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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버리는 게 아니잖아요
 
 
(정애리 지음/랜덤하우스중앙/256쪽/9,800원)

"근처에 적당한 집 좀 알아봐주세요. 아파트는 아니었으면 좋겠고, 마당 있는 집이었으면 해요. 너무 클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옹졸한 집도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고 집 근처의 부동산 중개소를 찾아갔을 때 아저씨는 좀 의아한 얼굴이었다. 10년이 훌쩍 넘도록 흑석동에서 한자리를 지키며 살고 있던 내가 느닷없이 새 가족이며 전셋집 같은 이야기를 꺼내고 있으니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몇 날 며칠, 몇 군데의 집을 살피다 만난 그곳은 내 마음에 꼭 드는 공간이었다. 작지만 꽃을 키울 수 있는 마당이 있고, 전망이 좋아서 저만치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집. 너무 높은 언덕이라 이런 꼭대기까지 할머니와 아이들이 올라다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마음 한 켠에 불편하게 걸려 있었지만, 언덕 위의 집이라 햇볕이 하루 종일 깊숙하다는 말을 듣고 그 걱정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거실에도, 부엌에도, 방들에도 창을 타고 넘은 햇살이 마치 씻어놓은 듯 환했다. 햇볕 한 자락이 주는 이상한 위안. 그간 너무 어둡게 웅크리고 살았을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이렇게 환한 집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새처럼 날 듯이 걸어서 그 긴 언덕길을 단숨에 내려왔다. 그 집은 이제 곧 내 가족이 될 사람들을 위한 곳이었다. 물론, 그 집 어딘가에는 내 자리도 있었다. 말 그대로 한 가족이 되어 함께 살아가게 될 테니까. '하래의 집', 나는 이 집을 그렇게 불렀다.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 그래서 하래의 집이었다. 하래의 집은 내 오랜 꿈이 담긴 공간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스물예닐곱쯤의 철든 어른이 되면서부터 '그룹 홈'에 대한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없는 사람들, 외로운 사람들, 울타리 없는 찬 세상 속의 이웃들을 또 하나의 가족으로 만들어 함께 살고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대단한 걸 꿈꾼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저, 누군가에게 쓰이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나를 위해서만 살다 가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손 한번 잡아주고 가는 인생이면 좋을 것 같다고 믿었다. 사람들은 내가 철이 없어 그러는 것이라고 했다. 피를 섞지 않은 사람들과 가족을 이룬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처럼 보이냐고, 세상을 몰라서 그러는 거라고. 하지만 가족들조차 철없음으로 치부해버리던 그룹 홈에 대한 희망은 서른 몇이 되어서도 여전했고, 결국 나는 뜻을 세운 지 15년이 지나서야 그 오랜 꿈을 이루게 된 셈이었다. 간절한 기도와 설득이 계속되면서 가족들은 결국 나의 편이 되어 손을 들어주었다. 단, 조건은 따로 사는 것이었다.

나의 사연을 알게 된 집주인이 시세보다 싼값에 집을 내주었다. 고마운 일이었다. 마음을 나눠 가질 상대가 생긴 것 같아 벌써 힘이 났다. 모두가 이렇게 해주면 된다. 대단한 무엇을 주거나 큰 것으로 도와야 한다는 생각은 어쩌면 사치일지도 모른다. 내가 가진 것을 아주 조금씩 떼어놓으면서, 줄 수 있는 만큼만 나누면서 이렇게 마음을 보태는 일, 이만하면 된 것이 아닌가.

나는 마치 신혼집을 차리던 그때처럼 설레었다. 낡은 집의 구조물을 조금씩 바꿔가며 살기 편한 곳으로 만들고 도배지를 고르고 하는 동안 마음은 온통 꽃밭이었다. 가구를 들이고, 세간을 준비하고, 커튼을 맞춰서 걸고, 마당의 흙을 일구며 꽃을 심는 일까지 하나하나 정성껏, 모두가 기뻐하는 집으로 꾸미고 싶어서 나는 꼭 철없는 계집아이처럼 한 걸음에 두서너 계단씩 성큼거리며 뛰어다녔다.

내심 반대하면서도 시작하려면 제대로 한번 해보라며 선뜻 TV를 사주었던 언니, 가스오븐레인지를 선물해준 혜경 작가, 그리고 기왕이면 그 집에 꼭 맞는 것으로 준비하라며 장롱을 사주었던 오빠까지. 몇 주일을 그렇게 공들이며 밥그릇에 숟가락까지, 냉장고 안에 먹을거리들까지 빼곡하게 채워 넣은 후에야 비로소 집이 집다운 모양새를 갖추었다. 나는 잠시, 가만히 앉아 집 안을 둘러보았다. 불을 켰을 때 따뜻한 불빛이 집 안을 가득 비춰주는 것을 보니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보일러를 올려 따뜻해진 방바닥이, 수도꼭지를 틀면 쏟아지는 더운물에도 마음이 부자가 되는 것 같았다.

우리 할머니들, 이젠 더 이상 찬 방에서 웅크리고 잠들지 않아도 되겠어. 숙녀가 되어가는 우리 은진이도 매일 샤워할 수 있겠구나. 저 부엌은 곧 맛있는 냄새로 채워지겠지... 모두가 웃는 모습을 하루빨리 보고 싶었다. 모두가 웃으면서 행복해지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다시 언덕길을 걸어 내려와 내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잠시의 생각으로 웃었다. 이제 나는 곧 두 집 살림을 하게 되겠구나 싶어서였다. 앞으로는 집으로 가는 두 갈래의 길에서 어느 곳부터 먼저 가야 할까 가늠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살고 있는 집과 하래의 집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손 내밀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 있는 '원조 가족'과 '새 가족'의 집. 그 두 갈래의 길에서 나는 매일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될 터였다.

- 『사람은 버리는 게 아니잖아요』 중에서
번호 | 제목 |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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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하나를 위한 모두, 그리고 모두를 위한 하나 2006년 0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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