?" "나는 그 학생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지난 2학년 때의 생활기록부를 들쳐보니 그 학생이 가장 좋아하는 교사로 선생께서 지목되어 있더군요."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여전히 얼어붙는 날씨였다. 도로 사정이 형편없는 골짜기를 달려 에반스 씨네 집으로 가면서 나는 클리프 에반스에 대해 생각했다. 그 애가 가장 좋아한 교사가 나였다니! 왜였을까? 그 애는 지난 2년 동안 나한테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애를 똑똑히 기억할 수 있었다. 클리프는 내가 가르치는 오후의 문학 수업 시간에 맨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언제나 혼자서 교실에 들어와 혼자서 교실을 나갔다.
"클리프 에반스......" 나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결코 웃지 않는 아이였어. 그 애가 웃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지."
목장의 널찍한 부엌은 깨끗하고 따뜻했다. 나는 클리프의 부모에게 내가 갖고 간 소식을 전했다. 내 얘기를 듣더니 에반스 부인은 쓰러지듯 의자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그 애는 한 번도 아프다는 내색을 한 적이 없어요." 옆에 있던 클리프의 의붓아버지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 놈은 내가 이 집에 온 다음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소. 별 수 없지 뭐... 녀석이 그토록 벙어리 짓만 하지 않았어도 어디가 아프다는 걸 미리 알았을 거라구."
방과 후 나는 교무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내 앞에는 클리프 에반스에 대한 기록들이 흩어져 있었다. 나는 쓸쓸한 눈으로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나는 그 기록들을 바탕으로 클리프의 죽음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의 모든 기록이 내가 하려는 일을 비웃고 있었다.
<법률적으로 아직 의붓아버지의 호적에 올려진 상태가 아님.> 이 불충분한 정보와 D등급이 매겨진 행동발달사항 목록들이 내가 가진 자료의 전부였다. 클리프 에반스는 아침에 조용히 교문을 들어와서 저녁에 조용히 교문을 나갔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는 어떤 동아리에도 소속된 적이 없었다. 어떤 운동부에도 가입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한 번도 교무실에 불려온 적이 없었다. 내가 아는 한 그 애는 한 번도 아이들이 하는 놀이와 행동에 참여한 적이 없었다. 그는 아무런 학생도 아니었다. 어떻게 한 소년을 그토록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을까?
생활기록부의 기록들이 그 대답을 내게 말해 주었다. 초등학교 때의 담임교사가 적어 놓은 것은 이랬다. <착하고 부끄럼을 타는 아이. 수줍어하지만 열성적임.> 그러다가 중학생이 되면서 공격이 시작되었다. 어떤 교사는 단호하게 이렇게 적었다. <말이 없는 아이. 비협조적이고 학습 속도가 느림.> 다른 학과 교사는 심지어 이렇게도 적었다. <지나치게 둔함. 저능아.>
그들의 말은 옳았다. 중학교에 올라와 클리프의 아이큐는 83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의 아이큐는 126이었다. 수줍고 부끄럼 타는 아이라고 해도 쾌활한 면을 갖고 있었다. 단지 부끄럼을 깨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었다.
나는 타자기 앞에 앉아, '교육이 클리프 에반스에게 어떤 것을 했는가'를 지적하는 분노에 찬 보고서를 쓰기 시작했다. 보고서를 교장의 책상 위에 던져 놓고, 다른 한 장은 그 슬프고 낡은 생활기록부 속에 첨부시켰다. 나는 생활기록부를 집어던진 다음 교무실 문을 꽝 닫고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조금도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한 어린 소년이 계속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조그만 얼굴에, 낡은 청바지를 입은 마른 소년이, 오랫동안 의지할 곳을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떠나가 버린 큼지막한 눈의 슬픈 소년이 나를 따라왔다.
나는 상상할 수 있었다. 그 애가 얼마나 자주 운동부에서 제외됐는가를. 그리고 얼마나 많은 아이들의 귓속말이 그를 따돌렸는가를. 끝없이 그 아이의 귀에 대고 말하는 그 목소리들을 나는 들을 수 있었다. "넌 벙어리야. 넌 저능아야. 넌 아무 존재도 아냐. 클리프 에반스..."
어린아이는 남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 클리프는 의심 없이 그 말들을 믿은 것이다. 갑자기 사건의 전말이 내게 분명해졌다. 마침내 클리프 에반스에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을 때 그 아이는 눈 쌓인 길 위에 무너져 세상을 떠나 버린 것이다. 의사는 아마도 죽음의 원인을 심장마비로 적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내 생각을 바꿔 놓지는 못할 것이다.
-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이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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