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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아버지와 불화하며 불효를 한 것은 평생을 다해도 씻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다. 아버지의 직업은 목수였다. 어쩐 일인지 일하는 날보다 노는 날이 더 많았다. 아버지의 무능력과 게으름을 납득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보잘것없는 직업이 부끄러웠고, 가난도 용서할 수 없었다. 아버지를 맹렬하게 증오했다. 어떤 경우에도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지는 않겠다고 결심했다.

우선 아버지와의 사이가 결정적으로 어긋난 것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서다. 나는 화가가 되고 싶었으나, 아버지의 강요로 상업학교에 진학했다. 내게는 맞지 않는 옷이었다. 나는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었다. 동해안의 작은 마을에서 몇 달을 지내다가 돌아왔다.

학교를 함부로 그만두었지만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없었다. 어느 날 나는 밤늦게 술에 취해 돌아왔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골목 어귀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검은 유령처럼 빗속에서 나를 기다리던 아버지의 서른 몇 해 전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아버지는 내 방황이 끝나기를 묵묵히 기다리셨던 거다.

그 무렵 내가 할 수 있는 건 집 근처에 있는 중학교 운동장을 하염없이 달린다거나, 시립 도서관에 나가 하루 종일 책을 읽는 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막 취미를 붙인 고전음악 듣기에 빠져들었다. 종로의 ‘르네상스’와 충무로의 ‘필하모니’, ‘전원’ 등을 전전하며 하루 대여섯 시간씩은 보통이고, 어떤 날은 열 시간도 넘게 고전음악을 들었다. 음악 감상실의 어두운 구석에서 미래의 모습을 그려 보곤 했다. 미래는 어두웠다. 암중모색을 해도 길은 안 보였다. 모든 책임이 아버지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내가 쓴 환멸의 문장”이었다.

시립 도서관에서 아무 기약 없이 노트에 끼적거린 시와 평론이 빛을 보아, 스물네 살 때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스물다섯에 밥벌이 수단으로 인사동의 한 출판사에 취직했다. 편집부 말단에서 잡다한 책들의 교정지를 하루 종일 끌어안고 있는 게 한심한 내 일이었다. 그때 그리스 출신의 위대한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자서전을 만났다. 『영혼의 자서전』이 그 책이다. 내게 그 책의 교정지가 주어진 것은 선물이요, 축복이다. 나는 교정을 보다가 어느 대목에서 벼락을 맞은 듯 놀라 얼어붙었다.

주님, 나는 당신의 손에 든 활입니다. 당겨 주소서.
주님, 너무 세게 당기지는 마소서. 나는 약한지라 부러질지도 모릅니다.
주님, 마음대로 하소서. 부러뜨리든 말든 뜻대로 하소서.

나는 당신의 활이다. 당신이 너무 세게 당긴다면 나는 부러질지도 모른다. 활은 당신에게 속해 있으니, 부러뜨리든 말든 그것은 당신의 자유다. 카잔차키스의 기도문은 화살이 되어 내 마음의 과녁을 꿰뚫었다. 나는 여전히 가난한 청춘이고 주린 영혼이었으나, 카잔차키스의 이 구절을 만나고 어쩐지 내가 그때까지 부러지지 않은 채 있다는 것, 그리고 살아 있다는 것이 영광이라는 생각에 젖어 마음이 넉넉해졌다.

시인 휠덜린은 “존재한다. 살아간다.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했다는데, 나 역시 처음으로 그런 기분이었다.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나는 존재한다. 나는 살아간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아버지는 2001년에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오래 당뇨병을 앓고 계셨는데, 서대문 적십자병원 중환자실로 실려 가셨다가 다시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내가 아버지의 자리에 서니 아버지의 처지에 대한 이해가 생긴다. 아버지에게 관대하지 못했던 나의 태도를 뒤늦게 반성하고 후회를 해보지만 헛된 일이다. 정약용도 “내가 남의 아비가 되어서 너희들에게 이처럼 누를 끼치는 것이 부끄럽고, 그래서 내 저술로써 너희들에게 속죄하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쓴 바 있다.

모든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생명을 주고 양육비를 대 주고 가족 공동체의 운명을 책임지는 존재다. 그렇게 가족을 위해 평생을 희생하고도 채무자같이 자식에게 전전긍긍한다. 나는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인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아울러 아버지 가슴의 한 켠에 쌓인 그 많은 외로움을 애써 외면한 것도 사실이다. 뒤늦게 후회를 하고 “아버지, 용서해 주세요!”라고 말하려 해도, 아버지는 이미 안 계시다.

- 『도마뱀은 꼬리에 덧칠할 물감을 어디에서 구할까』 중에서
(장석주 지음 / 서랍의날씨 / 208쪽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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