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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받는 연습도 하세요
 
 
어두운 길을 갈 때는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됩니다. 삶이 고통스럽고 그래서 인생 전체가 암담하게 느껴질 때 나를 지지해주는 가족과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도움을 받지도 주지도 않겠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누구나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살고 있는 것일 텐데….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 것도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지요. 나는 돈을 내고 요리사는 음식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요리사가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또 손님이 없다면 어떻게 요리사가 자기가 만들고 싶은 요리를 마음껏 만들 수 있겠습니까.

박진희 씨는 남에게 도움을 안 받고 힘든 것을 혼자 감수하는 성격이었습니다. 도움 받는 게 용납이 안 되는 것 같았습니다. 한 번은 머리를 감는다고 해서 우리 호스피스 실에 누워서 머리를 감을 수 있는 기구가 있다고 했더니 ‘아니,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더군요. 유방암이 뼈로 전이돼 허리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만큼 아픈데도 말입니다.

방사선 치료를 받을 때는 똑바로 누워야 합니다. 그런데 허리가 아프니까 똑바로 누워있으려면 통증이 엄청납니다. 치료를 받기 전에는 이야기도 하고 그러더니 치료받고 나올 때는 펑펑 울었습니다. 진희 씨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순간순간 죽고 싶어요. 지하철에 가면 순간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껴요. 내가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싶고 남편한테나 애들한테도 미안하고….”

그녀의 나이 48세. 큰애는 대학에 다니고 작은애는 고등학생이었습니다. 그녀의 괴로움은 가족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병원비를 벌어야 하니까 어려움이 있습니다. 작은애도 고등학생이니까 간호를 하기에는 어리고 학교를 쉬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대학생은 휴학이라는 걸 할 수 있지 않나요. 가족들 중 누군가가 그렇게 하도록 시키거나 아니면 그녀 자신이 요구를 했어야 합니다. 대학 1,2년 늦게 졸업한다고 무슨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잖아요.

가만히 생각을 해봤습니다. 왜 아이들이 엄마를 멀리 있는 병원에 데려다놓고 자기들 일만 하는가 하고요. 물론 아이들이 깊이 생각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엄마가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상상해보지 못했겠지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엄마는 늘 어떤 도움도 필요치 않는 사람이었다고요.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도 혼자 감내해 왔기 때문에 가족들도 엄마가 알아서 하겠지라고 습관적으로 생각했던 게 아닐까 하고요. 깊이 생각했으면 달랐겠지만 평소 습관에 따라가 버렸다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가정의 짐은 가족 모두가 나누어 져야 합니다. 평소에 그런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부모들은 옷 한 벌 못 사면서 자식에게는 좋다는 것 다해주면 그 아이는 부모의 고생을 알지 못합니다. 오냐오냐 키운 자식이 불효자가 된다는 말은 그래서이지 않을까 합니다. 금전적인 어려움도 알게 하고 부모가 하는 일의 어려움도 알게 해야 합니다. 부모가 어떤 일을 해서 자신을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가르치는지 알게 해야 합니다. 꼭 가정만의 일은 아닙니다. 회사의 어려움도 친구 간의 어려움도 사회의 어려움도 서로 나눠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가족은 더 끈끈해지고 회사는 발전하고 우애는 깊어지고 사회는 살 만한 세상이 됩니다.

그러자면 힘든 사람이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내 어려움에 안테나를 세우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을 해야지요.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말입니다. 흔히 남녀가 싸울 때 ‘말을 해야 알지.’와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느냐?’는 말을 반복합니다. 말을 안 해도 알아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말을 해야겠지요.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이 오히려 상대를 돕는 일입니다. 어차피 도움을 받고 나면 당신도 그 사람을 도울 거니까 주눅 들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꼭 그 사람이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누군가를 돕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그 정성은 세상을 돌고 시간을 따라 흘러가서 또 누군가에게 갈 테니까요.

* 이 글을 쓴 안기순 씨는 원자력병원 호스피스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오랫동안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살았다. 세상 물정도 몰랐다. 저축은 물론이고 공과금조차 남편에게 맡겼다. 그러다가 종교적 체험과 친구의 죽음을 겪으면서 호스피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2005년에는 남편과 딸을 설득해, 살고 있던 아파트의 평수를 줄였다. 거기서 나온 돈으로 원자력병원과 가까운 곳에 오피스텔 2개를 얻어 ‘사랑의 쉼터’를 열었다. 지방에서 올라와 통원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사랑의 쉼터’가 없었을 때 환자와 보호자들은 찜질방이나 여관을 전전했다고 한다. 같은 해 SK에서 주관하는 ‘당신을 만나서 행복합니다’ 캠페인에 선정돼 광고를 찍기도 했다.

- 『후회 없는 삶을 위한 23가지 이야기』 중에서
(안기순 지음 / 정원 / 191쪽 /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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