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어느 의사의 용기 |
 |
| |
|
|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의 한 작은 마을 율란소니, 진흙 벽돌로 만든 오막살이 집들이 모여 있는
이 곳에 열대의 태양이 무자비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1996년 8월 21일, 둥치 둘레가 4.5미터나
되는 거대한 '음부유'나무 그늘 아래 서 있던 나도 그 뜨거운 열기를 느낄 정도였다.
10년전 나는 <의료선교자원봉사단(vimm)>을 창설했었는데, 지금은 전 세계 17개국 빈민들
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단체가 되었다. 하지만 그 중 어느 부족에도 지금 우리 앞에 서 있
는 이 수백 명의 다종족 주민들만큼 궁핍했던 사람들은 없었다. 풀잎으로 엮은 치마 하나만
간신히 걸치고, 관습에 따라 귓볼을 자른 사람들도 몇몇 있었다. 우리 주변의 무성한 수풀
속엔 사자, 가젤, 원숭이들이 숨어 있었고 이따금씩 도둑들도 잠복해 있었다.
우리 팀은 의사 여섯 명, 간호사 두 명, 의예과 학생 두 명, 현지인 통역사 여덟 명, 현지인
선교사 그리고 버스 운전사로 이루어졌다. 그날, 진료 봉사를 시작하기 전에 나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나와 홍해를 건넌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스라엘 민족이 구원받은 것은 자
신들의 능력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이며,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그들
이 홍해를 건너 마른 땅을 밟을 수 있도록 바닷물을 양쪽으로 갈라 주셨다고 모인 사람들에
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서너 시쯤 우리가 진료소로 쓰고 있던 집에서 한창 진료를 하고 있는데 8킬로미터쯤 떨어진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걷지도 못할 정도로 병 든 여인을 데리고 들어왔다. 열이 나서 몸이
불덩이 같고, 탈수 증상에, 검은 피부였지만 핏기라고는 전혀 없던 그 여인은 심한 통증으로
일어나 앉지도 못해 탁자에 눕혔다. 지나치게 하얀 눈자위로 미뤄 보아 빈혈이 분명했다. 부
풀어 있는 단단한 복부는 장출혈과 감염 증세로 인한 것이었다. 몇 가지 질문과 답을 듣고
는 그녀가 자궁외 임신으로 인한 난관 파열로 위급한 상태라는 진단을 내렸다. 최고의 시설
을 갖춘 현대식 병원에서도 그녀가 살아날 확률은 50퍼센트를 넘지 못했고, 설령 살아난다
해도 갖가지 합병증을 수반할 것이었다. 그런데다 가장 가까운 병원마저도 3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다. 그녀에게 정맥주사액 2리터와 항생제를 주사했다. 우리가 의학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임상적 판단으로는 그녀가 앞으로 몇 시간 내에, 아니면 기껏해
야 그날 밤 안으로 죽게 되리란 결론뿐이었다.
나는 현지인 선교사에게 스와힐리어로 내 말을 통역해 달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
의 구주이심을 알고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그에 대해선 들어 본 적이 없어요." 가냘픈
대답이 흘러나왔다. "제가 그분에 대해 알려 드릴까요?" "네." 정말이지 평소 나는 환자들과
이런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하지만 이 여인이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늘에서 이 땅에 내려오셨는지,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으면 죽은 후 어떻게 천국에 가게 되는지 짤막하게 얘기했다. 통
역사의 도움으로 나는 여인에게 나를 따라 기도하게 했다. "이전에 제가 잘못했던 모든 것
을 용서해 주세요.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살고 싶습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이제야 알았
습니다. 주님께 속한 자가 되길 원합니다." 바로 그 순간, 내게 뜻밖의 용기가 솟았다. 우리
가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그 여인을 치유해 주실 수 있음을 왜 믿지 못하는가? 성
경엔 그런 일들이 수없이 일어났지 않은가! 물론, 치유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율란소니 마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권
능을 보여 줄 수 있는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나는 통역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라면 여인을
치유해 달라고 거기 모인 사람들이 다 듣도록 큰 소리로 기도했다.
기도를 마치고 두 눈을 떴을 때 내가 무얼 보고자 기대했는지는 사실 나도 모르겠다. 성경
이야기의 인물들처럼 그 여인은 탁자에서 벌떡 일어나 걷지 않았다. 그저 애처롭게 그대로
누워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가여워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그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는 생각뿐이었다. 지금 우리 앞엔 문제가 하나 더
놓여 있었다. 밤이 되기 전에 여기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싱기다의 우리 본부로 돌아가려
면 지금 출발해야 했다. 그런데 여인을 데리고 왔던 이웃 주민들이 이미 마을로 돌아간 후
였으니.... 어쩔 도리 없이 우리는 여인을 우리 버스에 태워 수풀 지대를 지나 8킬로미터 떨
어진 그녀의 마을로 데려갔다. 그리고는 그녀의 진흙 집 바닥에 조심스레 그녀를 내려놓았
다. 잔뜩 술에 취한 남편에게 아내가 병으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얘기했지만, 그는 술기운 때
문인지 아니면 여자를 천대하는 그들의 문화 때문인지 통역사가 전하는 우리의 얘기를 태연
하게 듣고만 있었다.
버스 뒷자리에 앉아 싱기다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조용히 하나님께 말하듯 기도했다. '주님,
주님의 영광을 위해 이 여인을 치료해 주세요,' 조금씩 마음속에 평안이 가득 차 오르면서
하나님께서 정말로 그 여인을 치료해 주시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
나 다른 동료들에게 말했다. "제 마음속에 그 여인이 나았다는 확신이 듭니다!" 잠잠했다. '
이젠 별 소릴 다 하는군.'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나도 그랬다. 내가 뭐라고 기도
한 번에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켜 주시겠는가? 이튿날도 우리는 율란소니 마을로 갔다. 나
는 그 여인의 소식을 물었다. 이미 죽었을까? 그녀의 마을이 8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기에
아무도 소식을 몰랐다. 율란소니에 머무는 마지막 날인 수요일, 나는 다시 소식을 물었다.
아직도 소식을 들은 사람이 없었다. 이미 세상을 떠났다면 선교사가 내게 알렸을 테고, 열대
지방에서는 속히 매장해야 하니까 벌써 장사를 지냈을지도 몰랐다.
진료소는 늘 시끌벅적하다. 사람들은 서로 밀치고, 아이들은 울고,. 의사와 환자와 통역사가
동시에 말을 한다. 그러던 오후 서너 시쯤, 환자를 진찰하고 있는데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져
나는 어리둥절하기도 하면서 놀랐다. 고개를 들어보니 홍해가 갈라지듯 양옆으로 갈라 선
사람들 사이로 직접 만든 통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맨발로 걸어오고 있었다. 도무지 믿기지
않아 나는 정신없이 걸어가 여인을 얼싸 안았다. 나는 통역을 통해 물었다. "이제 괜찮습니
까?" 말보다 그녀의 미소가 더 확실한 대답을 주었다. 여인은 마을에서부터 이 곳까지 8킬
로미터를 걸어왔다고 했다. 아프지도, 지치지도 않고 말이다. 나는 철저하게 검진을 했다. 복
부가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열도 없었다. 완치되었다! 동료 한 명이 경이에 찬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우리 약으로 나은 게 아니죠? 그렇죠? 기도로 일어난 기적이죠? 그렇죠?"
"그래요. 맞아요."
우리 <의료선교자원봉사단>의 첫 번째 강령은 우리가 찾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
다주는 것이다. 올해 우리는 율란소니 마을에 다시 찾아가 종합의료원과 교회를 세움으로써
그 마을 사람들의 영혼과 몸을 모두 돌볼 계획이다. 우린 그들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또한 가끔씩은 하나님께서 친히 오셔서 기적을 일으키신다는 걸 알기에 우리는
너무 기쁘다.
|
|
 |
|
인포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