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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수 저 편 불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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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전 나는 여름 캠프에서 접시 닦는 일을 했다. 도심 저소득층의 아이들을 위한 캠프로 아이들
대부분이 어린 흑인 소녀들이었는데 한결같이 빼빼 마르고 거칠었다. 난 요리사로 일하는 어머니
와 함께 캠프에 있는 작은 숙소에서 지냈다. 내 일은 접시 닦는 일이었지만 결국엔 다른 허드렛
일도 거들어야 했다. 예를 들어 지난 밤 아이들이 실수를 해서 젖은 매트리스를 테니스장으로 가
져가 말리는 일도 내 몫이었다.
그해 여름 에이미가 캠프장에 오기 전까지는 별일이 없었다. 일곱 살쯤 되는 에이미. 그애는 촘촘
하게 땋아 내린 머리 끝마다 색색의 구슬을 달고 있었다. 하지만 그애의 가장 특이한 점은 아무에
게도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에이미가 다섯 살 때 몇 개월 동안 장롱에 갇혀 지
냈다고 내게 말해 주었다. 낮에 일을 해야 했던 에이미의 어머니는 아이를 맡길 돈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장롱에 가둬 두었다고 했다. 에이미가 계단에서 떨어져 다치거나 차에 치일까 봐서 말이다.
한 이웃이 그 사실을 알고 신고를 했고, 결국 에이미는 어머니와 헤어져 대리로 맡아 줄 가정으로
보내졌다. 그때 이후로 에이미는 전혀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가난이 얼마나 끔찍한 건지, 또 에이미
가 그 일로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낮 동안 에이미를 자세히 지켜
보기 시작했다. 정말 그랬다. 에이미는 누구하고도 말을 하는 법이 없었다. 매일 밤, 침대에 오줌
을 쌌고, 그래서 나는 아침마다 에이미의 숙소로 가서 젖은 매트리스를 가지고 테니스장으로 내려
갔다. 에이미를 위해서라면 이 매트리스를 캘리포니아까지라도 나를 수 있으리라. 가끔씩 에이미는
테니스장까지 내 뒤를 따라오기도 했다. "에이미, 도대체 네 비밀이 뭐니?" 나는 그렇게 묻기도
했다. 그러면 에이미는 미소로 답할 뿐이었다. 내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는 정말 깜찍한 미소로
말이다.
그후 나는 에이미에게서 뭔가 다른 점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점심식사 후,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
머니와 아버지로부터 온 편지를 받았다. 하지만 에이미에게 온 편지는 한 통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이미는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우편물을 전해 주는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당장이라도 자기 이름이 불려지길 고대하면서...
밤에 나는 호숫가 벤치에 앉아 호수 저편을 바라보며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곤 했다. 어느 날 밤
벤치 쪽으로 가니 에이미가 두 발을 앞뒤로 흔들며 앉아 있었다.
"안녕, 에이미!" 내가 옆자리에 앉으며 말을 걸었다. "잠자리에 들 시간 아니니?"
에이미는 아무 대답 없이 그냥 나를 올려다보며 미소만 지었다.
"에이미, 네 비밀이 뭐니?" 호수 저 너머를 바라보며 내가 다시 물었으나 에이미는 대답이 없었다.
"그러면 내 비밀이 뭔지 말해 줄게. 저기 저 빛 보이지? 호수 건너편 말이야."
에이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곁눈으로 슬쩍 보니 에이미가 호수 건너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난 저 불빛을 보는 게 좋아. 내게는 저 빛이 내 꿈처럼 느껴지거든. 무슨 말인지 알겠니?" 여전
히 대답이 없었다. "내 꿈이 뭔지는 나도 아직 몰라. 그냥 지금은 저기 저 불빛처럼 내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면서, 언젠가는 내 인생에 뭔가 중요한 일을 하게되리란 느낌을 주는 그 어떤 것이지."
에이미가 내 팔에 머리를 기댔다.
"어쩌면 이 캠프에서 접시를 닦고, 매트리스를 테니스장으로 옮기고, 가닥가닥 땋은 머리에 온통
구슬을 달고 있는 꼬마 아가씨와 여기 이렇게 앉아 있는 이 모든 것이 내 꿈인지도 몰라."
에이미가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말을 하지 않으니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조금 있다가 나는 에이미를 안고 그애의 숙소로 가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는 내 숙소로 돌아왔다.
에이미에 대한 생각을 머리 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내일 점심식사 후에도 에이미가 얼마나 희망
에 부풀어 편지를 기다릴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호수 그림을 한 장 그렸다.
호수 건너편에 커다란 빛이 빛나고 있는 그림을! 그림을 잘 접어 봉투에 넣고 그 위에 에이미의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는 식당으로 가 우편물 더미 위에 편지를 놓았다.
다음날 우편물을 전달하는 시간, 기대에 찬 모습으로 앉아 있는 에이미를 지켜 보았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에이미는 마치 이런 일에 아주 익숙한 프로처럼 벌떡 일어나 편지를 받으러 나갔다.
에이미는 자리에 앉아 봉투를 열고 그림을 보았다. 다른 아이들이 모두 식당 밖으로 나갔을 때까지
도 에이미는 그림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나는 에이미에게로 가서 말을 걸었다.
"에이미! 네 비밀이 뭐니?"
에이미는 아무런 대답 없이 그림만 보다가 나를 쳐다보더니 그림을 가슴에 꼭 안았다. 그 정도의
일이 내가 에이미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임을 알았기에 마음이 아팠다. 나 역시 아직 어린
아이에 불과했으니까. 내게 돈이 있다면 에이미를 학교에 보내거나, 법정에 가서 에이미의 어머니
를 데려와 두 모녀가 어엿하게 사는 데 필요한 돈을 대 줄 수도 있을 텐데. 하지만 정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내가 가지고 있는 꿈을 에이미에게 떠올려 주는, 호수 저편의 불빛을 그린
그림 한 장을 주는 일 뿐이었다.
캠프 마지막 날, 에이미가 나를 폭 감싸 안으며 작별 인사를 했다. 내겐 백만 마디 말보다 더 귀
한 포옹이었다. 에이미의 포옹은 내가 에이미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우리가 나눈 비밀을 에이미가
결코 잊지 않으리라는 걸 말해 주었다. 아마 에이미도 자기만의 꿈이 있었으리라. 정말 그렇기를
바란다. 그다지 대단한 일은 아닌 듯 보이지만 그해 여름 에이미와의 만남은 내 인생에서 잊지 못
할 가장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에이미는 우리의 꿈들이 무엇으로 이루어지는지를 내게 가르쳐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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