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나의 완전한 자여 |
 |
| |
|
|
서양 사람들은 흔히 여자가 너무 강하거나 드센 것에 대한 반발로 여성 혐오증에 빠지는 수
가 많은 것 같다. 천하의 악처로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 때문인지 그의 제자
플라톤을 비롯한 희랍 철학의 거물들은 모두 여자를 상대 못할 존재로 취급하였으며 쇼펜하
우어는 극성스러운 그의 모친을 미워한 나머지, 여자란 쾌락의 도구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
라고 매도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비롯한 가부장적 전통의 사회에서는 오히려 남편을 우대해 주는 전통 때
문에 상대적으로 여성을 경멸하는 습성이 생기는 모양이다. 나 자신도 무슨 여자에 대한 특
별한 유감이나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것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지배받아야 하는 존재로
서 인식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여자에게 남자와 똑같은 투표권을 준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짓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할 정도였던 것이다.
평소의 내 그런 생각은 결혼이라는 것을 하자마자 곧바로 실천에 옮겨지기 시작했다. 나는
여자가 자기의 의견 내세우는 것을 일체 불허했으며 아이도 내가 계획한 대로 셋을 낳게 했
다. 집의 모든 일은 남자의 지시나 허락을 받아야만 시행할 수 있었고 심지어는 외출까지도
엄격하게 통제하였다.
비록 교회에는 다니지 않았으나 어렸을 때부터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며 배운 탓으로 성경의
이야기들도 내 독선적 생활태도의 뒷받침이 되었다. 성경에 보면 여자란 남자의 갈빗대 하
나를 뽑아서 만든 부속품적인 존재이며 먼저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먹어서 화근이 된 골치
덩어리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의 지도자였던 바울도 남자는 여자의 머리이므로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는 물론이고
독실한 교인이신 내 어머님께서도 그런 나에게 반박을 못하셨던 것이다.
아마도 그런 숨막히는 상황을 견디지 못해서였는지 아내는 암에 걸리게 되었다. 아내가 위
암으로 수술을 받고 혹독한 고통이 따르는 항암치료를 받을 때 나는 비로소 그 아내의 아픔
이 내 아픔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 아픔을 견디지 못하여 고꾸라졌고 비로소 아담
이 왜 그 아내에게 당신은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하였는가를 알게 되
었다. 여자야말로 남자의 가장 소중하고 깊은 부분이었고, 그것은 곧 남자의 모든 것이었으
며 남자의 생명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와란 이름의 의미는 '생명'이었고 그 생명을 빼고
나면 남자란 껍질의 허세에 불과한 것이었다.
암이라는 수난을 통하여 아내는 내게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깨달
음을 통하여 다시 태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전에는 아내의 모든 것이 불만족스럽고 부족하
더니 어느새 그녀는 솔로몬의 노래에서처럼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누이, 나의 완전
한 자'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이런 나의 고백을 마주 보며 말하기가 쑥스러워서 외국에 출
장을 나갔을 때 나는 아내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 전에는 당신이 아름답지도 않고, 내게 비하여 키도 작고, 만드는 음식도 내 입에 맞지
않더니, 주님께서 이끌고 오셔서 내게 소개해 주신 새로운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
우며 내 키에 가장 알맞으며 내 입에 가장 즐거운 음식을 마련해 주는 나의 완전한 여인이
구려...."
전 대우중공업 이사, 소설가 김성일
- <주부편지> 중에서
|
|
 |
|
인포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