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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약돌과 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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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번창일로에 있는 버지니아 주, 리치몬드에 새로 가게를 열었는데, 주변이 아직은 약간
살벌한 동네였다. 물론 이 지역으로 최신 유행의 옷가게들, 커피점과 음식점들이 속속 들어
오고 있었지만, 여전히 뒷골목은 다 쓰러져 가는 집들과 더러운 공터로 황폐한 그대로였다.
나는 주로 혼자 가게 뒤쪽에서 손으로 염색한 실크옷을 재봉질하고 있었는데, 길거리에서
누군가 불쑥 들어올까봐 늘 걱정스러웠다. 처음에는 모든 일이 순조로왔다. '누에'라고 이름
붙인 내 가게는 여피(1940년대말∼50년대 전반에 출생한 베이붐 붐 후반 세대로 대도시의
화이트 칼라 계층이나 엘리트층을 일컫는 말이다; 편집자 주)들, 우아한 부인들 그리고
코걸이를 하고 머리를 울긋불긋하게 물들인 십대들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마음이 좀 편안해 질 즈음이 되자 이번엔 물건을 훔쳐가는 지각없는 사람들과 맞서야
했다. 그래서 항상 감시를 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경찰서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침입자가 가게의 앞유리창을 부숴 버렸다는 소식이었다. 내가 가입한 보험으로는 깨진 유리나
도둑 맞은 드레스에 대한 손해 비용을 보상받을 수가 없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특히 근처에 사는 소년들을 눈여겨보았다. 열 살, 열한 살 정도 되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매일 오후 바로 우리 가게 앞에서 버스를 내렸다. 아이들은 나를 놀라게
하려고 새 유리창에 작은 돌멩이들을 던졌다. 내가 가게 앞쪽으로 뛰어 나가면 이미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다.
하루는 그 아이들을 꼭 잡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문 옆에 숨어 기다렸다. 학교버스가 멈춰
서자 소년들이 버스에서 내렸고, 몇몇 아이들의 손이 벌써 돌멩이를 주으려고 도랑을 더듬고
있었다. 작은 돌멩이들이 날아와 창문에 부딪치자마자, 나는 단숨에 달려가 골목 모퉁이까지
그 버릇없는 아이들을 쫓아갔다. 하지만 놀랍게도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아주 부드러운 말투였다.
"잠깐만, 너희들과 얘기를 하려는 거야. 너희들 혹시 일자리 갖고 싶지 않니?"
"무슨 일을 하는 건데요?" 가장 키가 큰 소년이 물었다.
"우리 가게 일을 도와 줄 사람을 몇 명 쓰려고 하는데," 나는 즉석에서 생각이 나는 대로 말을
이었다. "허드렛일들이 많단다. 예를 들어 쓰레기통을 비운다든지, 거울을 닦는다든지, 아니면
경비를 선다든지 하는 일 말이야. 물론 급여를 지불할 거야. 관심 있는 사람 있니?"
다섯 명의 손이 하늘을 향해 높이 올라갔다.
"그러면 안으로 들어가자꾸나. 내가 너희들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 놓으마."
나중에야 나는 그 당시 나를 사로잡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했다. 아이들에게 임금을
넉넉히 줄만큼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또 나 자신을 비뚤어진 청소년들을 선도하는 개
혁운동가로 생각한 적도 없었다. '어쨌든 이렇게라도 하니까 저 소년들의 이름과 전호번호
를 알아낼 수 있었어. 저 소년들이 나를 또 귀찮게 하면 그 땐 경찰에 이 명단을 넘기면 되
겠고.'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 다음주가 되자 나의 개인 경호원들이 일을 하기 위해 가게에 나타났다. 알고 보니 아이
들은 다들 공손했고 아주 일을 잘했다. 돌을 던지는 버릇은 말끔히 없어졌고, 그 소년들을
토요일에도 몇 번이나 가게 주변 일을 하러 왔다.
여름이 되자 소년들은 그 동안 애타게 하고 싶어하던 일들을 찾아서 모두 떠나갔다. 제일
나이가 어린 소년 한 명만 제외하고 말이다. 조지는 그 소년들 중에서 가장 호감이 안 가던
아이였다. 자기 또래들에 비해 수줍음도 많고 키도 작았다. 조지는 토요일에도 계속 가게에
왔다. 햇볕이 내리쬐는 뜨거운 보도 쪽으로 드레스가 놓인 선반 옆에 앉아서 꾸준히 손님들
을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우리들의 점심을 사러 간이식품점으로 달려가곤 했다. 나는 그 아
이의 행동에 대해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조지가 용돈이 필요한 게 틀림없다고 여겼을
뿐이었다.
나는 서서히 조지를 믿기 시작했다. 조지가 옆에 있으면 더욱 안전하게 느껴졌고 일도 쉽게
되었다. 좀도둑 걱정 없이 가게 뒤에서 재봉틀에 앉아 일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조지는 내
게 두 마디 이상 말을 한 적이 거의 없을 정도였지만, 한 번도 결근은 한 적이 없었다.
여름이 다 갈 무렵, 나는 집에서 일하는 대신 가게문을 닫기로 했다. 조지가 마지막으로 일
하던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조지는 정확하게 제 시간에 가게에 나와서는 내게 하얀 휴
지로 싼 작은 꾸러미를 건넸다. "학교에서 아줌마 주려고 만들었어요." 조지가 말했다. "고맙
구나." 내가 놀라며 대답했다. 선물을 풀어보니 작은 자주색 모자가 하나 들어 있었다. 테두
리는 파란 구슬로 장식되었고 머리 부분은 하얀 공단 리본으로 둘러져 있었다. "바늘꽂이예
요." 내가 모자 위를 살살 누르며 그 속에 가득 채워진 솜을 느껴보고 있는 동안 조지가 말
했다.
나는 조지가 열심히 구슬을 달고 리본을 매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처음으로 그 동안 조지가
눈길을 두고 있었던 곳은 손님이나 물건보다는 다른 곳이었음을 깨달았다. 조지는 나를 지
켜보고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은 한 팀이 되어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지는 가게 앞에서,
나는 가게 뒤 재봉틀 앞에서 말이다. 그리고 이전에 내가 조지를 경찰에 넘기려 했었던 일
도 떠올랐다.
"제 이름은 바닥에 씌어 있어요. 그걸 보면 누가 이걸 줬는지 꼭 기억하실 거예요." 조지가
말했다. "절대로 잊지 않을게, 조지야." 내가 대답했다. 정말로 잊지 않으리라. 처음에는 그
저 나를 무섭게 했던 소년들을 혼내 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더 강력한 무언가가
중간에서 우리들 일에 간섭을 했다. 그래서 즉흥적으로 나는 그 소년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이제 그에 대한 보답으로 열한 살 된 소년의 보살핌과 관심을 얻었다. 내가 갖고 있는 바늘
꽂이가 이 모든 일이 사실임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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