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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이 핀 십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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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전 날이었다. 나는 초조한 마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남편 루이스와 나는
우리 딸 던과 열두 살 난 손자 해리슨과 함께 일 주일을 보내기 위해 텍사스행 비행기를
타고 가던 중이었다. 남편 없이 혼자 아이를 키우던 던은, 와코에서 교사직을 구하게 되어
6개월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그 곳 텍사스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농장을 하나 사려고 돌아
다니다가 마침내 모아 둔 돈으로 살 수 있을 만한 농장을 찾았다. 내가 전화로 이것저것
물어 보자, 딸아이는 자신의 멋진 집이 80년이나 되었고, 시 외곽에 있는 12,242평의 땅에
있으며, 중앙난방이나 냉방시설이 없는 곳이라고 솔직히 말했다. "그렇게 얼마 들이지 않고
농장을 산 걸 보면, 틀림없이 형편없는 농장일 거예요." 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너무나
비실용적인 일을 벌인 거예요. 그 앤 지금 전원생활에 대해 턱없이 낭만적인 생각을 갖고
있어서 넋을 잃은 거라구요."
던과 해리슨이 공항에 우리를 마중나왔을 때 나는 그런 염려들을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딸아이의 그 초록색과 흰색으로 어우러진 집을 본 순간, 정말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끔찍했다. 찢어진 방충망이 창문에서 떨어져 잡초더미 위에 뒹굴었고, 현관 계단은 푹 내려
앉아 있었다. 집안은 문제가 더 심각했다. 식기 세척기는 딸국질을 하는 것처럼 들썩거렸고,
뒷문은 손잡이가 부서져 문을 잠궈야만 간신히 닫혀 있을 정도였다. 천장이 높은 실내는
던이 아파트에서 쓰던 키 낮은 가구들을 갖다놓아 마치 헛간처럼 보였다. 거기다 집 뒤 들
판엔 정말로 소가 한 마리 있는 게 아닌가! 던은 가축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도
대체 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날 밤 남편이 위로하듯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모든 게 다 잘 될 거요. 여보, 이런
것들은 조금만 손을 보면 되는 거잖소." "누가요?" 나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분명 던과
해리슨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나는 딸아이의 새 집과 그
애가 여기로 이사오겠다고 결정한 것에 대한 잘못된 점들을 낱낱이 적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다.
다음날 아침 수리할 것들에 대해 어떻게 던에게 충고를 해줘야 할지 궁리해 보았다. 무엇보
다 먼저, 딸아이는 목수를 한 명 구해서 집을 다 수리해야 하고, 그리고 나서 가구도 다시
배치를 해야 하리라. 물론 그 소도 처분해야 한다. 딸아이는 분명히 소를 어떻게 돌보는지
몰랐다. 하지만 내가 이곳에 와서 잘못된 것들을 바로 잡을 수 있게 됐으니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어쩌면 딸아이는 아예 텍사스에 있어서는 안 되는 건지도 몰랐다. 머리 속으로 나
는 모든 것을 바꾸기 위해 완벽한 계획을 세웠다.
마침내 동이 트자 나는 서둘러 옷을 걸치고 딸아이에게 얘기를 해주러 달려갔다. 하지만 던
과 해리슨은 집안 어디에도 없었다. 개들이 짖는 소리를 따라 뒷마당에 접해 있는 초원 쪽
으로 가 보았다. 황금빛 아침 햇살 아래 딸아이와 손자는 텍사스 수레국화가 푸른 바다를
이루고 있는 들판에 무릎까지 푹 빠진 채… 꽃을 꺾고 있었다! 던이 팔에 걸고 있는 꽃바구
니에는 이슬 맺힌 꽃송이들이 가득 담긴 채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해리슨, 저기 있는 꽃
들을 좀더 꺾어 가자꾸나." 딸아이가 노란 아이리스가 핀 꽃밭을 가리키며 말했다. 던이 뒤
로 돌다가 나를 발견했다. "잘 오셨어요, 엄마. 엄마는 아주 특별한 부활절을 맞으실 거예
요." 딸아이는 꽃들을 위로 치켜들었다. "우린 십자가를 꽃으로 장식할 거예요."
부활절 아침! 나는 조바심으로 속을 태우다 못해 잠시 부활절이라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
"던, 얘기 좀 하자꾸나." 내가 말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남편이 들어오며 교회에 갈 준비를
서두르라고 했다. 좋아, 어쨌든, 딸아이에게는 나중에라도 이 얘기를 꼭 하리라....
교회에 차를 대면서 나는 다른 사람들도 꽃바구니를 들고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
가 예배당에 들어갈 때 던과 해리슨은 꽃바구니를 들고 통로를 지나, 강단 앞에 있는 반짝반짝
윤이 나는 참나무 탁자로 갔다. 예배가 시작될 무렵, 탁자는 붉은 장미, 분홍 장미, 푸른 금어
초, 흰 백합, 노란 장수화 등 정원에서 기른 꽃들과 선명한 푸른빛, 황금빛, 주홍빛의 야생화
들로 넘쳤다. 꽃향기가 예배당을 가득 채웠다. 그런데 그 옆에는 싱싱한 꽃들과는 완전히 대
조적인 모습으로 키가 2.5미터 정도 되는 거친 나무토막으로 된 십자가가 거북이 등 모양으
로 철망이 덮혀진 채 서 있었다.
예배가 끝날 무렵 목사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이 영광스러운 아침이 오기 전까지,
우리는 십자가의 잔인함과 폭력적인 면에만 주목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 십자가
의 추함을 아름다움으로 바꾸셨습니다. 우리도 오늘 부활절 주일에 십자가를 꽃으로 장식함
으로써 그와 같이 할 것입니다."
오르간 연주가 울려 퍼지자 성도들은 강단을 바라보며 탁자 양편에 두 줄로 섰다. 남자들과
여자들, 아이들은 탁자로 가서 각자 몇 송이의 꽃을 골라 들고는 강단으로 올라가 십자가를
덮고 있는 철망에다 꽃들을 엮어 나갔다. 남자들은 십자가의 윗부분을 채웠고 여자들은 십자
가의 가로대를 장식했으며 아이들은 바닥에서부터 시작해 손이 닿는 곳까지 꽃송이를 더해
나갔다. 내 차례가 돌아와 나는 아이리스 몇 송이와 수레국화 작은 가지를 집어들었다. 그
향기로운 꽃송이를 십자가에 고정시키려고 몸을 기울이면서 나는 반대편에서 나처럼 하고 있
는 딸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해리슨이 몸을 굽혀 자신이 고른 꽃을 자랑스럽게 장식
하고 있는 모습도 내려다보았다. 두 모자는 새 삶을 의미하는 이 상징적인 의식에 참여하면서
흥분과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순간 언뜻 이런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다. 던과 해리슨도 이제 완전히 새로운 삶을 꽃피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 나는 그렇게 서두르고 모든 것을 바로 잡으려던 욕심을 포기함으로써
'그들이' 삶을 꽃피울 수 있도록 해주고, 나 자신 또한 나의 삶을 꽃피워야 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십자가는 온통 꽃으로 덮였다. 우리는 아름답게 장식되어 달콤한 향기가 나는 십자가에서
한 걸음 물러서 마치 한가족처럼 회중의 한 부분이 되어 손을 잡았다.
차를 타고 던의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아름다운 초원과 나무들이 빽빽이 늘어선 언덕을 둘러
보았다. "우리 집 근처에 시내가 있어요." 해리슨이 신이 나서 내게 말했다. "샘물도 있구요."
던과 해리슨은 해리슨의 침실 창문 바로 바깥에 있는 "우리의 올빼미 가족이 살고 있는" 호두
나무며, "우리의 아르마딜로가 살고 있는" 시냇가 근처의 길섶 등을 내게 보여주었다.
집에 들어서면서 나는 그 동안 흠을 잡느라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아름다운 것들, 오래된
나무마루며 자연석으로 된 멋진 벽난로 등을 바라보며 새삼 감격했다. 일단 그 높은 천장에 익
숙해지고 나니 가구들이 그다지 빈약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망사 창을 올려 끼우니 기
분 좋은 잔잔한 바람이 창문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주간의 어느 날 우리들 모두가 현관 계단을 고치느라 망치질을 하고 있었는데,
230kg이나 나가는 소가 딸아이의 웃옷자락을 혀로 감고 빨기 시작했다. 던은 망치를 내려놓
고는 소의 그 두꺼운 목을 쓰다듬어 주었다. "자, 노먼, 저녁 먹으러 가자." 딸아이는 마치
평생을 소와 함께 씨름하며 살아 온 사람처럼 황소를 몰고 가는 것이었다.
도대체 던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래, 어쩌면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거야.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집으로 돌아
가면, 무엇보다 먼저 내년부터 우리 교회에서도 십자가를 꽃으로 장식하자는 제안을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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