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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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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얀시·폴 브랜드 지음/송준인 옮김/두란노/428쪽/15,500원)
언젠가 텍사스 달라스에서 열린 회의에서 세계 각지에서 온 수녀들과 간병인들, 고통 전문가 몇 명과 만난 후, 나는 텔레비전으로 방영되는 인터뷰에서, 고통의 유익에 대한 나의 개인적 철학을 설명했다.
"비록 개별적인 고통이 선하지 않을 때도 분명히 있지만, 고통 체계 자체는 선합니다"
나는 암 말기에 따르는 고통에 대해 때로 언급하기도 했다. 그것은 아무 유익한 목적도 없이 그저 쇠약하게 하는 고통이었고, 환자가 죽음이 곧 임박함을 깨닫는 고통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고통 제어 기술의 훈련을 대부분을 소용없게 만드는 고통이었다.
"그런 경우 의학적으로 해볼 만한 일은 고통을 가라앉히기 위해 충분한 약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환자의 마음을 혼미하게 할 정도로 주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그래도 고통이 지속되면, 자비를 베풀어 환자에게 많은 약을 주고 그들이 대화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을 잃게 하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테이블 맞은편에서 강하게 반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호리호리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영국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테리스 배니어 박사가 자리를 박차다시피하며 일어선 것이다.
"죄송합니다만 브랜드 박사님, 저는 박사님의 말씀에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저는 런던에 있는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 병원 의사인데, 박사님의 말씀은 저희 호스피스의 철학과 다릅니다! 저희는 환자에게 심각한 고통에서 자유로워짐과 동시에 맑은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는 점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보장할 수 있습니다."
배니어 박사의 반응이 너무 단호해서 나는 깜짝 놀랐다. 인터뷰가 끝난 후 나는 그녀를 찾았다. 그녀는 시셀리 손더스 여사가 1967년에 세운 호스피스를 방문해 달라고 초청했다. 그곳에 와서 최악의 경우인 말기 고통에 대해 그들이 발견한 사실을 보라는 것이었다. 그 뒤 나는 그곳을 방문했다.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는 엄격히 따지자면, 사람들이 죽으러 가는 곳이다. 환자들의 40%가 일주일 내에 죽는다.
내가 방문하자 배니어 박사가 설명해 주었다. "환자들 대부분이 심각한 고통을 안고 우리를 찾아옵니다. 질병 말기라고 할 수 있지요. 말기 질병의 고통은 독특합니다. 뼈가 부러졌을 때나, 이가 아플 때나, 출산할 때나, 수술 후 회복 단계에 있을 때 느끼는 고통은 의미가 있고 또 얼마 후면 끝납니다. 그러나 진행 중인 암의 고통은 임박한 죽음을 계속 상기시켜 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저희를 찾아오는 환자들은 대부분 고통이 삶 전체를 잠식한 상태입니다. 그들은 먹을 때나, 잠잘 때나, 기도할 때나, 생각할 때나,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때나 언제든지 고통의 지배를 받습니다. 저희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는 바로 그런 특별한 고통의 문제와 씨름하고 있습니다."
배니어를 방문한 후, 나는 시셀리 손더스 박사와 만났다. 그녀는 내게 호스피스 운동의 유래에 대해 말해 주었다. 그녀는 의료업이 죽음을 얼마나 형편없이 취급하는지를 알고 난 후 자기가 첫 번째 호스피스를 세웠다고 했다. 어느 정도 회복 가능성이 있는 환자를 위해 현대 병원은 무슨 짓이든지 다했지만, 희망이 없는 환자는 그들에게 귀찮은 존재요 의학의 실패를 상징하는 수치스러운 표상이었다. 의사들은 대부분 말기 환자들을 피하거나, 그들에게 지극히 평범하거나 반쯤은 거짓이 섞인 말을 했다. 의사들이 그들의 고통을 치료하는 일은 지극히 부적절하고 불충분한 경향이 있었다. 분주하고 붐비는 병원 한복판에서 말기 환자들은 두려움과 지독한 외로움에 사로잡혀 죽어갔다.
말기 환자들에 대한 수준 이하의 치료는 손더스 내면에 자리한 기독교인으로서의 깊은 감수성을 자극했다. 당시 간호사던 그녀는 서른세 살에 의대에 들어갔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살필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을 찾는다는 특별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채리티 수녀원이 운영하는 죽어 가는 사람들을 위해 가정에서 하는 봉사를 마친 후, 그녀는 이렇게 기록했다. "고통을 참을 수 없는 경우는 돌봐 줄 사람이 없을 때뿐이다. 사람들은 친절과 동정을 베푸는 누군가를 신뢰함으로써, 하나님과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이 훨씬 더 쉽다는 사실을 계속 깨닫는다."
그녀는 뒤이어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도 세웠다. 바로 거기서부터 전세계적 호스피스 운동이 시작되었다. 손더스는 호스피스가 사실상 중세 시대의 한 주제를 부활하는 것임을 주목했다. 중세 시대에는 교회가 죽어 가는 사람을 보살피는 것이 7덕목 중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손더스와 테리스 배니어는 함께 일하면서, 말기 질병에서 오는 고통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방법의 선구자가 되었다. 많은 병원에서는 고통에 관한 약을 처방할 때 'PRN(필요한 만큼)'이라고만 적어준다. 그러한 처방은 보건 관계자의 분별력에 의약을 맡기는 것이다. 그 결과 예상보다 일찍 고통이 재발한다면, 고통 중에 있는 환자는 다음 번 주사약을 빨리 달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손더스는 다른 접근을 시도했다. 그녀는 미리 조심스럽게 투약량을 결정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환자가 약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 고통이 결코 재발되지 않게 했다. 그녀는 약물을 꾸준히 혈액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심각한 고통뿐 아니라 지나친 진정 작용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손더스는 또한 환자 자신이 투약량을 조절하는 것을 시험했는데, 그 결과 말기 환자들이 약물을 과다하게 복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의 계획에는 죽어 가는 사람들을 보살피는 일에 관한 손더스의 지혜가 반영되어 있다. 환자들은 대부분 독방이 아니라 4인실에서 생활하게 했다. 가족들이 밤새 같이 있을 수 있는 충분한 공간도 배려했다. 커튼을 쳐서 사생활이 방해받지 않도록 했고, 또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 두려움이 아닌 신뢰하는 분위기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했다. 병실에는 공공 시설의 목록에 적힌 가구들이 아니라 백화점에서 구입한 가구들을 비치해 놓았다. 앞쪽으로 나 있는 창문 밖에는 멋진 영국식 정원이 잘 가꿔져 있었고, 뒤쪽 창문으로는 꽃밭과 금붕어들이 노니는 연못이 보였다.
호스피스를 방문하는 사람은 도처에서 생명의 흔적들을 보았다. 직원들이 환자의 침대 머리맡에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벽의 빈 공간에는 예술 작품을 걸었다. 또한 그곳에는 화분에 심긴 식물들로 이뤄진 미니 정글도 있었고, 대략 격주로 직원들이 연주회를 기획해서, 현악 4중주단이나 하프 연주자 또는 어린이 핸드벨 찬양단이 병동을 방문해 연주를 했다. 가능한 한,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는 직원의 편의가 아니라 환자의 편의에 맞춰 운영되었다.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 방문을 통해 나는 테리스 배리어가 달라스의 토의 석상에서 한 돌출 행동이 완전히 정당화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한 여성이 느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깊은 동정심을 바탕으로 성장한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었다. 이제 많은 교회들과 사회 단체들은 시셀리 부인을 본받아, 생명을 연장하려고 인간적 방법을 쓰지 않기로 한 말기 환자들에게도 사랑의 보살핌을 확대하고 있다. 이런 환자들은 당연히 의학적 치료 범위를 넘어선 사람들이다. 그러나 호스피스는 이처럼 인간의 가장 절망적 상황을 존엄과 긍휼로 다루는 방법을 찾아냈다.
시셀리 부인은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에 있는 환자들의 95%가 정말 온전한 정신으로 고통에서 자유를 누려 왔음을 뿌듯해 한다. 그녀는 우리가 대부분 직면할 가장 큰 최후의 두려움인 죽음의 공포와 그에 따르는 고통을 무력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었다.
- 『고통이라는 선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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