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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없이 사랑하다 함께 떠난 노부부
 
 
한동안 내가 봉사를 다녔던 곳은 가족을 대신해 환자를 돌봐드리는 무료 호스피스 센터였다. 호스피스 센터를 찾아온 사람들은 힘들게 투병 생활을 해왔으나 더 이상 항암 치료마저 무의미해진 말기 암 환자들이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질병의 치료보다는 단지 통증과 증상 완화를 위한 조처를 받으며 죽음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서도 마지막까지 서로 의지가 되어주다가 죽음으로의 여정마저도 아름답게 동행한 노부부가 있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하하 호호 웃고 떠드는 그 노부부에게서 나는 여유로움이랄까, 삶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은 데서 얻어진 넉넉함 같은 걸 볼 수 있었다. 특히나 할아버지는 움직이지 못하는 할머니를 간병하면서도 신나고 즐거운 일을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날도 여느 일요일과 다름없이 호스피스 센터의 아침을 시작했다. 음악 봉사를 막 끝내고 모처럼 식사를 도우러 한 병실에 들어서던 참이었다. 환자복을 입은 할아버지가 침대에 누워 있는 할머니에게 간식을 건네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두 분의 나이는 예순이 훨씬 넘어 보였는데, 함께 얘기를 나누는 모습으로 보나 주고받는 눈빛으로 보나 꼭 젊은 연인들 같았다.

“할아버지께서도 어디가 아프신가 보죠?” 조심스럽게 할머니께 여쭈었다. “아니야! 멀쩡한 양반이 저렇게 환자복을 입고 나하고 종일 함께 있겠다고 저러네.” 할머니는 골수암이 온몸에 퍼져서 움직일 수조차 없는 상태였다. 그런 아내를 곁에서 계속 간호하기 위해 편한 환자복을 입고 아예 그 병실에 눌러앉아 계셨던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두 분한테서 오랜 세월 동안 힘든 일, 괴로운 일, 기쁜 일, 즐거운 일을 모두 함께 겪고 이제 나란히 노년에 이른 사람들한테서나 엿볼 수 있는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아름다운 황혼의 모습이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은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찾아오는 거여! 사는 동안 많이 웃어. 그게 최고여. 울고 난 뒤에 깨닫는 인생도 있겄지만.” 할아버지의 말투에서는 뭐랄까 풍류 같은 게 느껴졌다. 호스피스 센터에서 내가 주로 맡은 것은 임종 때의 음악 봉사여서 환자들과 충분히 얘기를 나누기는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모처럼 두 어르신과 긴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봉사자로서 또 다른 의미에서의 즐거움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간호해 주시는 게 편하세요?” 당연한 질문 같았지만 나는 짐짓 할머니께 여쭈어 보았다. 여자 환자의 경우 남편이 간병해 주는 게 오히려 불편하다는 환자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할머니는 “좋아. 편하고.”라고 대답하시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지극한 정성과 사랑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했다. 그 때문일까. 할머니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말기 암 환자는 고통 때문에 잠잘 때 빼고는 대부분 얼굴을 찡그리고 있기가 십상이었다. 그러나 할머니한테서는 말기 암 환자에게서 보기 어려운, 편안하고 여유로운 모습까지 느껴졌다.

할아버지는 누워 있는 할머니에게 구봉서, 배삼룡 같은 옛날 코미디언들이 즐겨 하던 긴 이름 개그도 해주었다. “이 할망구 오래 살라고 이름 바꿔줄까 해! 김 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워리워리, 무드셀라……” 가락까지 넣어 이름을 부르는 할아버지의 개그에 할머니가 재미있다는 듯 호호호 웃으셨다. 할아버지의 유머는 주변의 다른 환자들까지도 생기가 돌게 했다.

“이 할망구는 내가 무슨 얘기만 하면 이렇게 웃어댄다우!” 한참을 서로 마주보며 하하 호호 웃고 나더니, 할아버지는 서로 함께 있으면서 웃을 수 있는 이 시간이야말로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하셨다. 어떤 상황에서건 서로가 함께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웃음을 주고받으며 그 시간을 지날 수 있다고도 하셨다. 맞는 말이었다. 우리는 왜 살아 있는 동안 충분히 기쁨과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아쉬워만 하다가 죽음을 맞이할까!

그렇게 두 분의 아름다운 모습을 뵙고 돌아온 뒤 일주일이 지났을까, 다시 찾은 호스피스 센터에서 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란히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할아버지는 묵묵히 할머니의 장례식까지 마치고 갑자기 쓰러졌는데, 미처 손쓸 새도 없이 그날 밤 바로 할머니와 영원한 안식을 함께했다는 것이었다. 센터 사람들은 “부부가 금슬이 좋으면 함께 떠난다던데, 어쩌면 저런 게 축복일지도 몰라” 하며 두 분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일까?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할아버지가 나에게 일러준 대답은 바로 사랑이었다. 두려움 없이 사랑하는 것!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즐기고 걱정 없이 맘껏 웃는 것! 두 분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많이 웃고 열심히 사랑했으므로, 떠나는 것도 그렇게 함께 행복하게 떠날 수 있었으리라.

- 『삶의 마지막 축제』 중에서
(용서해 지음 / 샨티 / 248쪽 /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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