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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기념비 앞에서의 만남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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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 앉아 텔레비전 소리를 낮춰 놓고 책을 읽고 있었다. 1996년 푸근하고 상쾌한 6월의
어느 저녁, 모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 텔레비전 화면에 한 장의 사진이 휙 지나갔다. 수년 동안 나를 따라다니던 바로 그 사진!
아무리 자주 그 사진을 봐도, 볼 때마다 고통스런 기억이 되살아났다. 어떻게 내가 용서받을
수 있을까? 내가 저질렀던 그 일에 대해 차마 어떻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사진기 쪽으로
달려오던 한 베트남 소녀. 끔찍한 네이팜탄(彈)에 화상을 입고 두 팔을 벌린 채, 미친 듯이
소리치며 달려오던 그 어린 소녀. 퓰리처상을 수상한 이 사진 한 장은 수백만 명의 가슴을
울렸지만, 내게는 특별히 너무도 쓰라린 아픔일 뿐이다. 그 소녀의 고통에 대한 책임이 바로
내게 있었기에 말이다.
몸을 앞으로 숙여 텔레비전 소리를 높였다. 기자는 '판 티 킴 푹'이란 그 소녀가 지금은
결혼해 토론토에서 살고 있다고 밝혔다. '살아 있었구나!' 너무도 감사했다.
내 생각은 이내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당시, 나는 베트남에 주둔해 있던 미 육군 대
위였다. 제3지역 지원 사령부(TRAC)의 G3 공군 참모부에 배속돼 있던 나는, 지상군에 제트
전투기 지원을 계획하고 조정하는 일을 맡아 B-52 공습 목표 지점을 정했다. 어떤 부대가
곤경에 처했을 때 그 부대를 위해 신속하게 공습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내 임무였다.
그해 봄, 지휘 엄폐호 안에서 나는 트랑방 시를 점령하려는 남부 베트남(월남) 군부대에 소속
된 미 고문관과 무선으로 교신하고 있었다. "즉각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고문관이 짤막하게
말했다. 베트콩(월맹군)이 부근에 참호를 파고 주둔해 있었다. 그는 내게 목표 지점의 좌표를
알려 주었다. 지도를 검토해 보고 난 후 나는 당황했다. "이 지점은 마을의 외곽이다! 우방인
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우방인이란 우리 연합군들이 민간인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었다.
"우방인은 없다. 모두 마을에서 빠져나갔다. 완전히 피난시켰다."
참호 속에 들어가 숨어있는 적에게는 네이팜탄과 고성능 폭탄이 가장 적절하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목표 지점이 아군과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가장 정확한 공격 수단이 필요
했다. 나는 A-37, A-1E 공격기를 갖춘 남부 베트남 공습 부대의 소재를 파악했다. 그러나 여전히
걱정스러웠다.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해 그 지역 사령부에 확인했다. "그 곳 우방인의 상황은 어떤
가?" "마을 사람들은 모두 떠났다."
나는 무선으로 승인을 알렸고 약 5분 후에 고문관으로부터 보고가 왔다. "폭탄이 목표 지점에
정확히 투하됐다. 아군 지상 부대가 진입 중이다."
'늘 하는 일인 걸 뭐.' 그렇게 생각했다. 이런 임무를 수십 번도 더 수행하지 않았던가.
3일 후, 부대 식당 안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입구에 쌓아 둔 미군 신문 '스타즈 엔 스트라입
스(성조기) 한 부를 집어들었다. 음식을 받아 들고 앉아서 커피를 마시려 잔을 들고는 신문
을 폈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진 한 장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화염 속에서 뛰
쳐나와 달리는 아홉 살 짜리 소녀. 사진에 딸린 기사를 읽어보니 그 소녀는 트랑방 마을에
떨어진 공습 때문에 화상을 입었다는 보도였다. 바로 내가 명령했던 그 공습 때문에! 손이
떨려 그만 커피를 식탁 위에 엎질렀다. 잠시 동안 거의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식탁에 같이
앉아 있던 전우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내가 투입한 공습이야...."
내가 베트남에서 그 사건에 대해 언급한 적은 단 한 번 그때뿐이었다. 아무도 그 일에 대해
내게 묻지 않았고 나는 그 일을 기억에서 없애 버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 죄책감, 내 영혼
을 부숴 버릴 것 같은 끔찍스런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교회에
나가지 않은 지가 오래 되었기 때문에 군목을 만나 보지도 않았다.
본국으로 돌아와 보니 잡지, 신문, 텔레비전 등 온 천지에 그 사진이 널려 있었다. 도무지
그 사진을 피할 길이 없었다. 1974년 초에 제대한 후, 나는 절망감에 빠져 불행한 하루하루
를 보냈다. 고통스런 기억을 지워 버리려고 술을 마셔댔다. 두 번의 결혼은 모두 이혼으로
끝이 났고, 정서적인 장애가 생긴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 자신을 열어 놓을 수가 없었다.
그후, 어느 송년회에서 나는 조안을 소개 받아 만났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조안과 함께
나는 어린 시절 내가 다녔던 노스 캐롤라이나 주 호크 카운티에 있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
고, 우리는 그 교회에서 결혼했다. 나는 아내를 사랑했지만, 내가 눈을 돌릴 겨를도 없이 아
내는 그녀 특유의 열린 마음과 관대함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아내는 종종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언제나 누군가를 위해 봉사했다. 그런 힘과 사랑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나는
궁금했다.
1980년대 후반에 나는 큰 방위 산업체의 임원이 되었고, 우리는 버지니아 주 북부로 이사했
는데, 비엔나 시에서 한 교회를 발견했다. 그 교회 교인들은 정말 신앙에 따라 생활하는 사
람들이었다. 어느 주말 수련회에서 나는 드디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삶으로부터 내가 얼마
나 멀리 떨어져 살았던가를 깨닫고 눈물을 펑펑 흘렸다. 1990년 11월, 나는 내 삶을 그리스
도께 온전히 맡겼고, 생전 처음으로 하나님의 은총이 어떤 것인지 진정으로 깨달았다. 나는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 어린 소녀가 겪은 일에 대해 느끼는 심한 후회
와 고통은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나는 신앙이 점점 깊어지면서 주님께서 나를 목회자로
부르심을 느꼈다. 아내의 도움으로 나는 신학교에 진학했고, 마침내 '베다니 연합 감리 교회
'의 목사가 되어 퍼셀빌로 왔다.
그 날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던 그 사진을 다시 보게 된 곳도 바로 퍼셀빌에 있는 집의 거실
이었다. 베트남을 떠난 후 처음으로 그 소녀에 관한 소식을 들은 것이었다. 킴 푹은 화상 치료
를 받고 회복된 후, 그녀가 원치 않았음에도 공산당에 의해 선전 도구로 이용되었었다. 그러다
가 약학을 공부하라고 쿠바로 보내졌고, 거기서 한 베트남 학생과 사랑하게 됐다. 결혼해 부
부가 된 두 사람은 모스크바로 신혼여행을 가야 했는데,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가
뉴파운드랜드에서 연료를 재공급 받는 동안, 정치적 망명을 요청했다. 그렇게 해서 현재 그
들은 어린 아들과 함께 토론토에 살고 있었다.
가슴이 북받쳐 올랐다. 너무도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겁이 났다. 그녀가 자신에게
고통을 준 사람을 만나 보고 싶어하리라고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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