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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한 송이도 거저 피는 법 없다
 
 
큰아이는 지역 소재 대학에 다닌다.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는 관계로 아이의 근황도 살필 겸 이따금 녀석의 미니홈피에 도둑처럼 들르곤 하는데 어느 날 다이어리에 남긴 단상을 읽고는 심장이 쿵! 하니 내려앉고 말았다.

“왜 태어났을까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건 어떤 의미일까”

새내기 의학도로서 이것저것 고민도 많을 테고, 우리가 그 나이 때 가졌던 존재론적 고민을 성장의식처럼 거치고 있겠거니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고약한 두려움으로 인해 눈물이 왈칵 솟구치고 만다. 아무렇지도 않게 푸념처럼 내뱉은 “힘들어 죽겠다”는 말 한마디에도 억장이 무너지고 지레 겁에 질려버리고 마는 건 아직 누구에게도 차마 털어놓지 못한 유년의 기억 때문이리라.

나는 결손가정에서 성장했다. 곡절 많은 어머니 덕에 아버지도 생부와 양부 두 분이나 되고, 씨 다른 형제도 둘이다. 그들 중 하나는 생사는커녕 일면식도 없고, 남은 하나는 스물 몇 살에 나이 어린 누이가 보는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빌어먹을, 왜 하필이면 내 앞에서 그런 몹쓸 짓을 저질러야만 했는지 그땐 물어보지도 못했다. 그러기엔 너무 어렸고 충격이 컸다. 십대 후반, 자신을 버린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생부 집을 뛰쳐나와 재혼한 엄마 집에 얹혀 더부살이를 시작한 그는 어디서든 말썽꾸러기에 천덕꾸러기였다. 엄마와도 정을 쌓지 못한 그, 오갈 데 없어진 그가 선택한 길은 자원입대였고, 첫 휴가 나왔다가 탈영해 서너 해를 숨어 지내야만 했다. 네 활개를 쳐도 시원찮을 짱짱한 젊음을 그렇게 소진해버린 것이다.

그래도 내겐 고속버스와 남산 케이블카를 처음 태워준 오빠였고 노란색 파카를 처음 사 입힌 오빠였으며, 구세군 화단에 데려가 달리아 꽃 앞에 쭈그려 앉혀놓고 흑백사진을 공들여 찍어준 단 하나뿐인 오빠이기도 했다. 지금 와 생각하니 성씨도 다른데다 탈영병이라는 게 창피하기도 했지만 오빠가 있어 세상이 더없이 든든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이웃집 아저씨와 말싸움이 벌어졌던가 보다. 말로는 도무지 당해낼 재간이 없던 아저씨가 “헌병대에 신고해버리겠다” 협박하자, 군법회의에 회부되는 게 죽기보다 공포스러웠던지 음독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취한 것이다. 차라리 그때 잡혀갔더라면 지금쯤 살아 있기라도 할 텐데…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사선을 넘어서버린 오빠.

기업 총수, 유명 연예인, 실직 가장, 사랑을 잃은 청춘남녀, 취업 재수생, 카이스트 대학생 등 죽음이 줄을 잇고 있다. 물론 군인도 예외는 아니다. 선임병과의 갈등, 고된 훈련,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거나, 피폐한 가정사 때문에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고 마는 경우를 뉴스에서 종종 접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내 모든 기억의 회로는 30여 년 전으로 되돌아가 공포와 고통으로 덜덜 떨고 마는 것이다.

장마철, 적출해간 장기를 검시해 사인이 규명될 때까지 매장을 금한다는 군의관의 위압적인 지시에 따라 거적때기 덮어씌워 연탄창고에 방치해둔 시신에서는 구더기가 스멀스멀 드나들었다. 무섬증에 사시나무 떨 듯 후들거리던… 열 살 소녀. 반쪽에 지나지 않는다지만 그래도 오누이 간이라 피가 끌렸던 모양이다. 그 일이 있은 이후로 나는 ‘오죽했으면 죽음을 선택했을까’라는 말에 절대 동조하지 않게 되었다. 자살은 선택한 이에게는 모든 것의 끝일 수 있겠으나, 그를 기억하는 모든 남겨진 이들에겐 순간순간 죽음보다 더한 생지옥일 수도 있음을 체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사회가 자살을 미화하는 분위기로 흐르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하는 소리가 높다. 그러나 자살은 분명 한 개인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남겨진 가족과 교우들에게 치유 불가한 상처를 입히는 폭력 행위에 다름 아니다. 불치병. 난치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환우나 중증 장애우들을 보라. 그들도 살아가지 않는가.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안타까워하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지 않는가. 그러니 아무리 힘들어도 견뎌라. 버텨라. 극복하라. 죽음보다 더한 고통과 상처는 없나니 죽음을 택하는 우매함을 꿈도 꾸지 말라. 시간이 흐르고 머잖은 날, 지난날의 상처가 너를 키운 거름임을 알게 될 터이니 죽음의 유혹 따위, 지구 밖으로 뻥! 차버려라.

극복하지 못할 난관이란 없다. 세상은 큰 그대, 깊은 그대를 위해 시련을 준비해둔 거라 여겨라. 시답지 않은 내 시도 고통과 절망과 무수한 상처를 통해 얻어진 사리와도 같나니…. 상처 없이 피는 꽃은 없다. 하찮게 보이는 풀꽃 한 송이도 거저 피지 않는다. 서리와 혹한과 폭풍우와 우레 속에서 살아남아 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젊은 그대여, 그러니 행여 죽음에 현혹되지 마시라. 사는 일만 꿈꾸기에도 생은 터무니없이 짧나니.

- 『그대라는 문장』 중에서
(손세실리아 지음 / 삶이보이는창 / 304쪽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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