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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의 얼굴들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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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무역센터가 화염에 휩싸이던
그날, 공포에 휩싸여 연기가
자욱한 계단을 내려가던
존 드비토는 그들 모두를
지켜 주는 힘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았다
상쾌한 9월의 아침 7시 40분경, 나는 세계무역센터 1관 87층에 있는 사무실 문을 열었다.
우리 집은 이곳에서 북쪽으로 65km나 떨어져 있는 외곽 지역 웨스트체스터 카운티에 있기
때문에, 출근을 위해 새벽 5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하지만 나는 숨가쁜 증시가 열리기 전의
그 고요함이 좋았다.
사무실에 홀로 있노라면 거대한 건물에서 울리는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제철업 분야의
사람들은 강철도 노래한다는 사실을 안다. 이탈리아 출신의 부모를 둔 내겐 거대한 철골
구조의 한숨 소리는 오페라의 선율 그 자체였다.
물론 45년 인생의 절반이 넘도록 일해 온 이곳 월 스트리트 지역은 나부터 살고 봐야 하는
치열한 경쟁의 세계였다. 그러나 나는 커다란 커피 잔을 들고 내가 좋아하는 장소인 펄튼
가가 보이는 창 앞에 서서 그 아름다운 광경에 잠시 심취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자유의
여신상, 햇살에 반짝이는 허드슨 강. 이곳은 내 고향이었다. 여기 서 있노라면 내가 자라난
곳, 또 여전히 부모님이 살고 있는 브루클린의 지붕들을 내려다볼 수 있다. 대학에 진학할
때도 다른 곳으로는 가고 싶지 않아 이곳 중심가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뉴욕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
메이 데이비스 사의 우리 팀원들이 속속 출근하기 시작했다. 우리 회사는 창업 회사들에게
자금을 조달해 주는 작은 규모의 금융투자회사였다. “안녕하세요, 해리.” 나는 친구이자
우리 수석 거래원인 해리 라모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애덤, 홍, 도미니크,
제이슨.” 우리 팀은 모두 열네 명으로 남자 열 명과 여자 네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무실 안이 웅성거리며 바빠지기 시작하자, 나는 이메일을 확인하고 책상 위 서류들을
대충 훑어본 뒤 전화기에 손을 댔다.
그때 갑자기 사무실이 오른쪽으로 기울어졌다. 나는 의자에서 거의 떨어질 뻔했고, 다시
사무실이 왼쪽으로 세게 흔들리자 책상을 꼭 붙들었다. 지진인가? 천장 타일이 책상 위로
와르르 부서져 내렸다. 전등이 흔들리고 전선에 불꽃이 튀었다. “폭탄이다!” 누군가
소리쳤다. 우리는 그 순간 아연실색하여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내가 가서 알아볼게!”
나는 복도로 뛰어나갔다.
연기가 자욱했다. 사람들이 사무실 문간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나는 뿌연 연기 속을
뚫고 더듬더듬 걸어서 엘리베이터를 지나, 복도를 따라 내려가다가 그만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복도의 나머지 부분이 사라지고 없었다. 사무실 문들이 줄지어 있던 그곳에는
불길과 뒤틀린 철골로 가득한 지옥이 내려다보였다.
불붙은 파편들이 주위에 폭포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깨진 벽 조각을 움켜
잡고는 화염을 향해 내던졌다. 다음 순간 제정신이 들었다. 정신없이 사무실로 달려와
보니, 다른 사람들은 파일 챙기고 대형 데스크톱 컴퓨터를 꾸리는 등 부질없는 일들을
하고 있었다. 내가 서서 커피를 홀짝이던 창문 바깥으로 종이며 금속 덩어리 따위가 떨
어져 내리고 있었다.
천장에서는 흙먼지와 연기가 새어나왔다. 나는 부장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 줘
야 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하지? 어디로 대피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교인
이었지만 공포와 걷잡을 수 없는 혼돈의 그 순간, 하나님은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남아서 회사 재산을 지키는 것이 내 의무일까? 이상하리만큼 정신이 멍해져서 이 엄청난
상황을 좀처럼 실감할 수가 없었다.
애덤 메이블럼은 침착함을 유지한 채 자기 셔츠를 길게 찢어 안면 마스크로 사용하도록
나눠 주고 있었다. 나도 문득 정신이 들었다. ‘우리 팀 사람들을 건물 밖으로 내보내야
해.’ 책상으로 달려가 아내 마릴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사랑해! 딸애들한테도
사랑한다고 전해 줘!”
나는 2ℓ들이 물병을 집어 들고 사람들에게 임시 마스크를 적시도록 했다. 일부는 아직도
갈팡질팡하는 듯 했다. “조앤! 샘! 다들 나갑시다! 물건은 전부 놓고 나가요!”복도엔
연기가 점점 짙어져 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안 됩니다!” 내가 소리쳤다. 젖은 천
조각으로 코를 막으며 나는 앞장섰다. 오른쪽으로... 다시 왼쪽으로... 비상구 표시가
어디 있었지? 수천 번도 더 지나다녔지만 비상구를 거의 본 적이 없었다. 하기야 누가
87층에서 계단을 사용하겠는가? 복도가 끊어져 깊게 갈라진 틈에 거의 다 와서야 어둠
저편으로 빨갛게 반짝이는 비상구 표시가 보였다. 복도가 몇 미터만 우리쪽 가까이에서
끊어졌어도 비상구는 없었을 것이다.
계단은 매캐한 연기와 대피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좁혀서... 밀착해서... 한 줄로 가야
한다. “내 어깨에 손을 얹어요.” 나는 제이슨에게 말했다. “다들 앞사람 몸을 꼭 잡아요.”
우리 열네 명은 그렇게 사슬을 만들어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86층... 85층...
비행기가 건물을 들이받았다는 얘기가 들려 왔다. 이해가 안 가는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바로 그곳에서 하루의 일상이 산산조각 난 채 연기와 씨름하고 있었다.
78층에서 갑자기 계단이 끝나 버렸다. 78층은 계단 위치가 바뀌는 층으로, 엘리베이터
주변의 트인 공간 반대편 어딘가에서 계단이 계속될 것이었다. 우리는 아수라장의 한복판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비상구를 찾아 숨막히는 흙먼지 속으로 마구
몰려들었다. 천장의 전선이 밖으로 드러나 사람들 위로 불꽃 세례를 퍼부었다. 바닥을
따라 조그만 불길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 울부짖는 소리, 기도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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