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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뜻
 
 
열두 살 시골 소년에게 6·25 전쟁은 낭만적으로 남아 있다. 아들이 귀한 집에서 11남매의 막내둥이로 태어난 나는 부모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랐던지라 열두 살 철들 나이에도 환상 속에서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전쟁의 상처는 어쩔 수 없어 40년이 지난 후에도 무의식 속에서 되살아나기도 했지만, 당시의 기억은 참으로 아름다웠으니 말이다.

피난길에서 살아 돌아온 우리 가족들은 집수리를 마치고 다시 옛날과 다름없는 평온한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이 틀 무렵 인민군 한 명이 우리 집을 찾아왔다. 먹을 것을 달라는 인민군에게 어머님은 밥상을 차리기 전에 아버님이 반주로 드시는 막걸리를 한 대접 건네주면서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고는 말씀하셨다.

“누구 집 귀한 자식이 이렇게 고생을 하는고!”

그러고는 아침밥을 곧 준비할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며 다정하게 대하셨다. 배가 고파 찾아온 인민군을 다른 집 아들로만 보셨던 것 같다. 그 인민군은 우리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았는데, 마을 운영위원장에 의해 의용군에 강제 입대했다고 했다. 미군과 국군이 인천상륙 작전을 감행해 인민군이 후퇴하는 중인데 자신만 고립되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인민군을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군복을 벗고 작업복을 입게 하신 후 아무도 모르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셨다.

그 후 세 달쯤 지났을 무렵 도포를 입은 기품 있어 보이는 노신사 한 분이 우리 집을 찾아왔다. 그분은 아버님을 보자마자 정중히 예를 갖추고 감사의 절을 올렸다. 누군가 했는데 바로 그 인민군의 조부였다. 그분은 그 손자가 6대 독자라면서 우리가 자기 가문을 지켜주었다고 무척 고마워했다. 귀한 선물까지 챙겨 와서는 어머님의 따뜻한 대접에 특별히 감사하다는 말도 했다.

인민군의 퇴각과 함께 악랄한 운영위원장의 모습도 보이지 않게 되자, 그를 피해 산으로 들로 숨어 다니던 우리 형님도 비로소 집으로 돌아왔다. 감시와 위협에 시달리던 우리 집에도 드디어 평화가 찾아왔다.

전쟁 통에 한동안 폐쇄되었던 안정면 파출소가 복구되고 나서의 일이다. 일손이 턱없이 부족해진 파출소에서 형님에게 도움을 청하여 형님은 임시 경찰관이 되었다. 일이 많아 집에 들어오지 못하다가 간만에 들어온 형님이 아침식사를 하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동안 관내의 운영위원장들이 체포되는 즉시 총살에 처해졌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남로당에 가입한 사람들이었고 그들 중 한 사람인 우리 마을의 운영위원장이 오늘 마지막으로 처형될 거라고도 했다.

그러자 아버님이 수저를 내려놓고 정색을 하며 말씀하셨다. “인간이 곧 하늘이다. 어찌 인간이 인간을 죽인단 말이냐? 그건 하늘의 뜻이 아니다.” 그러고는 말씀을 이으셨다. “너 오늘 반드시 그 사람을 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집에 들어올 수 없다!”

말씀하시는 아버님의 표정은 매우 엄중했다. 한참 동안 방 안에 침묵이 흘렀다. 형님은 출근하려고 방을 나서며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임시 순경이 무슨 힘이 있나요. 어려울 거예요.”

그날은 하루 종일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아버님을 비롯한 식구 모두가 거의 입을 열지 않았고 나는 운영위원장이 사형장에 끌려 나오는 모습을 상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시간은 더디게 갔고, 저녁이 되었는데도 형님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사랑방 아버님 옆에서 잠이 들었다.

새벽녘에 누군가가 문밖에서 “어르신, 주무십니까?” 하는 말을 반복했다. 그 소리에 잠을 깬 내가 급히 문을 열어젖히니 운영위원장이 서 있었다. 그는 머리를 땅에 떨어뜨린 채 흐느끼면서 말했다. “자제분 덕분에 제가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마을을 떠나 어디에 살든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다음 날이었다. 운영위원장이 살던 집이 분노의 공격을 받았다. 문이란 문은 모두 깨지거나 부서졌고 방 안에는 인분이 뿌려졌다. 동네 사람들이 고함을 질렀다. “그놈은 반드시 잡아서 죽여야 해!”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머릿속은 몹시 혼란스러웠다. 자식들이 의용군에 끌려가 죽은 동네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인간이 곧 하늘’이라는 아버님의 말씀이 천륜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평생을 ‘인간’으로 사신 아버님과 어머님의 묘지에 ‘천륜을 따르고 이웃을 소중히 여기다’라는 글을 올렸다.

- 『천사가 온다』 중에서
(강대기 지음 / 올림 / 216쪽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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