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시도서관
전체도서목록 신간도서목록 광명시도서관 바로가기
도서요약본 오디오북 북세미나 오디오강연 어학클리닉 어린이도서관
인포북 전자도서관 인포북 사랑하는 가족에게
사랑하는 가족에게 책에서 만나는 건강정보 서평칼럼 책속의 여행정보 가슴이 따뜻한 이야기
엄마 노릇에 대한 오해
 
 
다섯 살짜리 여자 아이가 너무 수줍어하고 자기 표현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찾아온 엄마가 있었다. 광고회사에 다니던 그녀는 아이를 시댁에 맡겨 두고 주말에만 데리고 왔는데 그게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준 건 아닌지 걱정했다. 하지만 아이는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엄마가 좀 더 아이에게 관심을 보여 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 금방 좋아질 것 같았다.

"이젠 아이를 데리고 오시지요. 우선 사나흘 여행을 같이 가는 것도 좋고요."

"그러잖아도 이번 승진 시험만 치르면 데려오려고요. 근데요…."

무언가 말을 망설이던 엄마는 결심한 듯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사실 아이를 데려오는 게 겁이 난다는 거였다. 아이를 평생 시댁에 맡겨 키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 자신이 맡아 키워야 하는데, 감당할 수 있을까 두렵다는 얘기였다. 처음에 엄마, 아빠와 떨어지면서 울고불고하던 아이가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을 낯선 사람 대하듯 서먹해하자 가슴이 아팠단다. 그래서 얼른 데려와야 할 텐데 생각은 했지만, '좀더 편한 부서로 옮기면', '아이가 기저귀만 떼면', '좀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면' 하면서 아이를 데려오는 시점을 점점 미뤄온 게 벌써 2년이라고 했다.

"선생님, 저는 모성 본능이 없나 봐요. 아이만을 위하는 마음이 그렇게 잘 안 들어요. 애가 예쁘다기보다는 내 애니까 내가 해줘야 한다 그런 생각뿐이에요. 애 기르는 게 그냥 의무처럼만 느껴지는 거죠. 남들은 일하다가도 문득 아이가 눈물 나게 보고 싶다고 하던데, 후유… 주말에 애 데리고 와서 같이 지내다 일요일에 시댁에 맡기고 나오잖아요. 그러면 솔직히 마음이 홀가분해요. 내 마음이 이런데, 이런 엄마 밑에 있어도 애가 좋아질 수 있을까요?"

요즘 이 엄마처럼 자신에게 모성애가 없다고 자책하는 엄마를 많이 만난다. 개중에는 자신의 인생을 발목 잡은 아이가 밉다고 호소하는 엄마들도 있다. 그런 엄마들의 속내에는 아이를 기르는 건 자기를 희생해야만 하는, 그래서 자신의 인생을 갉아먹는 일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런 엄마들에게 내가 내리는 처방은 이렇다.

"우선 죄책감에서 벗어나세요." 남들처럼 당연히(?) 아이를 사랑하지 못할 수도 있다. 모성은 본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아이를 낳는다고 저절로 엄마가 되고 모성이 생기는 건 결코 아니다.

나도 첫 아기를 낳았을 때 흰 강보에 싸인 시뻘겋고 주름 잡힌 생물체가 나의 아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이를 본 순간 애틋하고 애잔한 감정이 든다던데 나는 그저 얼떨떨할 따름이었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조그만 녀석이 가진 파괴력은 정말 대단했다. 내 생활과 가치관은 매일매일 새로운 방식으로 허물어졌다. 3주일 동안 산후 조리를 도와주신 친정 엄마가 집에 내려간 날, 내 심정은 한마디로 '한심하고 기가 막힘'이었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면서 '내가 의사가 맞나?'부터 '난 왜 이렇게 엄마 노릇을 못하는 걸까?', '언제까지 이 생고생을 해야 하나'까지, 비애감과 자책감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생각해 보니 내가 아이 낳기 전 갖고 있던 육아 지식이라고는 중학교 1학년 가사 시간에 배운 '기저귀 접기'뿐이었다. 물론 천기저귀를 쓰지 않아서 그 지식조차 쓸모가 없었지만 말이다. 그 밖의 엄마 되기에 관한 지식은 모두 새로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이었다.

누가 아이는 낳기만 하면 저절로 자란다고 했던가. 아이를 잘 기른다는 건 여간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성숙한 사람이 아니면 힘든 일이다. 이유 없이 아이를 하루에도 몇 번씩 안아 주고, 두세 시간마다 먹을 것을 챙겨 주고, 구토물과 배설물이 남아 있는 냄새나는 옷을 서너 벌씩 빠는 과정을 고스란히 겪어 내면서 아이를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엄마가 되려면 아이 성장 발달에 대한 지식도 갖춰야 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도 길러야 하고, 한꺼번에 닥치는 예상치 못한 일들을 당차게 해결해 나갈 배포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결코 저절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다. 세상에 어디 저절로 알아지는 게 있던가. 모성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의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해 너무도 쉽게 생각한다. 아니면 가보기도 전에 미리 겁먹고 절대 그 길을 가지 않으려 한다.

두 아이를 데리고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다. 어머니는 그 사실을 알자마자 다짜고짜 전화로 그러셨다. "너 미쳤니? 네 앞길을 망치려고 작정했니? 애 둘을 데리고 어떻게 그 수발을 다 들면서 공부한다고 그래?" 어머니는 손자들보다는 내가 먼저였나 보다. 만리타국으로 아이 둘을 데리고 간다고 하자 애꿎은 홍씨 가문 아들 둘이 자신의 귀한 딸 앞길을 막는 원흉이 되었다. 그러나 내가 아이들을 두고는 혼자 떠날 수 없다고 하니까 아이들을 키워 줄 테니 제발 마음 놓고 편하게 공부만 하고 오라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결코 아이들을 두고 혼자 떠날 생각이 없었다. 아이 둘을 데리고 가서 내 몸이 부서지도록 고달파질 거라는 건 둘째 문제였다. 아이들이 나 없으면 얼마나 힘들어 하겠는가. 게다가 나 또한 아이들 없이는 못 살 것 같았다. 아이들의 얼굴을 매일 보고, 매일 살을 비비고, 그 변화를 볼 수 있다면야 까짓 내가 좀 고생하는 게 대수랴 싶었다. 결국 나는 아이 둘을 다 데리고 유학을 떠났고, 지금도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그때 나를 다시 보았다고 한다. 이익과 손해를 정확히 구분하고, 앞만 보며 달려가던 내게 그런 애틋한 모성이 있는지 몰랐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분명 아이들과 함께 하며 길러진 것이지 본능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내겐 왜 모성이 없는 거지?'란 우문으로 괴로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도 말했다. "모성은 대상만 있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향한 정신의 힘, 활동이며 능력이다."

그래서 앞의 엄마처럼 애한테 의무감밖에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엄마들에게 나는 힘주어 말한다. 괜히 '나는 좋은 엄마가 아니다'라는 죄책감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고…. 나는 그런 엄마들이 아이에게 의무감으로 무엇인가 더 해줘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리면서 자신과 아이들을 얼마나 망쳐 놓는가를 수없이 봐 왔다. 생각해 보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끈이 단지 의무감밖에 없다면 얼마나 삭막하겠는가. 그게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그러니 제발 모성 본능이 없다는 쓸데없는 자책감으로 시달리지 말기를 바란다. 오히려 가슴이 차가운 당신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아이와 함께 하는 경험이다. 내가 그랬듯 말이다.

- 『아이보다 더 아픈 엄마들』(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 신의진 저/중앙 M&B) 중에서
번호 | 제목 | 일자
7 형의 선물 2005년 04월 16일
6 마크가 지녔던 낡은 종이 2005년 04월 17일
5 아내와 남편이 서로 사랑하는 한 2005년 04월 16일
4 보이지 않는 선물 2005년 04월 16일
3 아이에게서 배운 값진 가르침 2005년 04월 16일
2 엄마 노릇에 대한 오해 2005년 04월 16일
1 사랑을 꼭 말로 해야 아나요 2005년 04월 16일
 
맨 처음으로 이전 10개 21 22 23 24 다음 10개 맨 마지막으로
 
  • 문화도시락
  • 베스트상품권
  • 문화사랑쿠폰
  • 북티켓
  • 한국독서능력검정 신청
  • 시스템 정기 점검시간 매주 금요일 낮 12:00~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