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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그네들의 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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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 시절 아버지는 미주리 주 세인트 조셉 강 근처에서 식료품점을 경영하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 지역은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던 실업자들이 잠시 머물다 가던 곳이었다. 그들은 때때로 먹을 것이나 임시로 머물 곳을 마련하기 위해 그곳에서 일을 하기도 했지만, 인정 많은 마을 사람들은 음식이나 물건을 그냥 주기도 했다.
이들 실업자들은 도시에서 도시로 또는 농장들을 떠돌아다니면서, 울타리나 헛간에 암호들을 몰래 새겨 두곤 했었다. 배고프고 피곤한 나그네들이 한 끼 식사를 얻고 하룻밤의 단잠을 잘 수 있을 만한 곳을 분필로 표시해 두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행복한 얼굴을 그린 표시는 들어가서 잠을 잘 수 있는 헛간이라는 말이었다. 그 외에 아플 때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곳을 가리키는 암호, 또는 식수의 질이 나쁜 집이라고 경고하는 암호도 있었다. 부정직한 사람을 의미하는 양쪽에 날이 선 기병도(刀) 표시가 있는 집에서는 어느 누구도 품을 팔지 않았다.
그 시절엔 우리 집 역시 어려웠다. 러시아에서 처음 이민 왔을 당시 아버지는 여기저기 행상을 하면서 실, 바늘, 직물이나 피륙 등을 팔았었다. 나중에 식료품점을 사긴 했지만 상품을 완전히 갖추어 놓느라고 수도 없이 애를 먹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식료품이나 통조림들을 가능한 선반 앞쪽으로 옮겨 진열해 놓아서 물건들이 실제 있는 것보다 더 많아 보이게 하는 법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부양할 자녀들이 다섯 명이나 되었음에도, 아버지는 고아가 된 조카를 기꺼이 받아들인다든가 외상을 주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배고픈 사람을 그냥 돌려보내는 일이 없었다.
기차가 우리 마을에 서면, 실업자들이나 떠돌이 일꾼들이 철길로 뛰어 내렸고, 철로 구내에서 겨우 13구역밖에 떨어지지 않은 우리 식료품 가게 쪽으로 거리를 가득 메우고 몰려들었다. 여름날, 어머니는 레모네이드 주전자를 들고 가게 앞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목을 축이도록 따라 주었고, 가게 안에 있던 아버지는 땅콩버터가 든 커다란 통과 얇게 썬 식빵을 올려놓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던지, "볼로냐 소시지와 우유 좀 줄까요?"라고 묻기도 했다.
어느 날, 손에 굳은살이 박인 남루한 한 노인이 낡은 손수건으로 눈 주위를 닦으며 육류 진열대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그 날은 야윈 체구에 군데군데 기운 작업복을 입은 남자들이 유난히도 많이 가게로 몰려들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의아해 하며 그 노인에게 혹시 이유를 아느냐고 물었다.
"밖으로 나와 보시오. 보여줄 게 있소이다." 노인이 말했다. 호기심에 나도 따라나섰다. 우리는 건물 모퉁이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석탄 조각으로 그린 십자가 표시가 있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아버지가 러시아인 특유의 억양이 섞인 영어로 물었다.
"선한 크리스천이 여기에 산다는 뜻입니다. 그 사람은 음식을 구하는 사람을 절대로 그냥 돌려보내지 않는 사람이죠."
아버지는 어색하게 웃었고 우리 세 사람은 가게로 되돌아왔다. 그렇게 어려웠던 대공황 시절이 지나는 동안 아버지는 아무리 어려워도 그 십자가 표시를 결코 지워 버리지 않았고, 늘 그 표시가 시사하고 있는 바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행동했다. 그리고 우리는 선한 사람이란 나그네들이 표시해 놓는 여러 가지 암호를 통해서도 드러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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