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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마을 이야기
 
 
‘함께 사는 마을’ 이야기 하나 해줄까. 가까운 선배가 그곳에 살고 있지. 이 마을은 남녀가 대등한 인격적인 관계로 살자고 동의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야. 이웃이 모두 친구요 가족이라대. 의식 있는 이들이 많고 특히 사회과학을 공부한 운동권 출신들이 많아. 젊고 패기 많은 인간들이 모여 사는 곳이기도 하지.

그렇다고 뭐 특별난 것은 없다고 해. 남녀 사는 모습이 어디나 대동소이한 것 아니겠어? 여자는 여자 남자는 남자, 늑대의 목도리 여우의 허리띠 뭐 그런 거지. 남자는 남성적이고 결단력 있는 멋으로 약하고 순한 아내를 감싸는 목도리임에는 예외가 아니라는 얘기야. 여우의 허리띠로 표상되는 여자도 마찬가지야. 남편으로 하여금 자신이 돌봐주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험한 세상사에 붙들려 죽고 말 여자라는 인상을 갖게 하는 여자. 남편의 허리를 붙잡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한들거리는 몸짓으로 획득하는 여자. 알면서도 모르는 척 바보 같은 몸짓으로 남편에게 다가가는 여자. 꼬치꼬치 캐묻거나 따지거나 닦달하지 않는 여자. 세상사람 모두 외면해도 아내만은 믿어주고 따라줄 거라는 믿음을 주는 여자.

그러나 함께 사는 마을에는 이런 것 이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는 모양이야. 툭 트였다고 할까, 아량이 있다고 할까. 하루는 선배 남편이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왔다대. 아니 새벽이었다던가. 전화 한 통 없이 밖에 나간 남편이 들어오지 않으니 그녀는 꼬박 밤을 새웠겠지. 까칠한 몰골로 들어오는 남편에게 물었다지. 외박한 이유가 무어냐고, 전화 한 통 해줄 수 없었느냐고.

남편은 무척 피곤했던 모양이지. 피곤해 나중에 얘기하고 잠 좀 자게 해줘, 했대. 밤새 한숨도 이루지 못해 힘들었던 선배는 그만 인내심이 바닥났던 모양이야. 대답하라고 소리를 질렀다지. 남편은 아내의 심정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모양이야. 아무 대꾸 없이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갔다나. 선배는 이불을 젖히고 점잖게 말했다지. 지금 대답하지 않으면 얼굴에 호스 물을 끼얹는다.

설마 그럴까 했겠지. 침대가 젖고 이불이 젖고 방이 젖으면 누가 손해인데. 주부가 처리해야 할 일이잖아. 남편은 대꾸도 하지 않고 그냥 이불을 뒤집어썼다네. 잠시 후, 그녀는 정말 긴 호스를 안방까지 끌어와서 침대에 누워 있는 남편에게 물세례를 주었다지. 남편은 그제야 일어나서 아내를 안아주며 미안하다 했대.

그러기가 쉬운 일 아닌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선배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당신이 여자라면 그렇게 할 수 있겠어? 또, 당신이 남자라면 물세례를 맞고도 화내지 않고 미안하다 사과할 수 있겠어?

다음 이야기는 좀 더 심해. 그 동네의 한 젊은 부부가 싸움을 하고 있었대. 둘 다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고 상대방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지. 대단했다고 해. 그런데 동네의 남편 친구들이 놀러왔다나. 두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싸웠대. 사람들은 말릴 생각도 않고 둘러앉아 지들끼리 놀았다지.

그런데 문제는 아내 쪽에서 일어났대. 소변이 마려웠던 거야. 여자는 생각했다지. 급하긴 한데 화장실에 가서 용무를 보고 나오면 슬그머니 싸움이 끝나 버릴 것 같고 그러면 자기의 생각을 관철시킬 수 없을 것 같더래. 그래서 생리현상을 무시하고 막 싸웠다지. 그러다가 더욱 급해지니까 잠깐 마음이 흔들렸대. 이쯤에서 그만 둘까. 아니야, 끝을 봐야지. 그녀는 대단한 결단을 내린 거야. 그래서 그냥 그 자리에서 선채로 소변을 봐버렸대. 싸움의 맥을 끊지 않으려 소리를 질러가면서 말이야. 어떻게 됐겠어? 싸움은 그것으로 끝이 났대. 남편이 백기를 듦으로써.

지금까지 그 마을에서 회자되는 이야기로는 백미라 하더군. 재밌지? 정말 재밌지? 나도 가끔 그렇게 하고 싶어.

아니야, 진실을 말하자면 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 난 내 남편이 말도 없이 밖에서 밤을 지내고 새벽녘에 집에 들어오는 것 싫어. 내 남편도 그런 일은 하지 않지. 그리고 그의 얼굴에 호스 물을 뿌리는 것도 싫어. 사람들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그와 싸우고 싶지도 않아. 세상에 뭐 별 볼 일 있다고 그렇게 악다구니로 살겠어?

그러니까 함께 사는 마을의 일원이 될 수 없는 거겠지? 어? 그런데 왜 이렇게 갑자기 슬퍼지는 걸까? 재미있는데, 정말 재미있는 이야긴데… 너는 알아? 내가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 『나는 낯선 곳이 그립다』 중에서
(하정아 지음 / 푸른길 / 294쪽 /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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