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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선생의 해산 바가지
 
 
금년에 박 선생님은 우리 문학관에 바가지 두 개를 기증하셨다. 자전적 소설인 『해산 바가지』에 나오는 그 바가지다. 첫 딸의 것이라니 50년이 가까워 오는 큼지막한 바가지들…. 세월의 때가 갈색으로 착색되어 관록이 붙은 그것들은, 우리가 잊고 있던 옛날의 진국스러운 정감을 담고 있다. 질박하고, 무던하고, 풍성한 그 바가지를 앞에 놓고 나는 하루 종일 가슴이 뿌듯했다. 그 소설을 읽었을 때의 감동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는 인간의 탄생을 신탁처럼 경건하게 받아들이는 한 여인이 나온다.

내가 첫애를 봤을 때 시어머님은 해산달을 짚어보고 섣달이구나, 좋을 때다. 곧 해가 길어지면서 기저귀가 잘 마를 테니, 하시더니 그해 가을부터 일부러 사람을 시켜 시골에 가서 해산 바가지를 구해 오게 했다. “잘 생기고, 여물게 굳고, 정한 데서 자란 햇바가지여야 하네. 첫 손자 첫 국밥 지을 미역 빨고 쌀 씻을 소중한 바가지니까.” 이러면서 후한 값까지 미리 쳐주는 것이었다.

한해 전부터 정성을 들여 새 생명을 위한 그릇을 장만하는 그 행위는, 생명에 대한 외경심에서 나온다. 그렇게 받아들인 생명을 그 여인은 경건하게 기른다. “식모에게 절대로 기저귀를 빨리거나 아이를 업히는 법이 없다. 왜 내 천금같은 손자 똥을 남이 더러워하고 찡그리게 하느냐”며 손수 빠시고, 혹시 아이를 다쳐 놓고 속일까봐 당신이 직접 업어 기르신다.

박 선생님은 외아들에게 시집가서 연거푸 딸을 넷이나 낳고 나서 아들을 낳았지만, 그분은 태어나는 아이마다 해산 바가지를 성심껏 장만하여 받아들였고, 귀한 손님 모시듯 아끼고 사랑하며 기르셨다. 생명을 대접하는 가장 바람직한 자세를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그분이 일흔다섯이 되던 해에 불행이 닥쳐왔다. 고혈압으로 쓰러져 정신이 망가져버린 것이다. 망령이 난 시어머니는 종일 고장난 축음기처럼 같은 말을 되풀이하더니, 그 다음에는 아들 내외가 자는 방문에 구멍을 내서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밤중에 아들 방에 들어가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새로운 노망기까지 보이기 시작하는 어머니.

새록새록 재롱이 늘어가면서 성장하던 세월을 역행하여, 새록새록 망령의 가짓수가 늘어가는 치매환자와의 오랜 동거…. 그건 악몽의 연속이었다. 목욕을 시키려면 동네가 떠나가게 소리를 지르고, 옷을 갈아입지 않으려고 난동을 부리고…. 부부가 조용한 시간을 가지려면 호텔에라도 가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은 악화된다.

그런 세월이 길어지니 며느리는 노이로제에 걸려 신경안정제를 장복하다가 정신과 치료까지 받게 된다. 며느리가 몸져눕고 집안이 엉망이 되어 가자, 시어머니의 친정 식구들이 나서서 양로원과 정신과 치료를 겸하는 수용기관을 찾아서 맡기라고 권한다.

이 소설의 종결부는 남편이 수소문해서 알아본 노인수용기관을 부부가 함께 답사하러 가는 데서 시작된다. 그 내외는 덥지도 않은데 공연히 진땀을 뻘뻘 흘리며 시골길을 걸어간다. 그러다가 갈증이 나서 구멍가게의 좌판에 주저앉는다. 거기에서 음료수를 마시다가 며느리는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초가지붕 위에 “방금 떠오른 보름달처럼 풍만하고 잘생긴 박이 서너 덩이 의젓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여보, 저 박 좀 봐요. 해산 바가지 했으면 좋겠네.”

그 말을 하는 순간에 며느리는 “실로 오래간만에 기쁨과 평화와 삶에 대한 믿음이 샘물처럼 괴여오는 걸” 느꼈다. ‘해산 바가지’라는 단어 때문이다. 그것은 잊고 있던 시어머니의 경건한 생명관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생명을 보내드릴 때의 올바른 법도도 깨우쳐 준다. 그렇게 정성을 다하여 새 생명을 맞아들이던, 아름다운 정신이 깃들었던 육체를 “비록 지금은 빈 그릇이 되었다 해도 사이비 기도원 같은 곳에” 맡겨 낯선 사람에게서 “수모와 학대를 당하게 할 수는 없다”는 각오가 선 것이다.

그 대신에 자신도 스트레스를 덜 받게 간호하는 방법을 바꾸기로 한다. 말을 안 들으면 야단도 치고, 씻지 않겠다고 떼를 쓰면 볼기도 이따금 때리면서, 며느리의 도리에 대한 고정관념을 떨쳐버린다. 그리고 3년간 더 시어머니를 집에서 모신다. 자식들 옆에서 평화로운 얼굴로 임종을 맞게 하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새 생명을 맞아들이던 옛 어른의 경건한 자세를 통하여, 늙고 망가진 생명을 보내드리는 자녀의 바람직한 도리를 환기시키고 있는데, 그 두 가지를 이어 주는 사물이 바로 ‘해산 바가지’다. 그것은 주제를 구현하는 상징적인 사물이다.


- 『어느 고양이의 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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