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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거짓말, 감춰진 진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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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의 내선 전화가 울리고 상사가 자신의 방으로 오라고 했을 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갔다.
우리는 매일 지불기한이 넘은 대출금, 결손처분 그리고 부도수표 등에 대해 의논하는 회의를 해 왔다.
내가 일하던 작은 마을의 신용조합의 사장인 제니스 린지를 나는 무척 존경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제니스는 실정에 밝은 여류 경영인이었을 뿐 아니라, 내게는 스승과 다름 없었다. 2년 전, 당시 이혼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나를, 경험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니스는 고용해 주었다. "배우면
됩니다." 이렇게 말하며 제니스는 몇 달 동안에 걸쳐 내게 장부정리하는 법, 체납된 대출금을 거두는
법 등을 가르치면서 금융기관을 경영하는데 필요한 온갖 복잡한 사정들을 익히도록 했다.
숱이 많은 검은 머리카락을 위로 말아 올린 제니스는 석고상처럼 이목구비가 뚜렸했고, 모든 면에서
나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갈색의 마춤 트위드 정장차림의 그녀를 보면 존경심이 절로 우러나왔다.
그 날, 그녀의 책상 맞은편 가죽의자에 앉으면서도, 머지 않아 그녀에 대한 나의 존경심이 산산이
깨어지리라고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이 서명카드에 적힌 날짜를 고쳐야겠어. 그리고 서명도 해야겠고." 흰색 카드를 책상 너머로 내밀
며 말했다.
"제가 그분에게 전화해서 날짜도 기입하고 서명도 할겸 오시라고 할까요? 어쩌면 오늘 오실 수도 있
을 텐데요." 나는 그 카드의 이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분명히 서명란이 비어 있었다. 거기에 적혀
있는 대출 날짜도 이틀 전으로 되어 있었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걸 난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쿡
씨는 한 주 전에 이미 대출금을 받아 갔기 때문이었다.
"아냐, 그건 지금 고쳐야 해. 그에게 문제가 하나 생겨서 내가 직권으로 대출해 준 거야. 개인적으로
알기도 하고 해서 말야. 하필 연말 감사가 오늘 시작되기 때문에 서명과 정확한 날짜를 적어 둬야
하거든. 간단한 기술적인 것이니까 문제 삼을 이유는 없어. 그 사람 이름으로 서명 좀 하고 날짜 란
에 고친 것에다가는 당신의 이니셜을 적으면 돼요." 제니스는 벌써 자기에게 온 편지들을 들여다 보
면서 다른 일을 하려고 했다.
"그래도 되는 거예요? 합법적인가요?" 내가 물었다.
제니스는 웃으면서 되물었다. "날 믿지 않나요? 그건 아주 사소한 일이야. 그리고, 이 일에 대해 알
사람은 당신하고 나밖에 없어."
그녀가 맞았다. 나는 진심으로 그녀를 믿었다. 내가 감히 뭐라고 그녀가 한 말을 캐물을 수 있겠는가?
나는 펜을 들고 그 카드에 쿡 씨의 이름으로 서명을 했다.
몇 달이 지나는 동안, 제니스는 가끔 나를 불러서 기록카드나 문서들을 조금씩 고치게 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럴만한 이유를 들며 설명해 주었다. 나는 시키는 대로 했고, 고친 자리에는 언제나 내
이니셜을 써 넣었다. 내가 의문을 제기할 때마다, 그녀는 "충분한 이유도 없이 내가 뭘 하라고 시키
던가?" 라고 말했다. 제니스는 '사장'이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내가 필사적으로 직장을 찾고 있을 때
내게 일자리를 준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충성과 신뢰를 다해야만 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저녁 식탁에 앉아 내 세무신고서를 작성하고 있을 때였다.
맏딸 에이프럴은 내 옆에 앉아서 퍼즐책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추가로 세금을 더 내야
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펜을 내동댕이쳐 버렸다.
"뭐가 잘못됐어요, 엄마?" 에이프럴이 물었다.
"올해 엄마가 생각했던 것보다 돈을 더 벌어서 세금을 추가로 내야 되게 생겼어."
"많이 내야 해요? 에이프럴이 걱정스러운듯이 쳐다보았다.
"아니, 그냥 조금만 더 내면 돼."
"왜 고치지 않았어요? 그러면 추가로 더 내지 않아도 될 거 아니예요."
"그렇게 하는 것은 나라에 거짓말을 하는 거야. 그건 옳지 않은 일이지." 나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설명하고는 딸 아이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진실을 말하는 것에 대해 주일학교에서 뭐라고 배웠니?"
딸애는 갈색 눈을 동그랗게 뜨며 엄숙하게 답했다. "결코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말씀하셨어요."
"그냥 조그만 거짓말이면 어떨까? 아무도 알 수 없는 그런?"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아시죠." 에이프럴은 금발머리를 끄덕이면서 말하고는 퍼즐책을 덮으며 덧붙였다.
"엄마가 옳은 일을 하시니까 기뻐요, 엄마"
그 날 밤 나는 너무 괴로워서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뜬눈으로 새웠다. 에이프럴과 나눈 대화는 착륙할
자리를 찾으며 공중을 선회하는 비행기처럼 내 머리속을 맴돌았다. 나는 옳지 않은 일을 하고 있었다.
직장에서 문서를 고치라는 말을 수긍할 때마다, 고용주에게 충성한다는 미명 하에 내 행동을 변명하
면서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주님,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행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진실을
말하도록 도와 주세요.'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두 주 후, 나는 드디어 시험대에 올랐다. 제니스가 내선전화로 나를 불렀다. "내 방으로 오세요."
이 번에는 결전을 각오하는 맘으로 천천히 갔다. "이 숫자를 3에서 8로 고쳐 줘야 겠어요." 그녀는
책상 위에 놓인 큰 뭉치의 서류 중 제일 위에 있는 한 용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안 돼요." 내가 속삭이듯 말했다.
"뭐요? 이건 조그만 실수일 뿐이야." 제니스가 놀라며,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런 식으로 고치는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어요. 거짓말 하고 싶지 않아요." 이렇게 대답하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제니스의 얼굴에 교활한 웃음이 번졌다. "하지만 당신은 이미, 당신의 이니셜이 그 서류들에 적혀
있잖아. 쓸데없는 소리 그만두고 시키는 일이나 해"
나는 머리를 흔들며 그녀의 방을 나왔고 하루 종일 해고통보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 일
도 일어나지 않았다. 몇 주가 지나도록 제니스로부터는 단 한마디의 부정적인 말도 없었다. 사실,
전혀 말이 없었다. 그녀는 나를 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는 저녁시간에 전화가 왔는데, 전화를 건 사람의 목소리가 신용조합의 부사장임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뭐 좀 물어 봐도 될까요? 그가 말했다.
"네, 그러세요." 내가 대답했다.
"제니스가 서류의 내용들을 수정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습니까?"
나는 앞이 캄캄했다. 그가 어떻게 그걸 알았을까? 나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저어... 그랬지요.
제니스가 원해서 몇 번 고쳐 주었죠. 하지만 끝내는 더 이상 못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왜 그러시죠?"
"당신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거든요. 나에게도, 또 다른 직원들에게까지 똑같은 일을 부탁했지요.
당신이 그런 것처럼, 우리도 더 이상 들어 주지 않기로 작정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이사회에서
기꺼이 말해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이사회에서 우리를 믿어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해고당할 각오를
해야 겠죠."
"그래도 우리는 해 봐야 합니다. 그 모임이 준비되면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그 후로 며칠 동안 그 모임에 대한 소식을 기다리느라 내내 긴장 속에 지냈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만약 해고당하면 생계는 어떻게 꾸려가지?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에이프럴의 말이 생각났다.
'엄마가 옳은 일을 하니까 기뻐요!'
마침내 연락이 왔다. 그 날 밤에 모임이 있을 예정이라는 내용이었다. 현재 사용하지 않는 한 회사의
창고 주소를 알려 주었다. 도착하니, 사방이 깜깜했다. 다만 2층 뒤편에 불 하나가 외로이 켜져 있을
뿐이었다. '무슨 스파이 소설에 나오는 곳 같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모퉁이를 돌아서자, 곧바로 이사회 전원과 직장 동료들의 얼굴이 보였다. 이야기를 해나가는 동안 모
든 직원들이 서류를 수정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사회 이사들도 이미 문제가 있
지 않나 수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두 시간 동안 회의를 한 후, 이사회는 어떤 결정을 해야할지 투표를 해야하니 자리를 비워달라고 요
청했다. 집으로 차를 몰고 오면서 문득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진실을 말했고, 그 진
실은 나를 불안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
그 다음 몇 주 동안, 사무실은 온통 혼란 속에 빠졌다. 제니스는 해고되었고 감사들이 들어왔다.
양측 변호사들이 내게 몇 시간 동안 질문을 하면서 조서를 꾸몄다. 법적투쟁이 벌어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마음은 평온했다. 내가 옳은 일을 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아세요." 라고 에이프럴이 말했었다. 그 애의 말은 옳았다. 어떤 말로 어떻게 포장을 하든,
진실을 감추고 억누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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