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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에게 베푼 친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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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들이 울어대던 1965년 9월의 무더운 어느 날 오후, 나는 91세된 할아버지 집 현관의 삐그덕거리는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베트남 전선으로 떠나기 전에 작별 인사를 하려고 갔던 것이다. 스물 네 살이었던 나는 특전단 소속 유격대원 계급장에 반짝반짝하게 윤이 나는 구두가 자랑스러우면서도, 앞으로 닥쳐올 일들에 대해 여전히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보병 소대장들의 치열한 소모전 현황에 대해 이미 들었던 터였다.
할아버지는 두 눈을 반짝이면서 흔들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자리에 섰다. 우리는 잠시 이야기를 한 후 작별인사를 나눴다. 가슴 아픈 순간이었다.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막 떠나려는데 수년을 제지소에서 일하느라 뼈만 앙상히 남은 손으로 할아버지가 내 팔뚝을 잡으며 말했다. "빌, 네 적군들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라. 하나님께서는 너를 사랑하시는 만큼 그들도 사랑하고 계시단다."
할아버지의 그 말씀이 내 마음에 실제로 다가온 것은, 베트남 정글의 모두가 서서히 지치기 시작하던 11월경이었다. 나는 제1공군 캘버리 사단 소속으로 소총소대를 지휘하는 공수특전부대 장교였다. 우리들은 증오심이 치밀어 오를 정도로 교묘하고 무자비한 적들과 싸우고 있었다. 완전무장을 한 집요한 베트콩들이 정글 속을 헤집고 다니면서, 전혀 예기치 못한 때에 공격을 가해 아군에 치명적인 피해를 끼치곤 했다.
그 해 11월 어느 날 밤, 우리는 라트랑이라는 캄보디아 국경 계곡근처의 서쪽 산악지역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헬리곱터 조종사의 착각으로 잘못된 지점에 투하되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적진 바로 후미에 투입된 후였다.
새벽 두 시경, 속삭이듯 도움을 청하는 음성이 무전기를 타고 들려왔다. 우리 소대의 지휘장교 폴 모블리였다. 그는 무전병과 두 명의 베트콩 포로와 함께 길을 잃고 어딘가를 헤매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는 그에게 우리의 신호에 맞춰 신호탄을 쏘아 올리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그들이 있는 곳에 도달할 때까지 주기적으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곧 우리는 시냇물이 말라버려 날카로운 바위들만 들쑥날쑥하게 나와 있는 강 지류 바닥에서 그와 포로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시내를 따라 걸어 내려오면서 모두 탈진한 상태였다. 특히 맨발의 포로 한 명은 상태가 더욱 심각했다. 나는 손전등으로 그의 발을 비춰보았다. 두발이 피투성이로 엉망이었다. 그는 꿋꿋하게 참고 있었지만 솔직히 우리 부대까지 그렇게 걸어가기는 무척 어려워 보였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이미 많은 전우들이 베트콩의 손에 죽는 것을 보아 왔다. 총 한 방이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할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다. "하나님께서는 너를 사랑하시는 만큼 그들도 똑같이 사랑하고 계시단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그를 부축해 등에 업고는 걷기 시작했다. 한손에는 M16 소총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그를 받쳤다. 그에게서 베트남 음식 특유의 생선 소스 냄새가 코를 찔렀다. 험한 지류 바닥을 따라 걷다가 울창한 정글 쪽으로 올라가 그 사이를 통과하려면 몇 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피곤했다.
터벅터벅 길을 걷고 있는데, 등 뒤에 업힌 남자의 흐느끼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나는 못들은 척 했다. 이윽고 그의 흐느낌이 울음으로 바뀌었다. 무심코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의 표시로 그의 몸을 살짝 눌러 주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이번에는 그가 내 목덜미에 입을 맞추는 것이 아닌가. 너무 당황한 나머지, 나는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마침내 우리는 3km이상을 걸어 부대에 도착했다. 나는 완전히 탈진한 상태였다. 그러나 내가 베푼 작은 친절이 부대 내에 알려졌다. 다른 병사들도 포로의 상태를 보고는 가슴 아파했으며, 의료진도 다른 일을 젖혀 놓고 달려와 상처가 감염되지 않도록 항생제가 든 연고를 발라주었다. 나는 내 배낭을 반으로 잘라 그에게 임시변통으로 신발을 만들어 주었다.
심문하기 위해 그를 사단본부에 인도한 후, 그를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얼마 후, 그가 심하게 적대감을 표시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사실 포로들에게는 자연스런 현상이었지만 말이다. 그는 자신을 업어다준 "키 큰 친구"외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노라고 했다.
그를 다시 만났을 때 나는 어떻게 문제를 풀어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의 얼굴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우선 나는 통역관을 통해 그에게 베트남 지도를 보여주면서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다. 그는 주저하며 북쪽의 작은 마을 가리켰다. 그래서 나도 바닥에다 미국지도를 대충 그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위스콘신 주 쪽을 가리키고는 나를 가리켰다. 드디어 그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우리는 통역관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모든 병사들에게 있어서 고향이란 적이냐 동지냐를 떠나 가장 공통되고 친근한 대화의 소재이리라.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그가 아주 서열이 높은 특무상사라는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당시 베트콩 중에서 특무상사급은 몇 명 되지 않았고, 포로 중에는 더욱 드물었다.
그 후 나는 그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나처럼 살아서 고향의 가족 품으로 돌아갔기를 바란다. 나는 베트남에서 많은 경험을 했다. 네 번이나 심한 부상을 입었고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요즘도 복합 후유증을 앓고 있지만, 그러나 나는 행복하면서도 보람찬 삶을 살고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내게 작별인사를 할 때 들려주셨던 할아버지의 말씀 덕분이다. 그 말씀은 내가 삶을 살아가는데 늘 희망과 용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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