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시도서관
전체도서목록 신간도서목록 광명시도서관 바로가기
도서요약본 오디오북 북세미나 오디오강연 어학클리닉 어린이도서관
인포북 전자도서관 인포북 사랑하는 가족에게
사랑하는 가족에게 책에서 만나는 건강정보 서평칼럼 책속의 여행정보 가슴이 따뜻한 이야기
웃기만 하는 아내
 
 
낡은 침대 하나가 다섯 평 남짓한 좁은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하루 종일 침대는 소리 없이 한 여자를 떠받치고 있다. 침대도, 누워 있는 여자도 아무런 소리가 없다. 침대에 누워 있는 여자는 나의 아내 서주연. 아내는 가만히 누워 주어진 세계를 받아들인다. 아내의 시간은 길을 잃은 채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른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멈춰서 버린 아내의 시간.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나의 시간은 절망과 희망 사이를 오간다. 그러나 아내와 나를 제외한 세상의 시간은 야속하게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여전히 같은 속도로 잘만 흘러간다.

그렇다, 아내는 지금 의사의 판정대로 식물인간 상태다. 벌써 6년째 이렇게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나는 아내의 고독한 전쟁을 도울 방법이 없다. 무엇 하나라도 아내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는 그 싸움에 함께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껏해야 어린이 군악대를 지휘하는 일이다. 전쟁 중인 아내가 낙심할까 봐, 포기할까 봐, 지루해할까 봐, 외로워할까 봐, 나는 세 아이를 지휘하며 아내를 응원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아이들에게 뽀뽀를 시키는 일. “엄마한테 뽀뽀 열 번!” 하고 외치면 세 아이는 조르르 달려가 아내의 입술과 뺨에 뽀뽀를 한다. 뽀뽀 세례를 받은 아내는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건강할 때도 잘 웃던 아내는 아프고 나서도 여전히 잘 웃는다. 아이들은 노는 것도, 숙제하는 것도, 게임하는 것도 모두 웃는 엄마 곁에서 한다. 아픈 엄마 곁에서 뒹굴고 발을 구르고 소리치고 뛰어다닌다. 아이들은 한순간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움직여 주었으면 좋을 아내와, 잠시라도 가만히 있어 주면 좋을 아이들이 어우러져 묘한 조화를 이룬다. 아이들은 전장에 핀 흐드러진 꽃들마냥 밝디밝다.

아내는 남편 이름만 들어도 웃는다. 늘 곁에서 돌보시는 장모님에게는 소극적으로 반응하면서도 바람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남편을 향해서는 환한 웃음을 선사한다. 그때마다 장모님은 딸에게 “영락없는 팔불출이로구나”라고 놀리신다. 그러면 아내는 또 미소로 답한다. 아내는 아프고 힘들어도 남편을 바라보며 웃는다. 내겐 늘 웃음으로 맞아 주는 아내가 있다.

아내의 병고로 시작된 하나님과의 영적 씨름은 기도에 대한 내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기도는 정제되고 절제된 언어보다는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임을 몸소 깨닫는다. 인생이 격랑으로 요동칠 때는 꾸밈없는 기도가 절로 나온다.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원망과 불평, 비난과 호소를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 털어놓고 애통한다. 그러면 비로소 그분이 주시는 마음의 정화를 경험하게 된다.

목회를 하면서 나는 성도들의 속 깊은 아픔을 수시로 접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목사로서 무기력감을 느낀다. 그러나 “확실히 낫습니다. 자신감을 가지세요.” “곧 좋은 일이 생길 겁니다. 그러니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라는 식의 말은 하지 않는다. 그것은 결국 성도들의 마음 문을 닫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목회자가 성도들의 고통과 아픔을 부인하는 순간, 그들은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고 헤매기 시작한다. 슬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화사하게 웃으며 인생의 행복을 맛보는 사람들을 피하여 도망간다.

고통의 시간에는 오직 서로 보듬어 주어야 한다. 함께 눈물을 흘리며 그 아픔을 나눠야 할 시간이다. 함께 흘리는 눈물은 고통의 짐을 나눠 지게 한다. ‘내가 버림받지 않았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병으로 인해 죽음이 불가피하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함께 슬퍼하는 자들이 곁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버려지지 않았다는 확신을 얻으며 위로를 받는다. 연약한 아내를 중심으로 우는 자들이 모인다. 아내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은혜를 받는다. 낮아짐은 이렇듯 깊은 위로를 준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 경계의 빗장을 풀어 주고 쉬도록 한다. 가장 연약한 자가 강한 자를 안아 주는 것이다.

우리 가족은 잠자리에 누우면 하루에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기도를 한다. 오늘은 윤서 차례다. 장난기가 넘치는 아들 녀석은 기도도 얌전히 하는 법이 없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엄마 빨리빨리빨리빨리빨리빨리빠-알리 낫게 해주세요!” 숨도 안 쉬고 ‘빨리’라는 말을 어찌나 빨리, 속사포처럼 내뱉으며 기도하는지… ‘빨리’를 빨리 많이 할수록 그대로 될 거라고 믿는 아들의 간절함에 코끝이 찡해졌다.

가끔씩 내 삶이 광야에서 살아가는 한 가족의 삶을 생생하게 찍은 한 편의 영화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감독: 하나님, 주연배우: 김병년 서주연 부부와 아이들, 그리고 수많은 조연들. “여주인공이 건강하게 일어나고 온 가족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라는 해피엔딩의 결말을 얼른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나 감독이 마지막을 어떻게 구성할지 모르겠다. 아직 대본을 다 받지 못했다. 날마다 하루치 쪽대본이 나올 뿐이다. 솔직한 심정으론 이 광야를 하루 속히 벗어나고 싶다. 아들의 기도처럼, 빨리. 그러나 성질이 불같이 급한 나를 잘 아시는 하나님은 오늘 하루, 지금을 살라 하신다.

- 『난 당신이 좋아』 중에서
(김병년 지음 / IVP / 196쪽 / 8,000원)
번호 | 제목 | 일자
147 나는 시어머니와 별일 없이 산다 2011년 02월 23일
146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왜 그리도 오래 걸렸는지 2011년 02월 21일
145 웃기만 하는 아내 2011년 01월 27일
144 닉 부이치치의 허그 2011년 02월 21일
143 말없는 말 - 정호승 2010년 11월 30일
142 마지막 사형수가 보낸 편지 2010년 10월 28일
141 가난한 주부의 향기로운 고백 2010년 09월 29일
140 아빠의 책이 제 인생을 구했어요 2010년 08월 31일
139 아버지의 침묵은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의미였습니다 2010년 07월 29일
138 연극 같은 인생 2010년 06월 30일
 
맨 처음으로 이전 10개 1 2 3 4 5 6 7 8 9 10 다음 10개 맨 마지막으로
 
  • 문화도시락
  • 베스트상품권
  • 문화사랑쿠폰
  • 북티켓
  • 한국독서능력검정 신청
  • 시스템 정기 점검시간 매주 금요일 낮 12:00~12:20