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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때문에 마음이 다칠 때
 
 
누구나 인생의 한 시절은 싸움닭처럼 격렬하게 세상과 맞서는 시기가 있다. 화살의 방향이 외부로 향하든, 내부로 향하든 상처를 받는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그러나 상처 받지 않고서야 약을 찾을 일도 없다.

한때는 정지용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 ‘향수’를 듣다가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이란 대목에 이르면 가슴이 아렸다. 뜨거운 피가 전횡하던 옛 시절이 생각나면서 꽉 찬 회한의 그늘에 들어서듯 마음이 사무쳤다.

함부로 쏜 화살.

젊은 날의 치기를 비유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이 있을까. 그 화살은 타인을 향해서도 발사됐지만, 그보다 더 자주, 더 깊이 스스로의 가슴에 꽂히는 일이 많았다.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그림자마저 미워지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그 시절엔 자다가도 불에 덴 듯 놀라 냉수를 마시곤 했다.

그때는 불타는 세상의 화염에 화상을 입었다고 생각했지만, 나야말로 그 불꽃을 키우는 기름의 일부였음을 이제는 안다. 돌이켜 보니 당신이 옳았고, 내가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옳았고, 당신이 틀렸다는 말도 아니다. 애초부터 옳고 그름은 없었다. 그저 내 마음에 들고, 안 들고 하는 감정에 따라 혼자만의 법정에서 유죄, 무죄를 따졌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나는 편안해졌다, 고 감히 말하진 못한다. 다만 이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부분에 약하고 어떤 부분에 강한지, 무엇에 가슴 뛰고 무엇에 좌절하는지 조금 알게 되었을 뿐이다. 이해하게 됐을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너무 옳아서, 나만 억울한 것 같아서 소화장애를 겪던 시절에 아는 스님께서 적어 주신 네 글자가 있다.

‘지불책우(智不責愚)’ 지혜로운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을 꾸짖지 않는다.

이 네 글자에는 들끊는 감정을 한 단계 아래로 끌어내려 급냉장시키는 탁월한 기운이 담겨 있다. 한동안은 이 기운에 의지해 내 안의 불길을 잠재워 갔다. 그 뒤 세월이 흘렀고, 내게도 겨자씨만 한 지혜의 싹이 돋아났다. 이제는 안다. 진정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니 어리석은 사람이니 굳이 나누지 않는다는 것을. 그저 괴로운 사람, 괴롭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임을.

지난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종하면서 남긴 말씀을 기억한다.

“나는 행복합니다. 당신도 행복하세요.”

이 말에 담긴 깊고 고요한 에너지를 음미할 때마다 들끓던 마음이 잔잔해진다. 내 안에 평화롭고 따사로운 기운이 꽉 들어찬다. 평생을 신께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던 교황은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행복하다. 당신도 행복하시라.
전율이 인다.

그래, 당신도 그때 힘들었겠구나. 당신도 뭔가를 쟁취해 행복해지고 싶었구나. 같은 이유로 나는 힘들었구나. 그때의 당신 마음이 당신의 전부는 아니었건만, 내 마음대로 편집해 반복 상영했구나.

마음을 열자 바람을 탓하지 않는 나무처럼, 태양을 원망하지 않는 사막처럼 나는 둥글어진다. 둥글게 나를 껴안고, 당신을 껴안는다.

당신이 평화롭기를, 그리고 행복하기를.

그래, 그밖에 또 무엇이 있을까. 그것이 궁극의 기도일진대.

그 밖의 것들은 밤 사이에 옮겨가는 모래언덕처럼 덧없고 덧없다.

-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중에서
(정희재 지음 / 걷는나무 / 335쪽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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