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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과 차가운 무지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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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들은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쉰두 살이나 된 어른인데도, 나는 아기처럼 소리치며
엉엉 울고 싶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세상 꼭대기에 서 있는 기분이었는데...
나는 아이오와 주에 있는 일급 병원 중 한 곳에서 병원 관리자로 성공한 셈이었다. 행복한 결혼
생활 거기다 세 아이를 동시에 대학에 보내는 경비까지 고려한다면 경제적으로도 꽤 괜찮은 편이
었다. 내가 이루어 놓은 일들이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너무 자만한 탓일까. 직속 상관인 선임 부
원장이 나를 병원 본관으로 호출했다. 1985년, 새해가 겨우 몇 주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다.
내 사무실에서 얼마 안 되는 그 거리를 나는 기분 좋게 걸어가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밝게 미소를 지었다. 항상 그렇듯이 그저 대화나 몇 마디 주고받는 회의
라고 생각했다. 나는 상관에게 최근 내가 하고 있는 업무에 대해 보고할 것이며, 그는 내게 원무
과와 의사들, 그리고 이사회에서 상의하고 있는 전략 등을 알려 주리라.
하지만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회의 분위기가 여느 때와는 다르다는 것을 즉시 알 수 있었
다. 인사 담당이사가 내 상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평화롭
던 마음이 불안감으로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무슨 일이죠?" 애써 명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병원이 구조 조정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상황이 변하고 있죠." 데이브는 빙 돌려서 말하는 타입
이 아니었다. 아주 사무적인 태도로 그는 내 직위가 달라질 거라 설명했다. 이제 내가 선임 부원
장인 데이브에게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인사담당 부원장인 사라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거의 7년 전, 내가 처음 이 병원에 왔을 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불안한 마음에 의자에서 몸을 들썩이며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동안 데이브가 계속
말했다. 이 회사 자문의 보고서를 언급하면서 그는 중간 관리층을 축소한다는 내용의 말을 했다.
그리고는 나를 아예 쳐다보지도 않은 채 그냥 지나가는 말로 덧붙였다.
"구조 조정의 일환으로, 우리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경비를 절감해야 합니다. 따라서 당신의
월급도 25퍼센트 감봉하게 되었습니다."
사라가 처음으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물론, 우리는 당신이 병원에 계속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딕.
진심으로요."
사라의 말에도 불구하고, 문득 명치 끝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두렵기도 했고 어떤 면에서는
창피하기도 했다. 늘 나 자신을 떠오르는 별이라 생각해 왔는데, 갑자기 교묘한 방법으로 해고를
당하는 중이며 결국에는 해고되리라는 분명한 느낌이 들었다. 1980년대. 병원들도 기업체들과 마찬
가지 방식으로 경영되고 가격과 제공하는 서비스 면에서 경쟁력을 요구하던 때였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것이 '내게' 닥쳤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어쨌든 나는 데이브의 사무실을 나와 고개를 푹 숙인 채 내 사무실로 돌아왔다. '아내와 아이들에
게 어떻게 말하지?' 머리 속엔 이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해고될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궁금했다.
'주택 할부금은 어떻게 내고 아이들 등록금은 어떻게 한담?'
과거에 나는 인재 스카우트 담당자들로부터 여러 번 전화도 받았었지만, 그 직위가 아무리 유혹적
이어도 나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금의 직장이 마음에 들었고 내가 잘하고 있다고 확신했기 때
문에 그런 제의에 응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 나의 자존심은 추락해 버렸고 너무나 외로웠다.
그 일이 있은 후, 며칠간 나는 사태를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어쨌든 당장 '실직'을 한 건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나는 자존심에 심한 타격을 받았다. 언제라도 불러서는 내가 해고되었다는 통고
를 할 거라는 생각에 무척 의기소침해졌다. 이력서를 새로 만들고 구인광고를 살피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내가 늙고 쓸모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계속 기도하면서 너무도 불공평해 보이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하나님께서 뭔가 조치를 취해
달라고 간구했다. "이들이 얼마나 잘못하고 있는지 깨닫게 하시고, 더 나은 보수의 다른 좋은 일
자리를 구해 주소서." 명치 끝이 서늘하던 느낌이 점차로 얼음처럼 냉랭해졌다. 체중은 줄었고,
내 기대에 맞는 지위와 보수를 제공할 새 일자리를 찾는 일 외에는, 모든 일에 의욕을 상실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이 나를 측은하게 보는 것 같았다.
괴로운 심정이 커져 감에 따라 복수심마저 서서히 내 기도 속으로 파고들었다. 어떤 날은 몸이 마
비되는 것 같아서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수화기를 들 수 조차 없었다. 어느 날, 나는 완전히 기가
죽은 채 병원 본관으로 향했다. 이력서를 여러 군데 보냈지만 단 한 군데도 면접을 요청하는 데가
없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토록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나를 건져 주시지 않는 걸까?'
태양이 등 뒤에 있었는데, 보도를 응시하며 걷고 있던 나는 앞에서 움직이는 내 그림자의 어둠을
보고 깜짝 놀랐다. 갑자기 저 그림자에는 내가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자존심, 욕망, 탐욕, 미래에 대한 용기와 믿음의 부족. 그리고 나의 가족과 친구와
건강에 대해 감사하지 못했던 그 모든 것들이...
직접 대답이라도 할 것처럼, 나는 머리를 들고 광대한 푸른 하늘을 응시했다. 내 머리 위로 환일
(幻日)이 보였는데, 이런 현상은 추운 날씨에 태양 주위에 나타나는 아름다운 후광 같은 무지개이다.
나는 환일 현상이 나타나는 과학적 이유를 알고 있었다. 태양이 공기 중에 있는 얼음 결정체들을
어떤 각도에서 비춰 빛이 굴절되는 것인데, 그때 무지개 빛깔의 아름다운 광경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런 게 내 마음속에서도 생길 수 있겠구나.' 내 얼음 같은 공포와 분노
와 자존심 그리고 최고의 월급과 명성, 직함을 가진 일자리를 얻기 위한 나의 욕망. 이 같은 냉랭한
요소들도 하나님의 찬란한 광채로 바뀔 수 있으리라. 그렇다. 변해야 하는 것은 내가 처한 상황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등 뒤로 마치 나를 안아 주는 듯한 태양의 따스함이 느껴졌다.
"알겠습니다, 하나님. 인생이란 변화로 가득 차 있군요. 저 역시 바뀔 수 있구요." 나는 말했다.
나의 미래에는 아직도 좋은 일이 많이 기다리고 있으며, 나의 정체성과 자존감은 직업 그 이상의
가치에 바탕을 둔 것임에도, 분노와 격분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꽉 붙들고 있었음을 깨달
았다. 나는 큰 소리로 웃었다. 이제야말로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된 것이었다.
결국 나는 아이오와 주 남동부, 미시시피 강가의 어느 조그마한 철도 마을에 있는 한 작은 병원에
취직하기 위해 면접을 보려고 줄을 섰다. 그 병원은 전에 내가 있던 병원 만큼 크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내가 강등 당한 거라고 생각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원무과에서 내게 취업
조건을 제시 했을 때 나는 아주 기쁜 마음으로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나는 고개를 똑바로 들고 아주 당당하게, 그러나 동시에 겸손한 마음으로 옛 직장을 그만둘 수 있
었다. 더 이상 데이브와 사라를 탓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에게 감사를 해야 하리라. 격동하는
시대 속에서 내 인생에 뜻밖의 어떤 변화가 일어나더라도, 나는 그에 적응하고 앞으로 나갈 수 있
음을 이젠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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