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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의 얼굴들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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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잡한 틈에서 이리저리 밀고 밀리다 우리 팀원들의 인간사슬이 끊어지고 말았다. 계단에
도달했을 때는 해리와 홍, 그리고 다른 사람을 놓친 상태였다. “먼저들 가요! 내가 남아서
그 사람들을 찾아볼게요.” 나는 나머지 사람들에게 말했다. 제이슨이 내 팔을 잡아끌었다.
“존! 어리석은 짓 하지 마. 이 건물은 지금 불타고 있어! 부인과 딸들을 생각해 보라고!”
어쩌면 다른 멤버들은 우리보다 앞서 갔는지도 모른다. 혹시 다른 계단을 찾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나아갔다. 73층… 72층. 한 층씩 내려갈 때마다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서 속도가 더뎌졌다. 심한 화상을 입은 여자가 내 곁을 지나 실려 나가자 나는 내 안에
엄습하는 공포와 싸워야만 했다. 도대체 하나님은 이 두려움 속 어디에 계시단 말인가.
30개 층을 내려오니 다리가 지쳐 후들거렸다. 나는 멈춰서 2ℓ들이 물병을 돌렸다. 54층...
53층... 30분이 지나도록 겨우 여기밖에 못 오다니! 아직도 50층이 더 남았다. 자동 스프링
클러에서 뿜어져 나온 물이 흘러내려 계단이 미끄러웠다. 사람들은 비틀거리며 넘어졌고,
다른 이들이 그들을 일으켜 세워 주었다. 이제 우리 사무실 사람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46층... 43층... 41층...
내가 그를 본 것은 바로 그때였다. 소방관 한 명이 등에 무거운 장비를 매고 땀을 비 오듯
쏟으며 힘겹게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는 바로 내 밑에 멈춰 서서 헬멧을 벗었다. 짧게
자른 금발, 반짝이는 파란 눈으로 보아 아일랜드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고된 작업 덕분에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긴 했지만, 그가 어떤 빛을 발하는 것을 느꼈다. 왠지 그를 알아야만
할 것 같았다.
“물 좀 드세요.” 내가 반쯤 남은 물병을 내밀며 말을 걸었다. 그 푸른 눈이 나를 응시했다.
“전 괜찮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주십시오.” 그가 말했다. 그는 다시 헬멧을 쓰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고, 나는 계속 내려갔다. 38층… 36층. ‘다른 사람에게 주십시오.’ 순간 난
그 방수복을 입고 있던 소방관의 얼굴이 누구였는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예수님의 얼굴이었다.
35층… 34층. 지금껏 눈여겨보지 않았던 무언가가 새삼스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로 가득찬 그 계단에서, 남을 밀치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불타는
건물의 좁은 계단에 함께 끼여 있으면서도 동작이 느린 사람을 밀치고 앞으로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내가 계속해서 목격한 것은 정반대의 것이었다! 장애인들에게는 먼저
길을 내주고, 남자는 여자에게, 젊은이는 노인에게 순서를 양보했다. 화상 입은 사람과 부상
자들이 부축되어 지나갈 때면, 모두들 벽 쪽으로 바짝 붙어 서서 격려의 말을 건네며 기다렸다.
소방관들이 올라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29층… 28층. 나는 보았다. 병약한 할머니를 팔로 감싸 안은 젊은 동양 여성을. 그녀의 눈을
통해 보이는 분은 분명 예수님이었다! 또 나에게 먼저 가라고 손짓하는 파키스탄 남자의 눈
에서도 그분을 보았다. 하나님이 멀리 있다고? 하나님은 바로 여기 계셨다. 그 혼잡한 계단
주변 모든 곳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손을 내미는 곳마다.
다시 한 번 물병이 내게 돌아왔다. 모두들 다급한데도 저마다 한 모금씩만 마시거나 손수건에
한 방울씩만 적셨다. ‘다른 사람에게 주십시오.’ 내 주변 어디에나 모두 예수님의 얼굴이
있었다. 나부터 살고 봐야 하는 치열한 경쟁의 시대에서 서로 챙겨 주고 베풀고 나눠 주는
사람들 속에.
14층 계단에 지친 소방관 세 명이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물병을 건네주었다. 10층... 7층...
그리고 마침내 나는 바깥에 나와 있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오려는 순간 요란한 사이렌 소리에
몸이 오싹해졌다. 사방에 소방차와 앰뷸런스가 널려 있었다. 경찰들이 소리쳤다. “뛰어요!
계속 뛰어요! 위를 쳐다보지 마세요!” 물론 사람들은 그 말과 함께 위를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검은 연기 기둥이 건물 위쪽에서 길게 피어올랐다. 아니… 양쪽 건물이 다 그랬다!
쌍둥이 건물 2관도 불이 붙었단 말인가? 비행기 ‘두 대’가 건물을 들이받았다는 소리가
들려 왔다. 두 대가? 그렇다면 그것은...
누군가 내 이름을 크게 불렀다. 다음 순간 나는 우리 팀 사람 세 명을 얼싸안고 있었다!
“여기서 피해요!” 경찰관 한 명이 우리에게 소리쳤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나는
있을 수 없는 장면을 보았다. 쌍둥이 빌딩 2관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거대한 건물이
통째로 굉음과 함께 가라앉고 있었다.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에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나는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뜨거운 검은 연기가 더 빨리 덮쳐 왔다. 몇 초만에 나는 숨막히는
열기와 흙먼지에 휩싸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비틀거리며 걸었다. 무너지고 있는 거대한
건물 쪽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앞을 향해 똑바로 달리고 있기만을 기도할 뿐이었다. 주변에는
온통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뛰고 있었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평생 상상도 못했던
어둠이었다. 살아 숨쉬고 있는 음흉한 어둠이었다.
불현듯 그 검은 구름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조금 전 나는 예수님의 얼굴을 보았고, 이제 악한
어둠의 세력에 맞닥뜨린 것이었다. 예수님이 사랑이라면 이것은 증오였다. 걸려 넘어지고
숨이 막혀 헐떡이며 나는 이것이 고의적인 파괴였음을 깨달았다. 증오는 언제나 이러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칠흑 같은 연기를 흩어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하도록
우리의 눈을 가리는 것이다.
눈을 가늘게 뜨고 앞쪽의 불빛을 보았다. 숨막히는 지독한 연기가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나는 어느 레코드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가 맑고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누군가 내게
물을 건네주며 앉으라고 했다. 그러나 아내와 부모님께 전화를 한 뒤 나는 계속 걸어야 했다.
북쪽을 향해... 저 정체불명의 어두움을 피해 어디로든. 차이나타운. 빌리지. 워싱턴 스퀘어
공원. 사람들을 바라보며, 예수님을 바라보며 계속 걸었다.
그리고 교회를 찾아갔다. 앞으로 내 인생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그분께 고백할 수 있는
곳이면 어떤 교회든. 나는 언제나 그분을 믿었다. 그리고 이제 그분을 본 것이다. 나는 어느
가게의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도 보았다. 내가 다가섰을 때 왜 몇몇 사람들이 뒷걸음질쳤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재를 뒤집어쓰고 음산한 유령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나에게 달려온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다가와서 내 손을 잡고 끌어안아 주었다.
어쩌다 뉴욕 대학교 캠퍼스 근처까지 갔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처음
으로 울음을 터뜨렸다.
아내는 나에게 도시를 빠져나가려 하는 사람들 틈새에서 애쓰지 말라면서, 르로이 가에 사는
아내의 사촌들이 나를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교회에서 그곳까지 걸어갔다. 페라조
일가는 갈색의 벽돌 건물 계단 밑까지 달려 내려와 나를 반겨 주었다. 그들은 내게 샤워를
하고 어떻게든 누워 쉬도록 하려고 애썼지만, 나는 안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벽과
천장이 있는 곳이 답답해 견딜 수 없었다. 오후 내내 나는 바깥의 현관 입구에 앉아 있었다.
밝고 푸른 하늘 아래 앉아 도시 남부를 뒤덮고 있는 거대한 연기를 뒤로 한 채.
쌍둥이 빌딩 1관도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여러 사람의 얼굴이 내 앞에 떠올랐다.
다른 사람에게 물을 주라던 그 푸른 눈의 소방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서서 사람들에게
피하라고 말해 준 그 경찰관... 그리고 해리 라모스의 얼굴. 나는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우리 팀의 나머지 멤버들 전원을 수소문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그 날렵하고 건강한 해리가
36층에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 이상 걷지 못하는 뚱뚱한 사람을 돕기 위해서.
바비 페라조는 이웃들에게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여기 내 사촌이 그곳에 있었어요!
쌍둥이 빌딩 1관에 말이에요!”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유타 주에서 온 관광객 부부는
나를 껴안아 주었다. 또 어느 푸에르토리코 여자는 내게 “하나님이 함께 하셨군요.”라고
말했다. 물론 예수님은 함께 하셨다. 거기에 있던 모두가 예수님이었으니까. 불타는 건물
안에서. 뉴욕의 거리에서. 어둠이 우리를 삼키려 위협하는 곳마다. 사람들의 얼굴에 사랑이
빛나는 곳마다.
- <가이드 포스트> 1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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