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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웠던 1월의 어느 오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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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어느 날 오후, 서너 시경이었는데도 바깥 하늘은 벌써 어두컴컴했다. 아내 로이스는 거실의 비쩍 마른 크리스마스 트리 옆 마룻바닥에 다리를 꼬고 앉아, 색색의 전구줄을 감아 올리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참 멋진 크리스마스였어요. 그렇지 않아요?" 아내가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결국 모든 일이 다 잘 되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거예요."
'또 시작이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고 해서 오해는 없길 바란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며 또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는 가정에서 자라났다. 게다가 우리는 매번 식사 때마다 기도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하나님께서는 너무 바쁘셔서 1년 이상이나 내가 실직 상태로 있는데도 별 신경을 쓰지 않으시는 것 같았다. 또한 큰 딸애에게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것이나, 우물 펌프가 고장난 것, 또 우리 집 개에게 예방주사를 맞춰야 할 시기가 지났다는 사실에도 하나님은 도무지 관심이 없으신 것 같았다.
"여보." 아내가 크리스마스 장식물들을 담은 종이 상자를 닫으면서 말했다. "우리가 서로 선물을 교환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인 것 같아요. 하지만 난 당신이 원하는 스위스제 군용 시계를 선물해 주고 싶었는데...."
"쓸데없는 소리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단순한 문양에 견고한 강철로 된 스위스제 군용 시계를 상점에서 본 후, 나의 마음은 온통 그 생각으로 가득해 있었다. 해외에서 근무하는 동안 나는 시계에 특별한 관심을 쏟게 되었고, 차츰 면세점에서 싼값으로 사서 모으기도 했었다. 하지만 내가 일하던 은행이 더 큰 은행과 합병을 해 일자리를 잃게 된 지금, 그런 사사로운 취미를 계속해 나갈 여유가 없었다.
처음 일자리를 찾던 몇 주가 지나면서, 나는 아무리 면접을 잘 본 것 같아도 성급히 뭔가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재빨리 터득했다. 그래야만 실망하지 않을 수 있었고 아내의 기대도 부풀리지 않을 수 있었다. 면접을 보는 날이면 하루해가 저무는 기차역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내는 나를 보자마자, "어땠어요?"라고 물었고, 그 때마다 난 그냥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했다. 언젠가는 분명 내게 일자리가 생길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걸까? 아무런 가망도 없이 실직 상태가 계속되면서, 평상시 낙천적이던 내 성격은 점점 침울해져만 갔다. 어떤 날은 잠도 이룰 수 없었다.
결국 목사님께 조언을 구하러 갔다. 목사님은 노란 색 포스트잇이 가득 붙은 낡은 성경책을 펼치고는, 분별력 있어 보이는 깊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하나님께서 당신 삶의 세밀한 모든 부분까지 깊이 관여하고 계심을 믿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은 그렇게 믿지 않으면서 말이다. 목사님은 내게 매주 성도들의 집에서 열리는 소그룹 성경공부 모임에 참석하도록 격려해 주었다. 성도들의 도움으로 나는 면접을 보기 전에 기도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이 일자리가 저를 위한 곳이라면, 주님 제가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마 그 기도를 50번도 더 드렸을 거다. 하지만 여전히 일자리는 없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정리하던 아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냥 놔둬요. 내가 받겠소." 내가 말했다. 분명 딸애들 중 하나가 집까지 태워 달라고 학교에서 전화한 것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여보, 당신은 믿지 못할 거야!"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아내에게 소리쳤다. "면접한 지 1년도 넘었는데 지금까지 내 이력서를 갖고 있었다는군. 그런데 이제 와서 일자리에 대해 나와 이야기하고 싶다는 거요."
"아마 이번에는 틀림없을 거예요."
'또 시작이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면접이 있던 날 오후, 기차가 그랜드 센트럴 역으로 들어서는 순간, 평소에 하던 기도가 생각났다. '사랑하는 하나님, 제가 이 일자리를 갖기 원하신다면....' 그리고 나서 그 기도 끝에 말을 덧붙였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주시옵소서.'
그 면접은 시작부터 여느 때와는 달랐다. 처음에 항상 있기 마련인 간단한 대화나 질문 대신, 그 회사의 국제 부문의 문제를 놓고 해결책을 찾으면서 두 시간 동안이나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벌써 팀의 일원이나 직원이 된 것 같았다.
기차역에서 아내가 물었다. "어땠어요?" 난 흥분해서 소리쳤다. "이제야 일자리를 찾은 것 같소." 그리고는 감정을 가라앉히려고 애를 썼다. 다음날 아침 인사부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회사에 대해 당신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군요." 인사부장은 재차 면접 약속을 하면서 말했다. 정말인지 내 귀가 의심스러웠다.
그 날 밤은 뒤척이느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오, 하나님. 진정으로 간구합니다. 아내가 말한 대로의 하나님이시라면 제게 보여 주소서.'
두 번째 면접은 부드럽게 진행됐다. 면접을 마친 후, 나는 칼날처럼 매서운 바람을 피해 옷깃을 세우고 고개를 숙인 채로 먼지 낀 눈 더미와 진창 웅덩이를 피해 길을 걸어갔다. 도로를 건너려는데 진흙과 모래와 쓰레기로 범벅이 된 하수구 더미 위로 삐죽 나온 어떤 물체가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몸을 굽혀 그것을 집었다. 시계였다. 그것도 그냥 시계가 아닌, 바로 스위스제 군용 시계였다.
눈을 털어 내니 유리판이 흠 없이 아주 깨끗한 시계였다. 바늘같이 가는 초침이 박자에 맞춰 멋진 시계판 위를 돌아가고 있었다. 누가 잃어버린 건 아닌지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야, 나는 그 시계가 오랫동안 거기 버려져 있었음을 알았다. 시계를 주머니에 집어넣으려다 나는 주변의 얼어붙은 눈 더미처럼 꼼짝 않고 섰다.
'감사합니다. 주님.' 나는 기도를 드렸다.
이틀 후에 그 회사로부터 일자리 제의가 들어왔다. 하지만 그 매섭도록 추웠던 1월의 어느 오후, 나는 직장보다도 시계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며, 나를 알고 계시며, 내 삶의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돌보고 계신다는 개인적인 확신을 찾게 된 것이다.
- <가이드포스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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