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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유가 시작되는 곳에서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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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아침 나는 텍사코 정유회사 제복을 입지 않았었다. 스물 세 살인 내 딸 줄리를 만나
점심을 먹기로 했었기에. 딸아이가 자랑스러우냐고? 오일을 교환하러 들렀던 사람이라면 누
구나 내 딸아이가 얼마나 대단한지 들었을 것이다. 바로 이틀 전에도 그 애 자랑을 늘어놓
다가 당사자에게 들켜 버렸다. “아빠, 사람들은 그런 말을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구요!”
이상했다. 그날 줄리의 방문은....
줄리는 오클라호마 시내에 있는 머라 빌딩에서 퇴근하는 길에 내 자동차 정비소에 잠시 들르
곤 했다. 하지만 월요일에는 뭐랄까.... 마치 떠나기 싫어하는 듯했다. 두 시간이나 머물더니
딸애는 두 팔로 나를 부둥켜안았다. 떠날 때면 언제나 나를 한 번 껴안아주었는데, 그 월요일
에는 아주 오랫동안 나를 껴안은 채로 있었다. “안녕, 아빠!” 그 애는 말했었다. 그 말 역시
이상했다. 최근에 줄리는 아주 중요한 말을 해야 할 때만 나를 아빠라고 불렀는데. 글쎄, 어쩌
면 그날 오후 그것에 관해 나에게 말하려 했을지도 모르지.
매주 수요일마다 나는 머라 빌딩 건너편에 있는 아테네 식당에서 줄리를 만나 점심을 먹었다.
아홉 시에 나는 커피 한 잔을 들면서 줄리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줄리는 사회복지 사무실
에서 통역 일을 하고 있었고 보통 8시 정각에 출근했다. 그 직장은 줄리가 대학을 졸업하고 얻
게 된 첫 직장이었다. 연방 정부 직원이어서 점심시간은 겨우 30분밖에 없었다. 게다가 줄리는
단 1분도 시간을 넘기려 하지 않았다. 딸아이는 항상 내게 전화를 걸어 점심식사로 무얼 먹을지
알아보고는 아테네 식당에 전화로 주문을 해 두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이번엔 치킨 샌드위치를 먹어야지, 나는 이미 결정을 해 놓았다. 점심식사 시간쯤에는 주차장에
차가 가득 차있겠지. 줄리가 가장 좋아하는 주차 장소인, 커다랗고 오래된 미국 느릅나무 밑에
서 그애의 빨간 폰티악 승용차를 보게 될 것이고. 내 트럭을 도로변 주차미터가 있는 곳에 세워
놓고 줄리가 커다란 유리문을 밀며 나오는 모습을 지켜봐야지. 겨우 152센티미터 키에 ("아빠,
난 153.5센티미터라구요!"), 몸무게는 47킬로그램도 채 안 되는 그 자그마한 아가씨를.
하지만 마음은 넓었다. 나는 주일날이면 교회에서 듣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이나 다른 모든
설교들이 다 옳다고 믿는 정도였다. 그러나 줄리는 어떤가! 딸애는 언제나 매일 매일 자신의 믿
음을 실천하며 살았다. 짬이 날 때마다 생활이 딱한 사람들을 도와주었고, 주일학교 교사도 했
으며, 인권 단체에서 봉사활동도 했다. 나는 농담 삼아 딸애에게 홀로 손을 내밀어 온 세상을
구하려 한다고 놀리곤 했다.
우르릉 울리던 소리가 잠잠해졌다. 어리둥절해진 나는 일어서서 부엌 유리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전화기를 움켜잡았다. “줄리냐?” 내 동생 프랭크에게서 온 전화
였다. 우리가 함께 자랐던 가족 농장으로 가려고 나섰다가 차에서 전화를 한 것이다. "형, 지금
텔레비전 켜져 있어요? 라디오 방송에서 그러는데 시내에서 폭발 사고가 있었대요.” 시내라고?
12킬로가 훨씬 넘는 거리잖아? 대체 어떤 종류의 폭발이기에 여기 있는 테이블까지 흔들어 놓는
단 말인가!
지역 뉴스 채널을 보니, 교통 정보 헬리콥터를 타고 공중에서 찍은 시내 정경이 나왔다. 연기와
먼지가 구름처럼 뭉쳐 있는 사이로 빌딩의 앞부분이 완전히 날아가 버린 9층 건물을 카메라가
가까이 다가가 비추고 있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프레드 P. 머라 연방 빌딩
....” 바닥은 공중으로 돌출된 채 삐져 나와 있고, 외벽이 다 없어진 공간 속에는 파편 잔해들
이 뒤엉켜 있었다. 그리고 그 커다란 유리문 대신에 무너져 내린 파편 더미가 3층 높이의 산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숨을 쉴 수도 없었다. 그 순간 나의 세계는 멈춰 버
렸다.
방송에서 사람들에게 시내 지역으로 나오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나는
전화기 옆을 떠날 수가 없었다. 줄리가 곧 전화를 할 것이다. 딸애의 사무실은 그 건물의 뒷부
분에 있었고 그곳은 아직 무너지지 않은 채로 있었다. 줄리는 어떻게 해서라도 전화기가 있는
곳을 찾아 내게 전화를 걸어올 것이다. 그날 하루 종일, 밤새, 또 그 다음 날 낮과 밤 내내,
나는 전화기 옆에 앉아 있었다. 반면에 친척들과 친구들은 흩어져 모든 병원을 찾아 다녔다.
전화벨이 두 번 울리더니 줄리의 이름이 생존자 명단 중에 있다는 소식이 왔다! 다시 전화벨이
두 번 울리더니 정정된 소식을 알려 주었다. 그 명단은 생존자들의 명단이 아니라 단지 그 건물
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의 명단이라는 것이었다.
사고가 난 지 이틀째인 금요일 아침, 나는 밤잠도 안 자고 전화기 지키는 일을 포기하고 시내로
차를 몰았다. 우리 가족 중 한 명이 아직도 행방불명 중이었기에, 경찰은 내가 바리케이드를
통과해 들어가도록 허락해 주었다. 크레인과 수색견 그리고 일단의 구조대원들이 잔해더미를
뒤지고 있었다. 그 중 하나는 한때 아테네 식당이었던 곳의 잔해였다. 엉망이 되어 버린 자동차
들, 그 자동차들 속에 줄리의 빨간 폰티악 승용차도 있었다. 그 차들은 불에 그을린 채 부러진
느릅나무 주변에 흩어져 있었다. 느릅나무에 새로 난 봄 이파리들이 마치 아깝게 희생된 인명들
처럼 벗겨져서 떨어져 있었다. ‘줄리야, 어디 있는 거냐?’
구조대원들이 뒤쪽 사무실에서 일하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살아 남았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줄리의 바로 옆 책상에 있던 여자도 팔이 약간 긁히기만 한 채 빠져 나왔다고 했다. 그러나 정확
히 9시 정각에 줄리는 자신이 맨 먼저 담당할 두 사람을 사무실로 데려오기 위해 자기 자리를
떠나 위층 건물 앞쪽에 있는 대기실로 걸어갔다는 것이다.
토요일 아침, 구조대원들은 안전한 곳에서 불과 몇 걸음 떨어져 있지 않은 복도에서 이 세 사람
의 시신을 찾아내고 말았다. 유아용 침대에 있던 어린 아기로부터 연금 신청을 하려던 노인에
이르기까지, 줄리를 비롯해서 167명의 무수한 생명을 빼앗아간 사고. 이 사고가 살상을 위해
사전에 모의된 폭탄테러였다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나는 오로지 증오심으로 내 자신을 버텨 나
갔다. 티모시 맥베이와 테리 니콜스가 체포되었을 때, 나는 그들도 일단 재판을 받으리라는 생
각에 속이 끓어올랐다. 그런 짐승 같은 놈들을 어찌 단 하루라도 살아있도록 해야 한단 말인가?
다른 기억들이 같이 얽혀 희미하게 떠오른다.... 줄리의 대학 동창들이 전국에서 몰려와 장례식
에 참석한 일. 희생자 가족들이 모임을 가졌던 일. 딸아이의 무덤에 꽃을 놓아 준 일....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시간의 틀에 넣을 수가 없었다. 내게 있어 시간이란 1995년 4월 19일 오전
9시 2분에서 정지해 버렸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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