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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키 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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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에 흘러내리는 비는 마치 내 기분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했다. 병원에서의 새로운 일자리는
내게 너무나 꿈 같은 현실이었다. 그러나 오늘 하루 종일 병원에서는 재정 악화로 각 부서의 신입
직원들이 해고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이 병원의 교육 부서에서 가장 최근에 입사한 직원
은 바로 나였다.
상사가 내 자리에 와서 내 생각을 끊어 놓으며 말했다. "지금 감원 중이라는 건 들어서 알고 있죠?
집행부로부터 우리 교육 부서에서 해고 예정인 직원들을 위해 이력서 작성법과 면접에서 좋은 인상
남기는 법 등에 대해 강의해 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근심이 내 마음에 뭉게구름처럼 피어 올랐다. 마치 내가 자신의 목을 자를 도끼를 갈아야 하는 사형
집행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달리 할 말이 없어서 나는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상사가 떠난 후 나는 집에 일찍 가기로 했다. 누군가 내 눈의 눈물을 본다면 알레르기 때문이라고
말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뿌옇게 흐려진 눈에 사무실 비서 책상 위에 놓인 줄무늬가 그려진 땅콩
버터 쿠키 한 접시가 들어왔다.
"이 쿠키 누가 가져왔어요?" 내가 물었다.
"매주 금요일이면 어떤 부인이 갖다 놓아요." 비서가 대답했다. "드시고 싶은 만큼 가져가세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는 쿠키 두 개를 집어 들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인생은 참 희한해. 나는
내 자신도 해고당할 판국에 다른 이들이 직장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강의를 해야 하는 처지
인데, 돈 많은 저 부인은 쿠키나 구워 갖다 주는 봉사로 자신이 놀고 먹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덜
어 보려고 하다니. 아마 이 쿠키도 가정부를 시켜서 구웠을 거야.'
복도에 나오니 엘리베이터가 마침 열려 있었고 그 안에는 초등학교 3학년 정도의 작달막한 키에
머리가 하얀 부인이 타고 있었다. 청소 도구를 가득 실은 수레 위로 부인의 머리와 초록색 앞치마
의 가슴 부분만 보였다. '그래도 저 부인은 일자리라도 있지 않은가.'
집으로 오는 내내 자기 연민과 싸우다가 집 앞에 도착한 나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렇게
외로울 수가 없었다. 두렵기도 했다.
다음 두 주 내내 나는 개의치 않는 척 일을 했고, 마침내 병원을 떠나는 사람들의 마지막 근무일인
금요일이 되었다. 나는 직장을 찾기 위한 재교육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수업 시간표를 준비하고
테이블에서 기다렸다. 막 해고된 사람들은 문 앞에 일렬로 줄을 서 있었고 대부분 울고 있었다.
'몇 주 후면 나도 저들과 똑같은 신세가 되겠구나..." 나는 생각했다.
내 옆에는 사목인 목사님이 앉아 계셨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이야기를 하려고 와 계신
것이었다. 목사님은 노란색 형광 펜으로 줄이 그어진 손때 묻은 성경책을 펴 놓고 계셨다.
우리 앞에 온 첫 번째 사람에게 목사님이 인사하는 동안 목사님이 줄을 친 구절이 무엇인지 궁금
해서 곁눈질을 했다. 로마서 12장 5절 말씀이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목사님이 책을 잡기 전에 나머지 구절을 계속해서 읽었다.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은사를 받은 것과 받은 은사를 사용할 기회가 있는 것은 별개의 문제니까.' 나는 이런 생각에
눈물이 차 올라 목이 메였다.
그때 초록색 앞치마를 입은 한 부인이 테이블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목사님이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 "맙소사! 우리 쿠키 부인까지 정리 해고를 당하다니. 쿠키 부인과
부인의 땅콩 버터 쿠키가 많이 그립겠군요."
'쿠키 부인이라니?' 관절염으로 구부러진 손가락을 한 그 부인을 바라보았다. 내가 상상하던 부유한
자원 봉사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 테이블 앞 의자에 앉으며 부인은 마치 지시를 기다리는 얌전한 아이처럼 무릎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목사님이 부인에게 스페인어로 말을 했고 나는 내가 준비한 수업이 그녀에게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함을 알았다. 부인은 미소를 띤 채 앞치마 주머니에서 종이에 싼 쿠키를 꺼내 우리에게 주었
다.
"고맙습니다." 스페인어로 그 말밖에는 할 수 없는 자신을 안타까워하며 나는 대답했다. 불현듯
내 자신에 대한 자기 연민의 감정이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나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부인은 여전히 자신보다 남을 더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부인의 쿠키야말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다는 로마서 말씀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 자신을 위해 신문의 구직란을 뒤적거리기 이전에 그 부인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오가 되자 마지막 사람이 우리 테이블을 거쳐서 나가고 나는 부인의 쿠키로 점심을 때워야겠다고
생각하며 내 책상으로 돌아왔다.
점심 시간의 고요함에 감사하며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일자리가 필요한 쿠키 부인의 헌신적인
마음에 내가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제대로 표현될 때까지 고치고 또 고쳤다. 마침내 다 쓴 글을
봉투에 넣고는 상사에게 잠시 동안 자리를 비워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신문사로 향했다.
내가 하는 노력에 아무 결실이 없다 해도 최소한 나는 노력은 한 셈이다. '이게 내가 부인에게 돌려
주는 내 쿠키야.' 신문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며 생각했다. 관련 부서를 찾아가자 마감 시간에 쫓기
는 편집장이 단 2분 동안의 면담 시간을 허락했다.
"특별 기고문을 신문에 실어 주실지는 모르지만..." 내가 말했다. "그리고 투고료를 받을 생각일랑
전혀 없으니 그냥 실어만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나중에 읽어 보지요." 편집장은 이렇게 말하고 일어섰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벌써 다 된 것이다.
며칠이 지났고 신문에 내 글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기고문이 산더미처럼 있을 텐데 나는
왜 내 글이 편집장의 관심을 끌 것이라고 확신했을까? 몇 번이나 신문사에 전화를 걸려고 수화기를
들었다가는 내려놓았다. 만일 이 일에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내가 더 이상 나서지 않아도 기사는 나
가리라고 생각했다.
매일 나는 구직란을 뒤적거렸지만 내게 알맞은 자리는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내 글이
신문에 실리지 않을 것이라고 체념할 즈음 신문에서 우연히 내 글을 보았다. 그리고 내 글을 본
사람이 나뿐만이 아님이 분명했다. 사무실 비서의 책상 위에 내 앞으로 온 메시지 쪽지가 쌓이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는 시내 제과점에서 온 것이다.
긴장한 채 나는 제과점에 전화를 걸었다. 쿠키 부인을 위한 일자리가 있음이 틀림없었다. 몇 분 후
나는 쿠키 부인을 그 제과점 주인에게 소개하기로 약속했다. 흥분이 가라앉자 내가 혹 주제넘은
약속을 한 것은 아닌가 걱정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손에 신문을 움켜쥔 목사님이 내 책상 앞에 있었고 그 뒤에는
쿠키 부인이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글 잘 읽었습니다."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직업 소개소에 신청을 하러 가기 전에 그 말씀을 드리
려고 들렀어요."
"거기 갈 필요 없어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시내의 이 제과점에 일자리가 있대요. 제가 통역을
할 수 없으니까 목사님이 제 대신 부인을 그리로 모시고 가 주시겠어요?"
목사님도 웃었다. "물론 부인을 모셔다 드리겠지만 통역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그 집 주인 부부
가 멕시코 사람들이니 말이에요.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겁니다."
목사님과 쿠키 부인이 떠난 후 나는 구직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쿠키 부인의 일자리가 확정
되었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였다.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쿠키 부인에게서 남을
먼저 염려하는 것을 배우지 않았던가.
나는 호주머니에 넣어 둔 다른 쪽지들을 꺼내 읽었다. '회사를 떠나기 전에 메시지를 남긴 사람들
에게 전화는 다 하고 가야지.'
그 쪽지 중에 내 눈을 의심하게 만든 글이 하나 있었다. 나는 그 메시지를 두 번이나 읽었다.
"한 잡지사에서 귀하의 기사를 읽고 연락했음. 혹시 잡지사 같은 데서 일하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전화하기 바람." 그리고 그 잡지사 편집장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단 한 통의 이력서도 보내지 않았는데 새로운 일자리를 쉽게 찾은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만 했을 뿐이다. 쿠키 부인이 그
사실을 내게 상기시켜 주었듯이.
캐더린 패닝
- <사랑하는 가족에게 읽어 주고 싶은 이야기>(두란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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